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굿바이, 슈타인!

나 도인의 퇴임식

by 교주

“테스트… 테스트…”

마이크가 한 번 낮게 울렸다. 삐익~하는 금속이 떨리는 소리가 천장으로 튀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여운이 강당 안에 얇게 남아 사람들의 귀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도인은 단상 아래 의자에 앉아 그 울림을 듣고 있었다. 오래 강의를 하며 수없이 잡았던 마이크였는데, 이유를 콕 짚을 수는 없는 야릿한 감정으로 이상하게 낯설었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도 늘 생소했던 마이크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에 잡혔다.


강당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계공학과 나도인 교수 정년 기념>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지나치게 단정한 그 문장은 오히려 사람보다 더 오래 남을 것처럼 보였다. 앞줄에는 교수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 뒤로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등을 곧게 세운 채 박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올라오는 온기는 강당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데우고 있었고, 천천히 도인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정년식은 늘 비슷한 순서로 흘러간다. 업적이 정리되고, 지나간 시간은 미화되고, 적당한 농담이 웃음을 일구고 나면 마지막에 당사자가 마이크 앞에 서게 된다. 아직은 자신의 차례가 멀었는데도 도인의 시선은 자꾸 단상 위의 마이크에 멈추고 있었다. 저걸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던가 싶었다. 기계의 원리를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선택 이야기를 꺼내고, 설계를 말하다가 인간의 기준을 묻던 시간들. 강의는 늘 옆으로 조금씩 흘렀고, 학생들은 가끔 길을 잃기도 했다.


뒤쪽에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림의 지루함을 채울 듯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말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라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저 교수님 참 좋으셔. 근데 가끔 헷갈려.” “뭐가?”

“내가 공대를 온 건지 철학과를 온 건지.” 옆에 있던 학생이 “나도” 하고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도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공대 맞는다” “등록금은 아까워하지 말아”하고… 뒤에서 바로 겸연쩍은 듯 큰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은 강당 안의 묵직한 분위기를 한 번 가볍게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단상 위에서는 학과장의 축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도인의 귀에는 다른 소리들이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누군가는 그를 철학과 교수인 줄 알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인슈타인 동네의 소크라테스라고 농담을 던졌다. 도인은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대신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 위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낡은 책상 위에 놓인 두 장의 종이를 응시하며 앉아 있던 밤이 스쳐 지나갔다.


원서 접수 전날이었다. 책상 위에는 같은 크기의 종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 차이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손을 올리면 미묘한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방문 너머에서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냐”하던 아버지 목소리가 방 안에 그대로 남아 도인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인은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가, 결국 한쪽의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펜 끝이 다른 쪽 종이에 닿았을 때, 생각대신 손목이 먼저 움직였고, 서명이 끝난 뒤에야 숨이 조금 풀렸다. 그날 이후로 그는 칼 대신 공구를 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나도인 교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박수가 터졌다가 바로 잦아들었다. 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꽃다발을 한 번 내려다봤다.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서자, 금속의 차가움이 손가락을 통해 천천히 전해졌다. 잠깐 숨을 고르고, 도인은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정년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닙니다.” 강당 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의자 등이 살짝 밀리는 소리와 함께 몇몇 고개가 들렸다. 도인은 그 반응을 잠깐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직합니다.”


웃음이 퍼졌다. 누군가가 어디로 가냐고 물었고, 도인은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철학과 공학을 접목한 소설가라는 말이 강당을 떠돌다, 한 박자 늦게 웃음으로 바뀌었다. 도인은 그 사이를 가만히 지나가듯 말을 이어갔다. 기계를 오래 연구했지만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되더라는 말, 계산은 엄청 빨라졌는데, 그걸로 뭘 선택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사람이 고민하고 있다는 말. 그리고 짧게, “선택”이라는 단어가 강당 안에 울리자, 웃음 대신 사람들의 조용한 끄덕임이 눈에 들어왔다.


강당 문을 나서자 소리가 한 겹 얇아졌다. 문이 닫히면서 박수 소리는 뒤쪽으로 밀려났고, 복도는 최대한의 조용함을 품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형광등 불빛이 숨을 곳도 없이 밝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두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소음을 만들어냈다. 로비를 지나며 도인은 벽에 걸린 사진 앞에서 멈췄다. 혀를 내밀고 있는 얼굴이 예전보다 덜 부담스럽게 보였다.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슈타인 형.”


도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나, 간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 침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잠깐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문을 밀고 나가자, 바깥공기가 바로 닿았다. 차가웠지만 묘하게 가벼웠다 마치 무거워질 줄 알았던 하루였는데 이상하게 도인이 무척 가볍게 느끼는 것처럼. 도인은 오래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버린 것처럼 어깨가 느슨해졌고, 걸음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이름이 떠올랐다. 고 무 금. 도인은 잠깐 그 이름을 바라보다가 통화 버튼 대신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직은, 다른 소리보다 지금의 조용함이 더 필요했다. 캠퍼스 길로 나서자 학생들이 스쳐 지나갔다. 웃는 얼굴과 굳은 얼굴, 어딘가로 급하게 향하는 발걸음들이 서로 엇갈리며 흘러갔다. 도인은 그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눈에 담았다.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뒤를 돌아볼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외면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앞으로 기울었다. 익숙한 경계선을 넘는 순간, 도인은 괜히 신난 어린애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캐프리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도인을 올려다봤다. 도인은 신발을 벗으며 가볍게 웃었다. 오늘부터 백수 같지 않냐고 중얼거리자, 캐프리는 잠깐 고개를 기울이다가 현관 쪽으로 돌아가 앉았다. 바깥을 한 번 보고, 다시 도인을 보는 그 시선이 분명했다. 산책 나가자는 신호였다.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이직이지..”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이직 첫날 업무 시작이다!”


캐프리가 먼저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도님, 보물찾기 출바알~

— 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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