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마음먹는 순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29살 가을이었다. 20대 마지막 가을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며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몽이(2018년 3월 5일에 태어난 비숑 프리제. 같은 해 8월 3일 우리 가족이 되었다)의 목줄을 잡고 길을 나섰다. 나만큼 몽이도 기분이 좋은지 걷는 내내 킁킁거리며 가을의 향을 들이마셨다. 맑은 하늘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귀여운 몽이를 보며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숨이 찼다. 오랜 시간 걸은 것도 아니고 빠른 속도로 걸은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마음은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어 했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나는 몽이를 안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와 물을 마시고 가쁜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진정이 돼 샤워를 하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내 모습보다 훨씬-, 뚱뚱한 나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살이 쪘을까, 싶었다. 온몸이 지방에 뒤덮여 있는 모습에 놀란 나는 샤워 후 곧장 체중계로 올라가 체중을 쟀다.
79.8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였다. 사진을 찍지도 않았는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날의 숫자. 나는 살면서 숫자가 주는 공포를 느낀 건 처음이었다. 몸무게 앞자리가 8에 가까워진 줄도 모르고 그렇게나 먹어 댔던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렇게 살기 싫었다. 숨이 차서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싶지도, 뚱뚱한 나의 모습을 거울로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로 살아감에 있어 큰 결심과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또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지만, 이번엔 꼭 성공하겠노라 가족들에게 호기롭게 선포했다. 그런데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두려움은 너 이번에도 성공 못 해, 라며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것에 성공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하지만 두려움에 지기 싫었다. 더는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내가 내 자신을 이겨 버리겠다, 고 속으로 소리쳤다.
이전에는 다이어트 결심 후 바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다이어트하면 앞으로 먹지 못하니까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는 게 내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대신 책상에 앉아 빈 노트와 연필 한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다이어트, 라는 단어를 크게 쓰고 여러 번 읊조렸다. 계속 읊조리다 보니 도대체 다이어트가 뭐길래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이어트가 뭘까. 초록색 검색창에 다이어트를 검색했다. 많은 광고가 나를 유혹했지만, 굳이 보지 않고 스크롤을 내렸다. 스크롤을 반 정도 내렸을 때, 사전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사전은 다이어트를 음식 조절. 체중을 줄이거나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제한된 식사를 하는 것을 이른다, 고 정의했다. 몇 번을 읽었더니 혼란스럽다. 내가 생각한 다이어트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게 다이어트는 힘든 것이었다. 오로지 예뻐 보이기 위해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먹고 싶은 것을 무조건 참고 웬만하면 먹지 않는 것. 이게 내 다이어트의 정의였다.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그게 내 다이어트였다.
나는 입에 늘 다이어트를 달고 살았지만, 다이어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전적 의미를 여러 번 되뇌고 펼쳐둔 노트에도 꾹꾹 눌러 썼다. 다이어트의 뜻을 제대로 알고 다이어트에 관한 생각을 바꾸니 자연스레 두려움이 옅어졌다. 왠지 이번에는 꼭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내 생각과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저 사전을 봤을 뿐인데 생각이 바뀌고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마음먹었다, 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반평생을 다이어트에 시달렸던 내가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간 순간이었다. 뭐든 제대로 마음먹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라는 말을 어디서 본지는 몰라도 이 말이 떠올라 일기장에 써 두었다. 2019년 9월 2일 월요일. 나는 처음으로 다이어트 성공을 위해 제대로 마음먹었다.
* 사진: Unsplash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