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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원 Apr 23. 2021

로망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 로망을 구현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로망을 가지고 산다.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을 말이다.

사소한 부분까지 따지면 여러 가지 로망이 있겠지만,

공간에 대한 로망도 빼놓을 수 없다.


공간이 당신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들었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로망은 의외로 쉽게

실현될 수 있다. 그 로망의 실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앞서 언급한 공간이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데, 메시지는커녕 도대체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단순하게 예를 들어 날이 좋은 봄날에 복층으로 구성된 카페에 들어왔다고 가정해 볼 때,

당신은 복층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창이 접히기 시작한다.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이인데도 불구하고 카페에 설치되어있는 대형 접이식 폴딩 도어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층 공간에도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닿았다.

향긋한 커피와 따스한 햇살 그리고 살랑거리는 봄바람까지, 이보다 더 여유로운 조합이 있을까?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 당신은 공간이 주는 메시지를

들은 것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 카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개방감이 좋다는 뜻이다.   

   

공간이 주는 메시지라는 것은 결국 당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무엇인가 좋거나 싫거나 혹은 불편하거나 편하다면, 무엇 때문인지 풀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야외가 아니라면 주변을 둘러보고 느껴보는 것이다.

분명 그 공간 속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구조적인 이야기, 기능적인 이야기, 그리고 미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어우러져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받는 느낌과 생각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그 하나하나의 내용들이 모이면 당신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공간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당신의 공간적 로망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실현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간에서 기능적인 부분이 불러일으키는 편함과 불편함의 차이는 명백하다.

그러나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적 로망에서 정답은 없다.

그저 이 공간이 나의 로망과 부합하는가, 그렇지 못한가로 나뉠 뿐이다. 따라서 개인의 로망은 감히 타인이 맞고 틀리고를 논하거나 바꿀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의 직업은 공간 디자이너이다.

때문에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로망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디자이너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의 공간적 로망은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로망이 담긴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화자가 원하는 바를 줄지어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상이 조금 섞여있고,  나에게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로 하게 만들어 줄수록, 나는 상대방의 로망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머릿속으로 공간을 그려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디자이너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이후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나를 로망에 심취하게 만들었던

주거 공간 프로젝트와 그 클라이언트에 대한 일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간 디자이너라 함은 상대방의 공간적 로망을 실현시키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로망과 상충되더라도 기능적인 부분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에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도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원하는 포인트를 지켜내기 위해 생기는 불편함은 얼마만큼 감수할 수 있으신가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나누며, 상대방의 로망에 공감하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위의 질문들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살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함을 선호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 드는 대답이었으며, 그때부터 상대방의 로망에 깊게 빠져들고 싶었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며 상대방의 공간적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과 예산 두 가지 모두를 남들과 다르게 사용해야만 했다. 오로지 방법을 찾는 것에 몰두했고 나만의 방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렸다.


새로움을 담아내기 위해 공간을 비우기 시작했다.

서둘러 윤곽을 확인하고 싶음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현장엔 먼지가 가라앉을 틈이 없었다.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를 각각의 일정들을 시간 단위로 쪼개어 곱씹으며 보냈다.


기초적인 공정의 시간이 흐르고 큰 덩어리의 윤곽이 마침내 드러났다. 마감을 위해 클라이언트와 현장에서 만나 추가적인 내용들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현장에서 진행되는 협의는 상당히 중요한 순간이다.

정답이 없는 가운데, 여러 가지 의견들을 적절하게 융합하거나 혹은 어느 하나의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세워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클라이언트와 함께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은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협의는 성공적이었다.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융합할 필요도, 우선순위를 세울 필요도 없었다.

디자이너의 생각이 곧 클라이언트의 로망이었고,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곧 디자이너의 취향이었다.

클라이언트의 로망이 그대로 구현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클라이언트는 그 날의 협의는

벽면마다 스케치한 도면과 그림을 큐레이터가 설명해 주는 듯했으며, 마치 잠시 동안 미술관 여행을

다녀온 듯 감동이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와 같은 신뢰를 온몸으로 느낀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상당히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결코 매 프로젝트마다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니며,

손에 꼽을 만큼 행복한 일이다.      


탄력을 받아 빠르게 다음 일정들을 소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조각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제는 완성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족족 그 퍼즐 조각이 어디에 들어갈지 눈에 보여,

손이 먼저 움직이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퍼즐을 빠른 속도로 맞춰가며 남는 조각이 줄어들고 마침내 마지막 조각을 집었을 때의 흥분과 설렘처럼

마지막 공정에서의 내 가슴은 너무나도 두근거렸다. 하나씩 마감하며 마침내 로망의 구현은 끝이 났다.

약 한 달 남짓한 시간에 걸쳐 모든 과정이 끝난 것이다.     

모든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주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했으면 싶었는데 역시 알아서 해주셨군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디자이너로서 듣게 되는 일반적인 말과는 달랐다.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과 개인적인 성취감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또한, 공간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정의하는 나만의 표현법을 바꾸게 만들어 주었다.     


이 글에서 나는 상대방이 구현해내고자 하는 자신만의 로망을 공간적으로 설계하고 실체화

시켜 구현해내는 것이 공간 디자이너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의견들은 반드시 융합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야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과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망과 기능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기능의 편을 들어 늘 로망을 멀리했고, 로망과 디자이너의

취향과 욕심이 부딪칠 때는 클라이언트 위해 내 의견을 포기해왔다.     


그때의 나는 내 직업인 공간 디자이너를 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공간을, 하고자 하는 내용들로 채워 줄 수 있습니다. 또 미적인 부분은 물론이며, 기능적인 부분들도 놓치지 않는 계획을 합니다. 그것이 공간 디자이너입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를 포기할 필요도 없었던 이번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디자이너의 취향과 욕심도 로망 표현법의 일환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며, 때로는 로망이 기능을

압도적으로 이겨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공간 디자이너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로망을 공간으로 구현해드립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공간 디자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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