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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정 Jul 05. 2021

영빈관에 차려진 쫑즈와 홍샤오로우

밥상 열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이야기입니다




김구선생의 쫑쯔와 상하이임시정부의 홍샤오로우

2019년 8월15일은 일흔 네번째 광복절이었다. 일본의 경제보복 상황에서 맞는 광복절이라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날, 청와대 영빈관에는 특별한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다. 생존 애국지사분들과 독립유공자의 유족들을 대통령님께서 초청하신 오찬자리, 이날의 특별한 메뉴는 쫑쯔와 홍샤오로우였다. 쫑쯔는 대나무 잎으로 싼 일종의 주먹밥이다. 독립운동을 하시며 일제 경찰에게 추적을 당하시던 김구 선생께서 들고 다니며 먹었던 ‘휴대용 음식’이었다. 홍샤오로우는 얼핏 보면 동파육처럼 보인다. 간장에 두춤한 돼지고기를 조려낸 음식인데, 임시정부 안살림을 책임졌던 오건해 여사가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대접했던 뜻깊은 음식이다.


안중근 의사, 홍재하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모시다

생존 애국지사 아홉 분과 미국,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프랑스, 호주 등 해외에서 오신 독립유공자 후손들, 그리고 국내 유족과 후손들이 차례로 영빈관에 들어오셨다.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이신 황은주 여사는 중국 상해에서 나고 자라신 분으로 내내 중국에서 지내오셨는데, 이번에 귀국을 해서 여생을 우리나라에서 보내시기로 하셨다 한다.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 프랑스에서 홍재하 선생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앙(Jean-jacques Hong Fuan)씨도 오셨다. 홍푸앙씨는 현재 프랑스 중앙정부 국제무역고문이라고 하신다. 아버지인 홍재하 선생이 막노동같은 험한 일을 해서 모은 돈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독립자금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이번에야 훈장이 수여되는데, 인사말을 하신 후에 아리랑 한 소절을 부르셔서 참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유관순 열사 등과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서 ‘대한이 살았다’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셨다는 심명철 지사의 아드님은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노랫말을 낭송하신다. 특별공연의 가수로 참석한 뮤지컬 배우 홍지민 씨 역시 비밀결사 백두산회 멤버로 활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홍창식 선생의 따님이시라 한다.      

내일을 알 수 없던 상황을 증거하는 음식들

영빈관에 차려진 쫑쯔와 홍샤오로우, 그리고 각 테이블에 놓인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의 자수 태극기, 김구 선생 서명이 있는 태극기, 1945년 광복군 서명 태극기 등 독립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들을 보자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맘이 들었다. 여기 계신 분들의 바로 윗대, 어머니, 아버지가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신 것이다.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그러니 여기 차려진 이 음식들은 이분들에게는 낯선 음식이 아니다. 아버지가 쫓기며 이름 모를 담벼락에 기대어 드셨던 음식, 동지들이 잡혀가고 모진 고문을 당하는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어느 저녁, 함께 먹었던 음식이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의 수배전용 음식이었다는 '쫑쯔'의 댓잎을 펼쳐본다. 댓잎 대신 연잎을 쓴다고도 하는데 감아놓은 끈은 갈대줄기다. 주먹밥에는 견과류와 닭고기가 들어있고 간장 간이 되어있다. 찹쌀로 쪄낸 밥은 쫀득하다. 그 시절 쫑쯔보다 좋은 쌀에 재료도 풍요로워진 것이겠지만 맛있다. 사실 쫑쯔는 중국 단오절에 즐겨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찹쌀이나 멥쌀을 댓잎이나 연잎이나 대나무잎에 감싸서 쪄내는 음식인데, 부재료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개혁적 정치인 굴원을 추모하던  주먹밥이 쫑쯔로

쫑쯔를 단오절에 먹게 된 유래도 흥미롭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은 부패한 관리들과 맞서 싸우고 왕에게도 개혁을 주창했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간신들이 합세해서 쫓겨나고 만다. 굴원은 세상이 다 흐리고 취했는데 자기만 제정신이어서 쫓겨났다고 탄식하며 호남성 멱라수에 몸을 던진다. 굴원이 세상을 등진 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 단오였다. 굴원을 응원하던 백성들은 자신들이 시신을 건지기도 전에 물고기밥이 될까 염려하여 찹쌀로 만든 주먹밥을 강물에 던졌다. 그 뒤에 단오에 찹쌀주먹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어느 시대나 개혁과 정의를 외치는 자들에게는시련은 필연이다.  

김구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보면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는지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밤이면 상해 시장 쓰레기통을 뒤져서 중국사람들이 버린 배추잎을 뒤져다 항아리에 절여두었다가 반찬을 만드셨고, 어머니의 그 우거지 김치를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혁명의 맛'이라 불리는 중국인들의 최애 음식 홍샤오로우

홍샤오로우는 삼겹살처럼 비계가 있는 돼지고기를 간장과 향신료가 잘 베이도록 삶아내는 것인데 중국인들이 참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모택동 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해서 ‘혁명의 맛’이라는 별칭이 있다고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당나라 시인 소동파가 만들어 백성들에게 주었다는 동파육과 비슷하다. 조리방법과 맛도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요즘 표현으로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단짠단짠하는 간장소스가 잘 베어있고, 건고추가 느끼함을 잡아주는 음식이다. 임시정부의 고단한 살림 속에서 어쩌다가 특식처럼 귀하게 마련됐을 홍샤오로우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격려, 숨막히는 상황을 버티게 하려는 최소한의 영양 섭취 등등.        

시대가 바뀌어서 쫑쯔와 홍샤오로우가 상해의 뒷골목이 아닌 청와대 영빈관에 차려졌다. 이 변화 속에서 무엇을 놓치지 않고, 무엇을 열어가야 할까. 영빈관에 차려진 쫑쯔와 홍샤오로우는 어떤 숙제와도 같다.


다시, 정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하루하루가 정말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하는 긴박감이 흐른다. 어찌나 땀을 흘리는지 저녁 무렵에는 몸에서 쉰 냄새가 푹푹 날 지경이다. 청와대에 들어온 지 6개월이 지났다. 다시 정무를 생각한다. 정무란 정책에 민심의 옷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한 정무는 무엇일까? 민심으로 기울고 있는 정책을 뽑아내는 것이다. 대통령님은 말씀하신다. 안보는 비공개 협상의 과정에 있을 때는 안보실 소관이지만 국민의 관심사로 대두될 때에는 그 순간부터 정무적 사안이라는 말씀이시다.


무역분쟁 승소와 독립유공자 처우 개선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 일본 수산물 분쟁 상소판정에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승소를 했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통상비서관실로부터 WTO 일본 수산물 분쟁 최종 판정 결과를 보고받았을 때는 모두가 기뻐했다. 대통령님은 앞으로 생길 다른 분쟁소송에 참고로 삼기 위해서라도 1심 패소 원인과 항소심에서 달라진 대응 전략 등 1심과 2심을 비교 분석한 자료를 남길 필요가 있다는 당부를 하신다. WTO 위생검역협정 분쟁에서 패널 판정결과가 상소심에서 뒤집힌 최초의 사례라는 점은 고무적이다. 전문가들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1심과 2심을 분석하고, 백서를 발간하고, 훈포상까지 해야한다.      


건국 100주년이자 삼일운동 100주년, 그리고 광복 74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가 정성을 기울인 부분이 또 있다. 5만 4,000여 국내 독립유공자들과 유족의 집에 국가유공자 명패를 달아드렸다.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형편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들에게도 생활지원금을 확대 했다. 유족 한 분께만 적용했던 자택 방문 보훈복지서비스도 유족 전체로 넓혔다. 국내로 영주 귀국하는 유족들께 주택을 지원하도록 법령 개정도 했다.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부정축재한 재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그날이 오면 

8.15 경축사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외교를 생각한다. 미일주도로 인도 태평양 전략이 구체화 되고 있다. 우리는 개방성, 포용성, 주도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신남방 정책은 대립이 아닌 함께 가는 정책이다. 이럴 때 여야가 힘을 모아 외교적 힘을 갖는 ‘국익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8월 15일, 대통령 경축사의 핵심키워드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이다.

해방 직후 발표된 김기림 시인의 ‘새나라 송(頌)’의 한 구절이다.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라는 대목에서 가져온 문구인데 당당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연설문을 준비하면서 여러 인사들께 어떤 메시지를 담으면 좋겠냐는 설문조사를 거쳤다. 모두의 염려는 경제로 귀결된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위기가 고조된 때문이리라.

경축사에 인용된 심훈의 ‘그날이 오면’도 새롭게 느껴진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던 선열들의 정신이 국민들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표현에 오늘의 열망을 담아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경축식도 의미가 다르다. 2004년 이후 15년 만이다.      


꺾이지 않는 그 정신이 내게는 있는가

선언은 쉽고, 실현은 어렵다. 하지만 깃발이 없으면 방향도 없다. 영빈관에 차려진 쫑쯔와 홍샤오로우가 내게 전해준 것은 ‘정성스러움’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다. 호주머니에 쉬어 터질지도 모를 쫑쯔를 담고 그 고단한 긴장을 이겨내는 마음,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가는 정성스러움, 견뎌야 할 것들을 위해 꼭꼭 눌러담은 쫑쯔의 그 마음이 지금의 내게 있는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꿈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그 꺾이지 않는 정신이 지금의 내게 있는가. 우리가 물려받은 이 엄청난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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