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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Dec 17. 2023

나는 새

상처, 겉으로 난 상처는 피가 나고 멍이 든다.

피가 난 곳에는 소독약을 뿌리고 연고를 바른다

사람들은 상처를 보며 말한다. "아프겠다"

그 처참한 상처를 들이밀면 어지간히 동정심 있는 자들은 

일단 병원에 보내주려 할 것이다.


나는 마음에 상처가 났다.

차라리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졌다면

사람들은 나를 마음이 약하고 자존감 낮고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은 불쌍히 여겨주었을까

"아, 쟤가 팔이 부러져서 남들보다 느리구나"라고

나를 이해해 주었을까.


새는 팔만 휘두르면 나는 줄 알지만 

둥지에서 어미새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상처 입고,

조금 더 위험한 상황 속에서

필사적으로 팔을 퍼덕여야만 날 수 있었을까.

벌써부터 상처가 난 날개 때문에 다른 새들보다

느리게 날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남들은 저렇게 쉽게 나는데

느리고 바보 같은 자세로 날고 있는 새를 

비난하는 새들로 하늘이 까맣게 채워졌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끝까지 날았어


먹고 싶던 벌레도 찾아 먹고
새로운 하늘을 발견하고
비슷한 처지의 새들과 무리를 이루기도,
또는 흩어지기도 했어

어쩌다가 나를 너무 좋아해 주는 새들도 만났는데
날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어
알다시피 난 상처가 크잖아.
언젠간 이 상처가 큰 걸림돌이 될 거야.
내 실체를 알면, 모두가 도망갈 거야

나를 좋아하는 너의 마음이 진심이었더라도
나를 좋아하는 너를 믿는 내 마음이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아.

날고, 날고, 또 날아오다 보니
어느새 태어났던 숲이 눈에 보이지 않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기어코.

바보같이 휘젓는 날갯짓이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이 가련한 날갯짓을 멈추면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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