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물건 1
나와 37년을 함께한 피아노를
나는 지금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 속을 헤매며 추억을 붙잡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추억들이 문득 내 앞을 스쳐 간다.
20대 초반 신학교 보육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절에
‘반주법 수업’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음감도, 음표도 모르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수님께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피아노 학원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반주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나의 피아노 배움이 불도저처럼 시작되었다.
6개월 동안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학원을 다녔다.
오죽하면 교수님께서 학원 열쇠를 내게 주셨을까.
새벽 6시에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학원에 가면,
신혼이던 교수님께서 그 이른 새벽에 나를 위해
직접 레슨을 해주셨다.
이제 와 돌아보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낮에는 학원 강사를 하고,
밤에는 신학교를 다녔다.
아침 밖에 시간이 없었던 나는 매일
그 먼 거리를 걸어가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반주법 한 곡을 배우면 외울 때까지 치고 또 쳤다.
그렇게 찬송가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처음 배운 찬송가가 생생히 기억난다.
185장 ‘내 너를 위하여’,
C장조의 그 곡을 완벽하게 외우고 나니
모든 C장조 찬송가를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를 처음 구입할 때의 일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월급이 18만 원이었는데
무려 180만 원을 주고 샀다.
지금 생각해도 큰 결심이었다.
그날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고 행복했었다.
6개월의 레슨 이후로는 독학으로
찬송가를 계속 연습했다.
잠이 많던 20대였지만
낮예배 반주는 못하니 새벽예배 반주를 하고
싶다고 목사님께 부탁을 드려
일주일간 새벽에 부를 찬송가를 미리 알아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새벽예배 반주를 거의 6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결혼 전까지 새벽 예배 반주를 계속 이어갔다.
새벽이 얼마나 캄캄했는데
겁 없이 그렇게 다녔을까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신앙인이었고,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반주자가 주일 오전예배를 갑자기 못하게 될 때 내가 반주를 대신했고 그 후로 낮예배 반주까지 맡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와의 인연이
이제 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남편을 만난 세월보다도 더 길다.
세 아들 어린 시절에
이 피아노로 직접 레슨을 해주었고
학원생 한 명에게 무료로 피아노를
레슨해 주었었다.
그 후로 만학도로 음대를 가기 위해
입시 레슨까지 받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아들 셋을 키우는 것이
내 꿈보다 더 소중했기에
결국 음대의 꿈을 포기했다.
지금 돌아보면,
많은 추억을 담은 피아노를 지금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알 것 같다.
피아노 위에 손을 얹어본다.
낡았지만 여전히 따뜻한 그 울림 속에서
나의 청춘과 믿음과 눈물이
손끝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너를 보내야 할까?
아니, 어쩌면
너는 이미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영원히 함께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