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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Nov 30. 2021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서평


성별 임금 격차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뿌리 깊은 사회 문제이다. 과거에 비해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7년 기준, OECD 국가의 여성은 남성보다 14% 정도 적게 번다. 한국은 격차가 35% 로 더욱 크게 벌어진다. 지구 상에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어 보인다. 여러 국가에서 여성이 더 높은 비율로 대학을 진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성별 소득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남녀 임금 불평등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수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일터에서의 성차별과 남성 클럽에서의 배제와 같은 기회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경쟁에 덜 적극적이거나 협상에서 덜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직종 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가 중요한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요인들을 합치면 성별 임금 격차의 이유가 충분히 설명될까?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첫 여성 종신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의 최신작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저자는 성별 소득 격차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100년 동안의 대학 졸업 미국 여성들의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은 바로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이라고 설명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노동의 구조화 방식에서는 시간 사용 유연성을 적게 허용하고 가장 긴 노동 시간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훨씬 많은 보상을 얻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고학력 여성들도 아이를 낳는 시점부터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고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의 노동 구조에서는 부부 사이에 육아와 가정 일의 공평성을 지키려면 매우 비싼 비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부부간의 동등함이냐, 더 높은 가구 소득이냐 이 두 가지를 놓고 택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가정은 경제적 혜택을 최대화하려고 부부가 역할을 분담한다.


저자가 미국 인구조사 데이터의 500개 직종에 대해 살펴본 결과 직종 간 분리 요인은 성별 소득 격차 중 3분의 1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나머지 3분의 2는 직종 안에 존재하는 격차라는 이야기다. 돌봄과 커리어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는 커리어를 갉아먹고 아이 낳는 것을 미루면 커리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갉아먹는데 이 타이밍이 잔인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젠더 역할 규범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에서 가정의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로 여성이 시간 유연성이 높은 저임금 일자리를 택하기 때문에 성별 소득 격차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 결과이다. 남녀 간의 소득 격차는 커리어 격차의 결과이고, 커리어 격차는 부부간 공평성이 깨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출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저자는 현재 노동이 구조화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탐욕스러운 일에 압도적으로 많이 주어는 보상을 줄이고 유연한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그 일자리가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돌봄 제공자들이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돌봄을 지원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해결책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여성들이 걸어온 길을 다섯 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그들의 일과 가정에 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서사를 펼쳐 보인다.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1878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대졸 여성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커리어, 결혼, 가정 (출산과 육아) 세 가지 조합의 변화 과정으로 풀어내었다. 각 세대가 처한 환경이나 일궈낸 성취와 진전은 서로 달랐지만 성공적인 커리어와 행복한 가정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은 언제나 시간 충돌과 시간 제약의 문제에 직면했다. 세대마다 그 당시 노동 환경과 법규나 제도의 차이로 인해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서로 달랐고, 여성들의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변화해 왔다. 전 세대 여성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고 그 세대의 성취, 교훈과 배움을 다음 세대에게 전했다. 기혼 여성과 아이가 있는 여성들을 짓누르던 고용 제한 정책이 사라지고 피임약이 개발되고 사무직 노동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이렇게 다섯 번의 세대를 거쳐오면서 여성들의 선택지들이 계속해서 재배열되었고 커리어에 대한 열망을 성취로 연결시켜 결실을 맺는 기회가 크게 확장되었다.  

출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집단 1은 1878-1897년에 태어나 1900-19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당대의 가부장적 규범과 제약들 때문에 가정 또는 커리어 중 하나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있는 여성 대부분은 일하지 않았다. 집단 1 여성의 3분의 1은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고학력 노동자로서 버는 높은 소득으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었기에 독립적인 삶을 추구했다.  


집단 2의 여성들은 1898-1923년에 태어났고 1920-1945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 집단은 먼저 일자리를 갖고 그다음에 가정을 성취한 특징을 보였는데, 결혼 전까지 한동안 일하고 결혼 후에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대공황으로 경제 불황이 크게 악화되어 공립학교 및 기업의 사무직에서 기혼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 등 여성 고용을 제약하는 정책과 제도가 확대되었다. 개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난 외부 요인으로 커리어가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집단 3은 1924-1943년에 태어나 1946-1965년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다. 집단 3 여성들은 90%가 결혼했고 기혼 여성 대부분이 아이를 가졌다. 이들은 결혼 후에도 일을 유지하다가 아이를 낳을 때 즈음에 노동시장을 떠났다. 이들에게는 가정이 커리어보다 우선순위가 높았지만 아이가 큰 다음에 특히 교직이나 사무직으로 돌아와 커리어를 일구는 경우가 많았다. 1940년대 이후에는 기혼 여성의 고용을 제약하는 제도가 사라지면서 가능한 일자리가 다양해졌다. 여성들은 시간 안에 응결되지 않고 '게임 플랜'을 세웠고 가정 먼저, 커리어 나중 순서로 순차적으로 두 가지를 성취하려고 노력했다.

 

집단 4의 여성들은 1944-1957년에 태어났고 1960년대 중반-1970년대 말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들은 앞 세대에서 아이를 키운 후 노동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커리어 열망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장기적인 커리어 경로를 단단히 다진 뒤에 가정을 꾸리기로 계획했다. 경력의 공백 없이 오랫동안 성장하는 일을 할 때 보상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문 석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변호사, 의사, 경영자 등 고소득 전문직에 진출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난 첫 세대다. 집단 4 여성들에게는 임산과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피임약이라는 무기가 주어졌다. 피임법은 이들이 성취감 높은 커리어를 추구하는데 필요한 커리어 초반의 도전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집단 5는 1958년 이후에 태어나 1980년 무렵 졸업하기 시작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앞 세대 여성들이 출산을 너무 오랫동안 미뤄 가정을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들은 가정을 희생시켜서 커리어를 달성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집단 5 여성들은 생식 관련 기술의 발달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며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한 세기에 걸쳐 여성들이 다층적인 어려움 가운데에서 일궈낸 진전의 궤적을 살펴보니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교훈과 배움이 쌓여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가장 고무적이고 흥미로웠던 변화는 다섯 세대를 관통하면서 뒤 세대로 갈수록 커리어를 성취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과 같은 세대 안에서도 나이가 들면서 커리어를 꽃피우고 가정과 커리어를 모두 이루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한편으로 한 여성이 삶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단계마다 전업맘, 워킹맘, 경력단절 여성 등 같은 맥락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고 고단하게 분투한 모습도 그려진다. 여성들은 탐욕스러운 일의 구조와 사회문화적 젠더 규범과 불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의 열망을 추구해왔고 그 지혜와 배움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어 지평을 넓혔고 계속해서 진전을 이루어 냈다는 것을 데이터가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돌봄과 경제는 명백하게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이 드러났고 노동이 구조화된 방식을 바꾸어야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된 재택근무 환경이 단기적으로 보면 유연성을 갖기 위해 노동자가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궁극적인 영향과 결과를 모른다. 그리고 노동 시간과 장소의 유연성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고학력 고소득 직종에 몰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코로나 기간 동안 목격했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가고 부모가 일터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일부 높은 소득을 올리는 전문직 종사자들은 여전히 시간 유연성의 혜택을 누리면서 추가 비용은 감수하지 않고 일을 한다. 저자가 제안한 해결방안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일부 특권층이 수혜자가 되지 않고 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저자가 들여다본 지난 20세기의 노동 환경과 사회 문화적 규범이 2021년에도 유효하다는 점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리 사회가 더 높은 수준의 성별 공평성을 갖기 위해서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탐욕스러운 노동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 변화는 단지 여성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적으로 개인들이 가진 역량의 배분이 향상되고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이 늘어나서 모두에게 이롭다. 과거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변화를 위한 첫 단계, 아니 첫 단계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도 우리가 이어받은 바통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기 전에 해야 할 우리 세대의 몫은 무엇일까? 개인 한 명이 애쓴다고 무얼 얼마나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뾰족한 답은 없다. 그래도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커리어 그리고 가정> 책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어 읽고 계속해서 이 문제를 꺼내어 이야기하고 담론 화하는 것일 테고, 그게 돌봄을 병행하며 일하는 여성 노동자 '내'가 내딛을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 서평을 쓸 기회를 주신 생각의 힘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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