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질’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진질은 바다에서 사는 풀이다. 내 고향 금산에서는 ‘진질’이라고 불렀는데 표준어로는 ‘잘피’, 영어로는 SURF GRASS, 파도풀이라 한다. 해조류처럼 떠다니는 풀이 아니라 바다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벼처럼 생긴 줄기와 잎을 수면 위로 뻗어내는 연안 식물이다.
진질로 덮인 바다는 겉으론 아무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마디로 역동 그 자체다. 진질 바다는 무수한 바다생물의 산실이고, 물고기들의 산란처다. 또한 영양을 섭취하고 더 큰 바다로 나갈 힘을 얻는 곳이 진질이다. 진질은 바다생명들을 위한 가장 풍요로운 밥상인 셈이다. 전 세계 환경운동단체들이 바다생태계 복원을 위해 진질을 심고 가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질 바다에서 자란 섬소년
어릴 때 고향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배가 고팠다. 배고픈 소년은 진질 밭으로 헤엄을 쳤다. 진질 줄기를 끊어서 씹으면 달짝지근한 진질물이 허기를 달래준다. 진질 줄기는 배고픈 섬소년에게 요긴한 간식이었다.
수산대를 졸업한 셋째 형님을 따라 진질 밭으로 장어를 잡으러 가기도 했다. 해가 기울 무렵에 갯지렁이를 골무 모양으로 끼워 만든 미끼를 챙겨 장어잡이를 나서면 보통 새벽 두 시까지 낚시를 했다. 어린 나는 배 안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는데 졸다 깨어보면 배 밑바닥 물탱크에는 장어가 가득했다. 진질에서 잡은 바닷장어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렸을 만큼 맛이 좋다. 어머니는 우리가 잡아온 진질 장어를 뚝뚝 썰어 넣고 국을 끓여주곤 하셨다. 구수한 된장을 풀어 끓여낸 어머니의 장어탕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육백여 날, 진질 바다의 시간
청와대에서 보낸 20개월의 시간이 나에게는 ‘진질 바다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겨울 세찬 바람과 파도를 견디고, 썰물과 밀물을 건너온 물고기들이 산란과 성장을 하는 곳, 그러다 마침내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곳이 진질 바다이다.
정치의 최고 정점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때로는 결단해야 했던 육백여 날들이 나에게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동안의 정치 경험들을 밀도 높게 응축시켜서 만족도 높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돌려드리기 위해 애썼던 그 시간들, 그리하여 모두가 풍요로운, 더 큰 바다를 꿈꿨던 그 시간을 ‘진질의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정무수석이란 정책에 민심의 옷을 입히는 사람이다.”
2019년 1월 8일, 내가 생각하는 정무수석의 역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드렸다. 이후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들이 몰아닥쳤다. 헌정사상 최초로 긴급 재난지원금을 편성했고, 일본 경제보복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강원에서 대구, 부산, 천안, 신안 앞바다까지 지역이 고군분투하는 현장들을 ‘경제투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과 함께 했다. 북미 정상회담, 공수처법, 5.18 특조위, 예타 면제, 4.15 총선 등 크고 작은 파도는 끊이지 않았다.
일기는 오랜 친구, 나를 넘어서는 힘
청와대 20개월, 그 불면과 고심의 시간들은 나의 새벽 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기는 내 오랜 습이다.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생활을 할 때는 우유팩에 일기를 쓴 적도 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매일 새벽 의원회관에서 일기를 썼다. 바빠서 아침 일기를 거른 날엔 퇴근길에 의원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 일기를 썼다. 그 일기들을 모아 <목욕탕 이야기>와 <지구 생각>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일기 쓰는 일에 굳이 의미부여를 하자면 ‘내가 나와 싸워 나를 이기는 과정’이다. 어제의 나와, 또 일 년 전의 내가 일기 속에서 만난다. 최선이라 믿었던 일들은 또 다른 확장된 생각 속에서 최선이 아닌 것이 되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버거움도 담담히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지치고 헝클어진 나를 추스르고 한 걸음을 다시 내딛게 하는 나만의 쉼과 나아감이 ‘일기를 쓰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같다.
정치도 밥상을 차리는 일
식사는 하셨습니까? 언제 밥 한 번 같이 하시죠! 밥으로 안부를 묻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빈번하고 가장 정겨운 인사다. 특히나 정치의 영역에서 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누구와 어떤 밥을 먹었는가, 언제 먹었는가 등등 밥한 끼에 담긴 정치적 파장과 무게가 엄청나다. 사실 정치란 것도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다. 여건이 힘들고 과정이 험난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일이 정치다.
청와대 20개월의 일기를 살펴보니 밥에 관한 기록들이 꽤 많다. 대통령과 함께 모내기 봉사를 하고 마셨던 옥산마을의 막걸리와 국수, 김정숙 여사께서 손수 내주셨던 설날 아침의 평양온반, 지방 최초 국무회의 때 먹었던 부산의 돼지국밥, 대통령님 취임 2주년 날 삼청동에서 먹었던 청국장이며 하루도 빠짐없었던 대통령과의 티타임 테이블에 올려졌던 이름 모를 한방차까지.
누구와 먹었어도 모두의 밥상
이상한 것은 청와대 생활 중에 마주했던 그 모든 밥상들은 누구와 먹었어도 모두의 밥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구내식당 식판의 밥이었든, 삼청동 골목길의 밥이었든, 최북단 저도어장의 해산물로 차려진 것이었든 그 밥들은 그냥 모두의 밥상이었다. 모두의 고민을 담은 밥상이었고, 모두를 생각해야 하는 밥상이었다.
나의 일기 가운데 ‘밥상에 관한 기록’을 청와대 이야기의 마중물로 쓰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차려낸 그 밥상들 앞에서 했던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인데, 그 밥상머리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내 물음은 얼마나 진화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또 얼마나 깊어졌는가 점검이 필요하다. 그 질문들을 놓치지 않아야 모두의 밥상이 더 따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밥상이야기는 <소고기국이 국가 존재 이유를 묻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