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면 엄마와 함께 바로 병원으로 뛰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여차저차 하여 할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상황 설명을 해 준 뒤 엄마를 모시고서 수유리 집으로 왔다.
힘 내야 하니 밥은 먹자며 차려 내신 저녁 밥을 막상 입이 쓰네 하며 못 드시는 엄마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기도하자는 엄마와 함께 마주 앉았다.
그 날 무시무시한 언어를 쓰며 수술 설명을 해 준.. 누군지 모를 젊은 집도의가 나는 사실 못미더웠다. 혹 우리 아빠가 젊은 교수의 연습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못된 생각과 함께, 밤사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있었던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해 했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라도 어디 건너 수소문이라도 해서 유명한 의사로 바꿔달라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뭉게뭉게 올라왔다.
최근 법령이 바뀌어 보호자로서 요구할 수 있다는 수술실 CCTV 촬영 신청을 할까 하는 나의 말에,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 잡힌 목소리로도 '집도의를 믿어 줘야지, 신뢰를 줘야지' 하며 수술 시간 동안 그의 체력과 손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자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설사 하나님이 아빠를 그냥 데려가셔도 그의 뜻이니 그저 할 수 있는 기도를 하자는 말을 이야기하던 그 날의 엄마, 늙을 수록 다정해지는 아빠를 먹이고 입히고 그와 함께 한 삶을 감사한 추억이라며 따사로이 인정하던 그 밤의 엄마는, 아빠가 더 개인적이고 친밀한 신앙으로 중환자실에서의 밤을 보내기를, 엄마 스스로는 이미 많은 이들을 신앙 안에서 성장시킨 사람임에도 이 일을 계기로 또 다른 차원의 신앙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이러저러한 핑계로 신앙이 내게 준 옛 기억만 가지고 '나의 인생은 내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스스로를 믿는 믿음으로 지난 15년을 보낸 딸에겐 다시 하나님이 요구하는 신앙인으로서의 명예를 찾으며 살기를 기도하자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보니, 내 불안한 말과 마음도 기도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아빠가, 젊은 교수의 앞길에 성공 사례가 되어주길. 7-8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수술 시간 동안 교수와 그를 돕는 모든 이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수술에 집중하길. 우리 가족에게 매순간의 기적을 허락하시길.
그리고 내가 노쇠해져 갈 때... 엄마 아빠 같은 사람으로 늙을 수 있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