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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 Mar 01. 2022

'오늘'이라는 기적

['오늘'이라는 것은 기적을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까..]


급성으로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 열이 내려가지 않아 며칠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날이 있었다. 골골대며 잠들었다가 깨기를 몇 번쯤 반복하자 약이 들었는지 열이 내려가고 식은땀이 나서 조금 늦게 잠을 청했었다. 고요한 병원의 정적을 깬 것은 어떤 한 아주머니의 울음소리였다. 새벽과 아침의 그 중간쯤이었다. 병원의 바깥에서 빨간 불빛 간판에 멈춘 구급차는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갔고, 아주머니의 울음소리는 아침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가 참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입원하면서 병원이라는 곳은 참 희망과 절망 사이였다. 생명과 죽음 사이의 저울인 듯했다. 어떤 선 하나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만 같았다. 아픈 것을 낫게도 해주지만 인생의 나쁜 소식을 듣게도 하는 곳이었다. 안도와 깊은 한숨과 숨이 멎는 듯한 슬픔을 가져다준다. 더욱이 응급실은 긴박하고 가장 위태로운 전쟁터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간절해지는 곳이니 말이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모르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허탈하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리석고 미련하게도 오늘을 살면 내일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처럼 여기고 살았다. 우스개 소리로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라는 말을 자주 썼었다.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 위한 핑곗거리였다. 사실 삶이라는 것이 내일을 장담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닌데 너무나도 쉽게 내일을 생각했었다. 미련하게도 말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은 기적을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숨을 쉬고 움직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그들도 나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은 삶의 가장 큰 기적이었다. 이러한 것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기적이라는 것을 무시하며 지내왔었다. 나를 둘러싼 소중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기적을 바라기만 할 뿐 눈앞에 둔 기적은 바라보지 못했었다. 마땅히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나의 권리라는 듯이 말이다.


사실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고는 있지만 깨닫지는 못한 상태.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른 것이니 말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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