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선택으로 시작된 무사의 시대
원래 황족 출신이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인생은 드라마 그 자체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인생이었지만 순간의 선택이 일본 열도의 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요리토모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던진 질문은 질서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였다. 기존 질서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인가? 안정을 뒤로하고 인생을 걸고 뛰어든 도전 뒤에는 치열한 고민의 현장으로 가보자.
때는 헤이안 시대 말기, 황족을 제외하더라도 귀족층이 너무 많아진 게 문제의 시발점이다. 황족을 유지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기 시작했고, 권력 다툼도 심해졌다. 결국 천황의 자손 중 자발적으로 귀족이 될 가문을 모집했고, 이때 하사된 성 중에서 대표적인 성씨가 다이라(平) 그리고 미나모토(源)다.
고시라카와 천황의 시기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으로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요리토모 아빠)가 패배하면서 요리토모는 중앙 정치에서 밀려나면서 이즈로 유배를 당한다. 반면 승기를 잡은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요시토모는 반란의 책임을 지고 사형을 당했지만, 유모의 적극적인 보살핌으로 요리토모만 생존하게 된다. (요리토모는 13세의 어린 나이였고, 황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요리토모까지 사형을 할 경우 다이라 가문의 독재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라는 정치적인 목적도 깔려있었다.)
이즈에 유배된 요리토모는 성인이 되면서 2가지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 다이라 기요모리가 지배하는 중앙정치로 돌아가 안전하지만 제한된 신분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아버지의 행동과 별개로 여전히 황족의 가문 혈통이었으므로 헤이안쿄(교토)로 돌아가서 풍족한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교토로 돌아간다는 건 다이라 가문이 만든 질서에 순응하고, '인정하는 위치'가 아니라 '인정받는 위치'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즈로 유배된 요리토모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헤이안 시대를 이끌어가는 귀족들의 향락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실질적인 힘, 즉 무사들의 의지를 본 것이다.
이즈로 유배된 요리토모가 마주한 건 감시자들이었다. 대표적인 감시자가 이즈의 변방 호족이었던 호조(北条) 가문이다. 호조 토키마사는 요리토모를 감시하고 있었으나 그의 딸인 호조 마사코가 요리토모와 결혼하면서 감시자에서 조력자로 바뀌게 된다. 다이라 가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지방호족들을 수탈하는 횡포에서 벗어나게 할 사람은 요리토모 밖에 없다는 절체절명의 정치적인 판단이었다.
그들이 함께 이주한 곳은 바로 가마쿠라(鎌倉)의 땅이다. 애초에 미노모토노 가문의 조상들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었다. 또한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적이 침입하기 쉽지 않은 장소였다. 정확히 말하면 교토의 다이라 가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힘을 구축할 수 있는 요새였다.
상황과 천황의 다툼, 귀족들의 다툼 간에는 빈번하게 무사들이 해결사 노릇을 하며 개입하던 시기가 헤이안 시대 말기다. 가마쿠라는 관동지방의 무사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헤이안 시대의 실권을 쥐고 있는 무사들의 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가마쿠라는 최적의 입지였다. 요리토모 자신을 위해 목숨을 불사하고 죽어줄 수 있는 무사들의 힘을 가마쿠라로 최대한 집결하여 시대를 바꿀 결단을 내린다.
관동의 무사들이 요리토모를 중심으로 힘을 합칠 수 있었던 연유에는 리더십이 한몫한다. 당시의 무사들은 해결사 노릇은 다 하면서 정작 다이라 가문의 수탈의 대상이자 소모품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불만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영토 소유권을 확실히 보장해 주며 명분을 넘은 실리까지 챙겨주게 된다. 고온(御恩)과 봉사(奉公)의 주종관계의 탄생이다.
요리토모와 그의 무사들이 당대의 최고 권력인 다이라 가문(헤이 가문)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겐페이 센소(源平戦争)의 시작이다. 이름만 들어도 미나모토(源、みなもと)가 앞에 있는 걸 보니 요리토모의 승리다. 다만 지배의 방식은 달랐다. 다이라가 태정대신의 지위에 올라 중앙 귀족으로 권력을 휘둘렀다면, 요리토모는 독자적인 무사정권을 세워버린다.
권력의 거점 또한 천황의 교토가 아닌 무사들의 본거지였던 가마쿠라에 세우게 된다. 요리토모 스스로는 태정대신과 같이 중앙권력의 최고점에 서지 않는다. 무사들의 정권을 세우고 스스로 정이대장군(일본 열도 변방의 오랑캐들을 진압하는 장수의 위치)을 만들어 줄 것을 천황에 요청하여 지위를 하사 받게 된다.
섭관(摂関) 정치는 사실아스카 시대부터 이어져온 정치 방식이었다. 천황에게 딸을 시집보내 외척으로써 권력을 독점하고, 천황의 권력을 넘어선 최고의 지위인 관백(関白)에 올라 천황을 마음대로 휘둘러온 것이다. 이를 아스카 시대에는 오오미, 헤이안 시대에는 섭관, 말기에는 태정대신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다. 아스카 시대부터 이어져 온 씨족 정치가 태정대신으로 세련된 형태로 진화해 온 것이다.
요리토모가 천황을 넘어선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그 아래에 위치했던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일본서기>에 박재되어 있는 천황의 상징성이다. 일본이란 나라의 존재 이유이자, 일본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천황을 죽이는 건 국가의 운영체제를 삭제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 모든 책임을 범하여 지방 무사들에게 반역자, 배반자, 역적으로 찍히는 순간 가마쿠라 막부의 존재 명분도 함께 삭제된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의 특유 문화인 타타리(祟り) 때문이다. 천황은 단순히 직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現人神)이었다. 역사 속에서도 신이었고, 과거에도 신이었고, 가마쿠라 시대에도 신이었다. 천황이 신에서 인간이 된 건 불과 80여 년 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인간선언'을 한 1945년이다. 요리토모는 살아있는 신을 죽이면 전염병, 가뭄, 지진이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천황을 죽이거나 몰아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타타리(祟り)는 실제로 유명 관광지를 만들었는데 후쿠오카 현의 다자이후 텐만구다. 헤이안 시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라는 인물이 있었다. 가문배경이 약했지만 스스로의 실력만으로 인정받아 우대신까지 올라간다. 권력의 이인자 자리였다. 권력의 중심이었던 후지와라 가문은 모함전략으로 큐슈로 유배를 보내버린다. 결국 미치자네는 유배지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된다.
미치자네의 죽음은 본격적인 타타리의 서막이었다. 이후 가해자였던 후지와라노 토키하라가 요절하고, 황태자도 죽고, 그 뒤의 황손도 죽어버린다. 또한 천황이 머물던 궁전에 벼락이 떨어져 천황도 죽어버린다. 믿기 힘든 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나면서 이는 "미치자네의 타타리다", "그의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고 미치자네는 천만대자재천신(天満大自在天神)으로 추대하여 궁을 짓게 된다. 다자이후의 텐만구(天満宮)와 교토의 기타노 텐만구가 그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자란 요리토모의 선택이 바로 정이대장군(将軍)의 지위였다.
이리 하여 1192년 듣도 보도 못한 무사의 정권 막부(幕府)가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만약 요리토모가 안정을 추구하고 현실의 불합리함에 눈을 감았다면 막부도 없었고, 사무라이도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전례가 없었던 권력구조를 만들어 스스로 1인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요리토모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하였다. 중앙에 귀속되면 정체성은 버릴지라도 편안함은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통제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힘을 모으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삶의 통제권을 내줘버리고 편안함을 찾는 순간, 인생의 주인에서 손님으로 입장이 바뀌게 된다.
갈등과 실익의 사이에서 내리는 결정은 쉽지 않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당장의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반드시 질문해봐야 한다.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이기적인 동기로 실행에 옮기면 실패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요리토모는 명분(기존의 권력, 태정태신)과 실리(핵심자원, 농지)를 파악하고 실리를 얻기 위해 쇼군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았다. 당시 헤이안쿄의 지도자들은 무사를 단순 소모품 정도로만 여겼다. 프리랜서였던 무사들은 귀족과 천황에 대해 충성심은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토모는 쇼군이 사무라이에게 내리는 은혜(御恩)와 그들로부터 봉사(奉公)를 제공받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다. 주군은 무사에게 은혜를 내려준다. 즉, 영토를 내려주고 소유권을 인정해 준다.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반면 무사는 주군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마땅히 죽을 수 있어야 하므로 죽을 각오로 쇼군을 봉사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쇼군에 봉사하는 무사, 사무라이(侍, 봉사하는 사람)의 등장이다.
요리토모는 유배지의 척박한 땅에서 무사들의 결핍을 충성으로 바꾸고, 타타리(저주)를 경외로 바꾼 시대의 설계자였다. 천황을 모시면서도 천하를 지배하였고, 교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본의 주인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가마쿠라는 어디인가?
어디서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곳에서 명분을 쫓고 있는가? 실리를 쫓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