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etmom Oct 07. 2022

02 미안해 딸. 네가 내 우주여서는 안 됐었는데-2

나의 첫사랑 첫째-2

 루비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바로, 자율성이 없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은영 박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것처럼 육아의 최종 목적은 이 아이가 혼자 건강히 독립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인데. 루비는 뭘 할 때 해도 되는지 꼭 엄마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게 맞는지 틀렸는지도 엄마에게 물어보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조차도 엄마에게 물어보는 아이였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아이가 이렇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그냥 자랑스럽고 착한 딸이라고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군요.

 "루비는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 아빠도 필요 없어. 이거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뭐든지 잘하는 아이인데 무슨 소리지...?

 그래도 남편이 일부러 없는 소리를 할 리가 없으니, 그때부터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점도 찾을 수가 없었지요. 아마 제가 객관적으로 보자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존재라고 하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밥을 먹다가 "엄마 나 물 마셔도 돼?" 묻는 아이 모습을 깨닫고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건강한 방향으로 자라고 있지 않다는 걸요.


 아이에게 왜 문제가 생긴 걸까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이 나올 테니까요. 사실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찾아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 안정애착에 대한 잘못된 지식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아이가 불편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저는 아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아이의 요구에 잘 반응해 줘야 안정애착이 형성된다'라고 배웠던 저는, 아이가 불편해서 우는 상황은 아예 만들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앵~" 해도 당장 달려가 아이가 불편한 상황을 해결해 주었지요. 그때는 안정애착을 형성하기 위해 그랬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아이가 불편한 그 상황 자체를 저와 동일시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해결해야 하는 불편한 감정을 제가 해결해 주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아이가 조금 자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 뭐가 불편해요, 엄마 뭐가 안돼요, 할 때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달려갔습니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만들지 않았습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은 아이가 잘 때만 했고, 어쩔 수 없이 아이가 깨 있을 때 할 경우에는 영어 비디오를 틀어주고 입으로라도 같이 놀아줬습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엄마에 의해 강제적으로(?) 항상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루비는, 심심한 시간을 절대로 견디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소파에 조금 앉아 쉬려고 하면 "엄마 심심해, 나랑 이거 하고 놀자!" 하고 달려옵니다.


2. 선택권에 대한 잘못된 지식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다 해주지 말고 선택권을 주라고 하지요. 그래서 저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선택권을 줬습니다. 식사시간을 예로 들면 어떤 숟가락으로 먹을지 어떤 물컵으로 먹을지 물었고, 무슨 반찬을 먹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정작 자율성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요즘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식사시간을 예로 들면, 식사예절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식사시간에 돌아다니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중 아이가 목이 말라 물을 뜨러 가는 것도 모르고, "왜 일어나!"라고 다그치기 일쑤였지요. 아이가 "물 마시려고~" 하면 그때서야 "응 그래 마시고 와~"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아이도 이유가 있어서 일어났을 텐데. 저는 그걸 참고 기다려주지 못했던 거지요. 그 결과 아이는 목이 마를 때 스스로 물을 뜨러 가지 않고, "엄마 나 목말라." 하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라고 해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그렇게 키워 왔는데. 제가 아이에게 주었던 선택권은 너무 좁은 범위였고, 정작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해야 하는 선택은 제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릇된 모정이었습니다. 처음 아이와 눈을 맞춘 날 했던 "이제 이 아이는 나의 우주겠구나."라는 생각은 너무 위험한 것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우주여서는 안된다는 걸, 엄마가 아이의 우주여야 맞다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 엄마가 되어, 앞뒤 안 가리고 했던 사랑 때문에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참 많이 힘들게 했네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그랬다는 말이 있지요. 사실 속으로 참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말이 제 마음을 이렇게 잘 대변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루비는 이제서야 배우고 있습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 엄마가 바쁠 때 진득하게 기다리는 법, 일일이 엄마에게 허락받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법을요. 자라 오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면 굳이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될 부분들을 이제야 배우고 있자니 아이도 저도 힘이 들지만, 더 늦기 전에 바로잡을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루비에게도 제가 우주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조금 아쉽지만, 루비는 이미 세상의 전부가 엄마인 시절은 조금씩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보다 티니핑이랑 놀고 싶고, 엄마 말고 친구랑 자고 싶은 날도 생겼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서 조금씩 자리를 비우겠지요.

 그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건강할 수 있게, 저도 더 많이 배워 보려고 합니다. 아이의 우주에 제 자리는 점점 작아지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돌아봤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게 바로 엄마일 테니까요.♡

.

.

#inetmom #육아이야기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 아이 넷 키우는 워킹맘이다 보니 발행기간이 일정치 않지만 이해 부탁드려요.

좋아요&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01 미안해 딸. 네가 내 우주여서는 안 됐었는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