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그린 May 11. 2022

너와 내가 연결된 구멍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매끄럽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조금 일찍 기저귀를 떼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금방 바뀌었다. 기저귀가 마침 떨어진 날, 우리는 야외에 있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는지 아이는 참지 못하고 쉬를 했고 젖은 여벌 옷으로 가방은 무거워졌다. 화장실을 찾기 힘든 밖에서 아이를 둘러업고 다니는 일이 보통이 아닌 것을 느끼고 천천히 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푹푹 찌는 한 여름이 되었다. 아이는 반팔을 입고 기저귀만 차고 다녔다. 쫄래쫄래 안방과 거실을 오가던 아이가 답답한지 기저귀를 만졌다. 힘으로 쭉 내리는 기저귀 밴드 부분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다 찢어진다. 안돼~~”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는 까르르 웃느라 뒤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이제 진짜 기저귀와 이별할 때가 온 것 같아 변기와 팬티를 주문했다. 변기에 흥미가 생긴 아이는 의자처럼 앉아보고 그 위에서 책을 읽었다. 낮에는 놀다 말고 다급히 뛰어가 볼일을 보았다. 밤에는 세 번 정도 이불에 쉬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수하는 일도 없어졌다. 완벽하게 배변 훈련이 끝나고 아이는 뿌듯한지 자꾸 나를 불렀다.

“엄마, 좀 보세요. 쉬했어요!”     


어김없이 변기에 앉아 있던 아이가 허벅지 살을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이 뼈는 누가 만들었어?”

“응, 그건 하나님이 만드셨지.”

“우와, 하나닝? 대단하다”

나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을 들은 것만으로도 아이는 기뻐 보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가락을 구부렸다. 동시에 발가락도 구부려 쏙 기어들어 가는 것을 반복했다. 점토 놀이를 하다가, 신발을 신다가, 우산을 쓰다가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나에게 온 건지 이해시켜 주길 원했다. 공장과 회사에서 만든다는 대답은 늘 똑같아 만족스러운 걸까 싶었지만 딱히 다른 답도 없었다.


           구멍여행 (김하늬 글. 한태희 그림/ 교원출판사)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 중에 구멍 여행이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별이는 악어 인형 둥이와 목욕을 하다가 욕조 마개를 빼버린다. 물과 함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도착한 곳에서 둥이는 별이를 뒤로한 채 어디론가 사라진다. 별이와 둥이는 개미가 사는 구멍, 게가 사는 구멍을 지나 욕조로 돌아가는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정신없이 돌아온 둥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저 여러 가지 구멍을 보고 왔어요”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그래? 우리 별이 몸에도 구멍이 있단다. 바로 엄마와 별이를 이어 주던 구멍, 배꼽”이라고 한다.


책을 덮고 아이도 옷을 걷어 올렸다. 배꼽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배꼽을 쿡 찔렀다. 탯줄은 끊어졌지만, 배꼽이 남았다. 순간 아이에게 배꼽은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연결되어있어서 더 그랬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물건이든 상황이든 태초의 시작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적이 별로 없다. 검색만 하면 만드는 과정,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누가 만든 거야? 어떻게 만들어?” 아이의 질문에 생각이 잠겼다. 그리고 아이가 손에 꼭 쥐고 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뜯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폭 시들어 버린 민들레. 댕강 잘려 나와 생기도 숨도 잃어버렸다.   

   

시대는 변하고 가상 세계를 창조할수록  다른 차원에서 사는  같다. 하지만  같은 곳에 있는 우리의 뿌리는 어쩌면 하나다. 끊임없이 연결되어 피어나고 엉키고, 열매를 맺는 순간을 맞이한다. 깊이 내린 뿌리 밑에서 우리는 손을 잡았다. 서로 다른 배꼽을 지닌 우리는 오늘도 단단한 시멘트 사이로 고된 풍파를 맞으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깨물린 사실보다 중요한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