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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Dec 18. 2023

하루 네시간씩 일하는 직장인의 삶

굳이 열심히 노동해야만 의미있는 삶인가

[이 글은 2021년 4월에 작성된 글입니다.] 


홍콩에서 근 4년간 거주한 나는, 정통 금융권에서 핀테크 업계로 이직 후 현재 하루 평균 네시간을 일한다. (출장기간은 예외)


솔직히 주위에 말해도 안믿는 경우가 태반이라 약간 억울하다. 그렇다고 나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가? 그건 또 아니며 하루 평균 네시간은 간혹가다 주말에도 해당된다. 


반대로 내게 진정한 'Off 스위치'나 휴가란 없으며, 항상 고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 7일 깨어있는 시간에는 지속적인 메세지 체크와 업무볼 준비는 필수다.


대부분 단조로울만큼 정형화된 내 일 (새 어카운트/고객에 sales pitch 진행하기, 나와 내 팀 소개하기, 온보딩 후 적극적인 문제해결 등)의 단 하나의 예외는 내 세일즈 업무에 아주 중요한 컨퍼런스를 위한 출장 + 고객 대면미팅 진행이다. 아시아, 유럽 등지의 컨퍼런스장을 오가다 보면 생활패턴이 깨지는건 둘째치고 해당 주, 길게는 해당 월에 내시간은 아예 사라진다. 


나는 어쩌다 이런 직업과 책임을 가지게 되었을까? 


2021년도 스위스 출장때 묵었던 로잔에 있던 한 호텔 앞 전경. 


2021년 런던 출장중 사우스 켄징턴에서 묵으며 지나갈때마다 구경했던 행복한 스케이터들. 모형 펭귄을 지지대로 삼아 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보여지는 것들과 책임감


2019년 여름 어느날. 찌는 듯이 덥고 습한 홍콩 날씨를 뚫고 나는 점심시간을 근처 회사의 면접을 보는데 투자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 "탄력근무제"라는 단어를 면접관에게 직접 들었다. 


"우리는 하루에 너가 몇시간을 일하던지 상관 안해. 그냥 너는 책임감을 가지고 네 일만 잘 마치면 돼. 출근 안하고 집에서 일하거나 일이 없을땐 아무때나 너의 시간을 가져도 상관없어."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현 상사인) 면접관은 지난 몇년간 열심히 쳇바퀴 굴리듯 오전 7시-9시 사이에 출근하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에이, 그냥 적당~히 유연한 제도일 뿐이고 다들 눈치봐가며 앞다퉈 출근하겠지 뭐." 


그냥 쿨한척 하는게 아닐까라는 나의 예상은, 첫 출근한 날 보기좋게 빗나갔다. 


인사담당자: "너희 팀이 전부 매일 출근하지는 않아서, 차차 팀원들을 만나게 될거야."
나: "그들은 그럼 전부 집에서 일하니?"
인사담당자: "지금 몇명은 비행기를 타고 있을거고, 홍콩에 있는 사람들도 필요할때만 사무실을 사용해"


상사는 출근 시작한후 2주만에 오후 4시경에 만났다.


물론 해외출장이 잦은 팀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우리 팀은 그 아무도 업무가 없거나 바쁘지 않을때  "바쁘게 보이는것" 에 집중하지 않았고, 서로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만큼 자신이 맡은 일들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팀은 실적이 특출나게 좋았다. 이게 다 내 홍콩인 상사가 만들어낸 "team culture" 덕분이었다. 쓸데없는 눈치게임과 "하는 척"이 없는 회사는 이상하리만치 편하고 더이상 "월요일" 이란 단어는 나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월요일이 단순히 한 "요일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정말로 쇼킹했다. 그전에는 이 단어 하나가 나를 잠못들게 하고, 빡치게 만들었는데 말이다.


노오력 말고 나와의 타협


런던과 홍콩을 거쳐 직장생활을 한 나에게 몇 한국에서 나고자란 직장인분들의 work ethic, 즉 일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로 경이롭다. 몇가지 생각나는 예로는 노가다를 불사하고 클라이언트 및 직장상사들을 만족시키려 고군분투했던 사람들. 굳이 자동화 툴 등을 두고 본인의 고집대로 어렵게 손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무리한 자기계발 등 본인을 혹사하는 행동이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증거이며 멋있는 거라고 (때때로는 지나치게) 믿는 신념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선의 노력은 물론 빛나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게을러 터진 사람들을 보다가 열심히 일하시는 한국분들을 보면 정말 감동에 젖곤 한다. (특히 내가 그분들께 뭔가를 부탁하는 입장이면 그렇게 마음이 놓일수가 없다.) 


근데 내가 게을러서일까, 아니면 내 한국인 dna는 긴 외국생활에 둔해진걸까. 나는 어느 술자리에서 매일 자발적으로 잠도 쪼개고 식사시간도 줄여가며 새벽 2-3시까지 일한다는 엄청난 친구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는 한 한국인 지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나면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건 슬픈 삶이 아닌가?" 였기 때문이다. 나는 본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무리하게 해쳐가면서까지 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독이 묻은 화살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왜냐, 내가 이미 해보고 손해를 봤으니까. 나의 건강과 존재는 그 어떤 노동의 가치와도 맞바꿀수 없다. 물론 다른 분들은 이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어쨌든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본 "20대의 패기 혹은 열정"과 나는 거리가 다소 멀다. 


벌이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이후에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문이 좀더 좁더라도, 일단 내가 행복하고 건강한게 우선이다. 


그래서 하루 네시간 외에 나는 뭘 하는지에 대해


많이 논다. 7시즈음에는 기상해 메일과 오늘 끝내야할 업무를 체크한다. 이역만리 자취러 겸 외국인 노동자의 숙명인 끊임없는 집안일과 다양한 종류의 서류처리도 열심히 (데드라인 전에 간신히) 해놓는다. 그리고 하루에 적어도 두시간 정도는 자기계발에 투자한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중이며, 매일 운동과 산책을 하고, 삼시세끼는 주로 만들어 먹으며, 하늘도 많이 올려다보고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통화도 자주 한다. 같이 홍콩에서 근무중인 남자친구, 친구들과의 시간도 많이 보낸다. 


백지 위에 적어놓고 보니 나는 딱히 일을 열심히 하는 멋있는 사람 같지는 않다. 


근데 나는 그런 내 게으른 생활을 애정한다. 그리고 내 니즈를 우선순위에 둘 수 있게 해주고, 그 동시에 물질적으로 나를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내 직장생활을 사랑한다. 나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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