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아서 정지싸인 앞에 차를 멈추면 저 멀리 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집이 왠지 모르게 텅 빈 느낌이다. 환한 얼굴로 맞이해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살짝 문을 열어봐도 역시 아무 인기척도 없이 텅 빈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환한 움직임을 기대했던 작은 희망이 꺼져버린 것을 확인한 마음이 공허함으로 휩싸인다. 뭔가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알지 못할 그리운 생각에 빈집은 더욱 크게 느껴지고 혼자라는 삶의 고독이 무겁게 느껴진다. 십여 년간 함께 했던 도우미견 주마가 떠나고 한동안 느껴보지 못한 빈집의 소리 없는 고통을 새삼 다시 느껴보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 멀리 집이 눈에 들어올 때부터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실 엄마의 얼굴을 늘 미리 그려보며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느끼던 습관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활짝 핀 웃음 가득한 얼굴을 상상하며 한껏 부풀어 오른 희망이 문을 열고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푹 하고 꺼져버리며 엄습해 오던 공허함과 실망감을 난 “빈집”이라고 표현했었다. 엄마의 마중을 기대했다 매번 깨어지는 외로움의 반복경험은 멀리서 지붕만 봐도 빈집의 공허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은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더 맥 빠지게 했고 뭔가 하고 싶다는 의욕조차 없게 에너지를 방출시키곤 했다. 일하시는 분들이나 다른 가족들로 집안이 벅적거려도 엄마가 없는 집은 늘 빈집이었다. 나만 엄마에게 집착하는 아이였을까?
엄마의 존재는 어린아이에게 세상 어느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잘것없이 조그만 자신을 담대하게 만들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고 열심히 일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공급과 우리를 보호할 옷을 마련해 주시는 실질적인 조력자이다. 또한 밖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저녁에 들어오면 그 모든 아픔을 어루만져 감쪽같이 낫게 하는 신통력을 가진 의사이고 엄마가 웃는 것과 엄마의 인정을 받는 것이 삶에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어린 나에게 보다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삶의 지혜와 가치판단 기준을 마련해 주는 신격인 존재가 엄마였던 것이다.
엄마가 없는 빈집에 들어갈 때마다 힘이 빠짐을 경험하면서도 점차 나이가 들어가자 나름대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힘들게 일을 하고 들어오신 엄마는 하루종일 험한 세상을 혼자 겪어 낸 듯 엄마의 귓가에 재잘대던 어린 나의 세상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실 여유가 없으셨어도 오히려 피곤에 찌든 엄마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매번 빈집을 경험하는 나의 마음을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은 잊고 사는 것이지 치유되어 사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얼마 전 박사과정의 한 제자가 한국과 미국의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지된 지지도와 행동 간의 상관”연구하는 것을 도운 적이 있었다. 논문의 결론은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부모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학교에서의 문제행동과 상관이 있었고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친구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지하는 정도가 그들의 문제행동과 상관이 있었다. 고등학생의 경우 부모보다 친구의 역할이 좀 더 커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될까 봐 조바심을 하게 되고 자녀가 나쁜 행동으로 문제가 생기면 거의 다 나쁜 친구의 영향 때문이라고 이유를 대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연구결과이다.
좋은 친구를 선별하는 능력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좋은 가치판단 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내면화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가 어린 초등학교 시기에 좀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고3자녀의 입시준비 때는 부모가 함께 입시준비를 하듯 집을 비우지 않고 함께 한다고 들었다. 실질적으로 더욱더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그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감싸 안아주며 그들의 하루를 지지해 주는 안정감이 고3 때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는 기초가 된다. 생활에 바쁘다 하더라도 스케줄을 조정하여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함박웃음으로 마중을 하는 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심리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글은 2008년 7월 28일 미주 한국일보 전문인 칼럼에 기재되었던 글을 업데이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