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물건 2
책꽂이 구석,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낯익은 장미꽃무늬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손에 닿은 순간, 가슴 한쪽이 애틋하고 따뜻해졌다.
필사노트도, 말씀노트도, 일정노트 등 그동안 썼던 많은 노트들을 많이 버렸지만
이 일기장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나의 결혼 후의 삶과 큰아들이 태어나서 울고 웃는 성장의 기록이 담긴 노트다.
참 오래된 추억의 흔적을 남겼던 노트이기에
버리지를 않은 것이다
오늘에서야 내 오래 전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 일기장은 1994년 여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쓴 노트이다.
그때의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낯선 삶을 살아내느라
힘들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하루하루를 내 생각과 삶과 막 태어난 아이의 일상 기록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기쁨과 슬픔, 서툼과 설렘을 글로 묶어두었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시간,
조심스레 일기장을 펼치자
시간이 한순간에 뒤로 훅 되돌아 간 느낌이다.
94년 7월 1일부터 96년 12월 28일까지의 이야기—
그 안에는 젊고 여린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울던 밤도 있었고
남편의 작은 말에 마음이 흔들리던 날,
그리고 짧은 시를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순간들. 지금 생가하니 참 지혜롭게 글을 쓰면서
위로받고 치유를 받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시절의 내가 내게 말을 건넸다.
“너, 그때 참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잘 견뎌줘서 고마워.”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시절의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이 일기장이 버려지지 않고 31년을 나와 함께해 왔다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흘렀을까.
이 일기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인생의 보물단지였다.
그 안에는 좌절을 넘긴 용기와,
감사를 배운 믿음이 담겨 있다.
한때는 남편의 사용 중이던 홈페이지에 6년 동안 육아일기를 썼었다.
세 아들의 성장 기록이 빼곡했는데,
어느 날 컴퓨터 오류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 허무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노트북보다
키보드보다 펜을 더 믿게 되었다.
손으로 쓰는 글에는 마음의 온도가 있다.
글씨마다 내 호흡이 있고, 감정이 담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손으로 하루를 적는다.
감사를 쓰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오늘 아침, 이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펼치며
나는 잠시 20대의 나로 돌아갔다.
그 시절의 설렘과 눈물이 한데 섞여
지'금의 나를 따뜻하게 감쌌다.
이 일기장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지금의 너는 그때의 네가 있기에 존재해.”
오늘 하루도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감정을 기록하며 살아간다.
이 오래된 일기장은 여전히 내 곁에서
조용히 나를 위로해 주는 가장 오래된
일기장이 내 마음을 또닥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