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끝에 남은 청춘, 아직도 너를 보내지 못하며

추억의 물건 1

by 스마일맘

나와 37년을 함께한 피아노를

나는 지금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 속을 헤매며 추억을 붙잡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추억들이 문득 내 앞을 스쳐 간다.


20대 초반 ​신학교 보육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절에

반주법 수업’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음감도, 음표도 모르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교수님께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피아노 학원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반주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나의 피아노 배움이 불도저처럼 시작되었다.


​6개월 동안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학원을 다녔다.

오죽하면 교수님께서 학원 열쇠를 내게 주셨을까.

새벽 6시에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학원에 가면,

신혼이던 교수님께서 그 이른 새벽에 나를 위해

직접 레슨을 해주셨다.

이제 와 돌아보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낮에는 학원 강사를 하고,

밤에는 신학교를 다녔다.

아침 밖에 시간이 없었던 나는 매일

그 먼 거리를 걸어가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반주법 한 곡을 배우면 외울 때까지 치고 또 쳤다.

그렇게 찬송가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처음 배운 찬송가가 생생히 기억난다.

185장 ‘내 너를 위하여’,

C장조의 그 곡을 완벽하게 외우고 나니

모든 C장조 찬송가를 칠 수 있게 되었다.


​ 피아노를 처음 구입할 때의 일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월급이 18만 원이었는데

무려 180만 원을 주고 샀다.

지금 생각해도 큰 결심이었다.

그날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고 행복했었다.


​6개월의 레슨 이후로는 독학으로

찬송가를 계속 연습했다.

잠이 많던 20대였지만

낮예배 반주는 못하니 새벽예배 반주를 하고

싶다고 목사님께 부탁을 드려

일주일간 새벽에 부를 찬송가를 미리 알아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새벽예배 반주를 거의 6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결혼 전까지 새벽 예배 반주를 계속 이어갔다.


새벽이 얼마나 캄캄했는데

겁 없이 그렇게 다녔을까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신앙인이었고,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반주자가 주일 오전예배를 갑자기 못하게 될 때 내가 반주를 대신했고 그 후로 낮예배 반주까지 맡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가슴 벅찬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와의 인연이

이제 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남편을 만난 세월보다도 더 길다.


​ 세 아들 어린 시절에

이 피아노로 직접 레슨을 해주었고

학원생 한 명에게 무료로 피아노를

레슨해 주었었다.

그 후로 만학도로 음대를 가기 위해

입시 레슨까지 받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아들 셋을 키우는 것이

내 꿈보다 더 소중했기에

결국 음대의 꿈을 포기했다.


​지금 돌아보면,

많은 추억을 담은 피아노를 지금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알 것 같다.


피아노 위에 손을 얹어본다.

낡았지만 여전히 따뜻한 그 울림 속에서

나의 청춘과 믿음과 눈물이

손끝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너를 보내야 할까?

아니, 어쩌면

너는 이미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영원히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