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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Sep 15. 2022

해장국집 사람들

갤러리 호호, 2022.9.5~9.24

해장국집 사람들_chalk, graphite power and oil on linen_180x295cm_2020-22


명륜동 시장통에 있었던 선술집이 눈앞에 선하다. 거북이 아줌마가 주모로 있었는데 안쪽 한옥에 살았다. 한옥 대문이 선술집 미닫이문으로 바뀌었다. 주모는 말이 별로 없었다. 과묵하다기보다 말이 지독하게 느리고 어눌했다. 허나

장사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웬만한 소란은 무언의 표정으로 잠재웠다.


상호가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곳을 자주 갔다. 거긴 잘 알려지지 않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 히피이즘에 매료된 무정부주의자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점상을 위시하여 시장의 장사꾼들, 공사판의 노동자들,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룸펜들, 그밖에 뜨내기들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들락거렸다. 테이블이 여섯개 밖에 없는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너무 비좁아서 다같이 동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서로 어색해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이 선술집 특유의 데카당트하고 온화한 분위기 탓이었다.


어떤 날에는 여섯 테이블이 모두 단골손님으로 채워졌다. 시대를 방관하던 사회부적응자들, 소심한 노래패들, 지하철 공사장의 인부들,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쎈 여성 주당들, 늘 목조계단 아래 처박혀 술마시는 두 사람 그리고 파란 눈의 서양인과 한국인 친구들이 각각 테이블을 차지했다. 이들은 주방 옆을 지나 화장실로 이어지는 좁디 좁은 통로를 오가며 스치는 인사를 나누게 된다. 다들 퍼질러 앉아 장시간 마셔댔기에 두 세번째 마주칠 때면 어정쩡하게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여덟 평 남짓 되었을까. 여하튼 좁았다. 옆자리의 사람과 몸이 수시로 닿았다. 저녁 7시가 지나면 안은 바깥처럼 시끌벅적했다. 작은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들렸기 때문에 큰소리를 내고 말고 할것도 없었다. 온갖 톤의 목소리가 풍선처럼 좁은 공간을 메웠다. 대화내용은 종잡을 수 없이 다양했다. 간혹 외계인의 말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코로나가 오래된 기억 속에서 그들을 소환했다. 그때는 오감을 나눌 수 있는 개인거리 안에서 타인과 아무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거기엔 흥청망청한 온기가 있었고 왁자지껄한 목소리로 떠들썩했으며 살가운 부대낌이 있었다. 그들이 되어보기로 한다. 2020.12.2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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