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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7)

나홀로 바딘 광장에서

by 슈히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서,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 외관에 프랑스 양식이었다.

"여기 베트남 주석이 거주한대."

다랑이 설명했다. 구글 위키백과에 따르면, 주석궁은 식민지 시절 총독부로 쓰인 관저라고 했다. 주석궁 입구에는 공안들이 근무 중이었다. 미동 없이 정면을 주시하며, 서있었다.

'저렇게 종일 서있기만 하면, 다리 무지 아플 텐데. 힘들겠다......'

주석궁은 사진 촬영 금지라고 하니,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 걸었다. 드넓은 광장이 보였고, 검색대가 나왔다. 먼저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뒤따르던 다랑을 요원이 저지했다. 그 이유는 다랑이 입은 반바지가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반바지의 기장은 별로 짧지 않았으나, 다랑의 무릎이 드러나있어서 짧게 느껴졌다. 반면, 당시 나는 긴 바지를 입고 있어서, 무탈히 통과했다.

"그럼, 넌 여기 못 들어가? 나 혼자 관광해?"

"응, 어쩔 수 없지. 다녀와. 여기서 기다릴게."

"다른 데 가버리면 안 돼? 얼른 둘러보고 올게!"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됐다. 그렇게 다랑과 헤어져 혼자 입장했다.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으나, 워낙 공간이 넓어서 다른 관광지 보다 비교적 덜 답답했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바딘 광장이라고 불렀다.

자매지간인지, 친구 관계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 3명이 똑같은 아오자이를 입고 지나갔다. 내게 사진 촬영을 부탁한 이도 있었다. 부인과 자녀를 거느린 남자였는데, 내가 응하자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청했다. 그가 고맙다고 인사했고, 나도 함께 미소 지었다.

엄숙한 분위기의 회색 건물 앞에도 흰 정복을 입은 늠름한 군인들이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표정이었으나, 젊음만으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관광객들은 사진 찍느라 일념이 없었다.

'사람들, 엄청 신났네! 저 건물이 대단한 건가? 뭔지 몰라도 유명한 곳인가 보다.'

나중에 다랑에게 물으니, 호찌민이 잠든 묘라고 했다. 하노이의 마지막 날에 탄 관광버스의 안내 설명에 의하면, 호지민의 묘는 러시아의 원조로 건립됐다고 한다. 입장 가능한 날도 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땐 불가능해서 아쉬웠다.


호찌민 묘소의 전체 건축은 견고한 정사각형 블록으로 높이 21.6m, 폭 41.2m의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의 구조는 매우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홍수, 폭격, 7급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묘소 외부는 회색 화강암으로 덮여 있으며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묘소 꼭대기에는 진홍색 옥석으로 "CHủ TịCH Hồ-CHI-MINH"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묘소 안에 있는 200개의 문은 전국에서 수집한 희귀한 목재로 만들어졌다.
로비는 '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말과 호찌민 대통령의 금도금 서명을 배경으로 빨간색과 분홍색 대리석으로 치장하고 있다. 묘소 앞에는 매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군인 2명이 항상 서 있다.

호찌민 묘 안에는 대리석으로 덮인 방이 있다. 여기서 호찌민 대통령의 시신은 유리 관 안에 안치되어 있고, 돌 받침대 위에 놓인 침대 위에 놓여 있다. 방 안에는 항상 4명의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묘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주변 풍경이다. 묘 주변에는 250종 이상의 식물이 있는 녹색 풍경이 있다. 여기 있는 각각의 나무나 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가 살아있을 때의 호찌민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https://vinpearl.com/ko/%ED%98%B8-%EC%B0%8C-%EB%AF%BC-%EB%AC%98%EC%86%8C)



둘이 다니다가 혼자 다니니,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이곳에도 사원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매점들과 웅장한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사원은 어딜 가나 있네. 다들 할 일 없어서 나온 사람들 같군.'

사원을 신속히 한 바퀴 돌고, 큰 건물 앞까지 걸어가 안을 들어다 봤으나 폐장 중이었다. 인기척이 없었다. 나중에 다랑에게 사원과 건물에 대해 물으니, 못꼿 사원(일주사)과 호찌민의 박물관이라고 했다.


1049년 어느 날 밤, 리 타이 통은 관세음보살이 그에게 빛나는 연꽃을 주는 꿈을 꾸었다. 그는 관음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선승 선여와 함께 절을 짓도록 지도했다. 이것이 오늘날 못꼿 사원(한 기둥 사원)이며, 베트남 국보 1호이다. (https://vinpearl.com/ko/%EB%AA%BB%EA%BC%BF-%EC%82%AC%EC%9B%90)

일주사는 연못에서 나오는 연꽃처럼 직사각형의 연꽃 호수 중앙에 놓인 탑 형태의 탑이다. 1954년 9월 11일에 프랑스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자, 호찌민은 이 탑을 수리해 1955년에 완공했다. 원래보다 현재의 일주사는 상당히 작다고 한다. (https://vinpearl.com/ko/%ED%98%B8-%EC%B0%8C-%EB%AF%BC-%EB%AC%98%EC%86%8C)



아무것도 몰랐을 땐 그저 작고 볼품없는 사원이라고 생각했으나, 유래와 명칭을 알고 나니 새롭고 매력적인 명소로 느껴졌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호찌민 박물관은 호찌민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의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데, 우측의 벤치에서 영어로 신한 은행이라는 글자를 봤다. 먼 타국에서 한국을 떠올리자, 그리움이 사무쳤다.

'해외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어서 귀가하고 싶다! 여기 너무 답답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잔디밭에 떨어진 분홍색 꽃들을 발견했다. 꽃나무가 있나 두리번거리니, 꽃을 피운 나무가 두어 그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주변을 살피니, 관리자들은 모두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몰래 잔디밭에 들어가 떨어진 꽃송이들을 모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잔디밭에서 나오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무릎이 드러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봤다.

'저 여자는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지? 다랑은 거부당했는데.'

몇 분 후, 다랑을 다시 만나 이 사실을 전하자 그가 대답했다.

"군인들도 짧은 치마 입은 여자를 보고 싶은가 보지. 난 괜찮아."

그의 긍정적인 태도에 피식 웃고 말았다.

"누나 기다리면서, 난 측면에서 직진으로 걸었거든? 반대쪽에 검색대가 하나 더 있어. 거기로 통과하자."

다랑이 제안했다.

"너 바지는 어쩌고?"

"바지를 아래로 내려서 입으면 무릎이 가려져. 한번 시도해 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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