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다시 글을 쓰게 된 일.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글 쓰기는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누가 불러도 듣지 못할 정도로 푹 빠졌었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끝까지 읽어야 하는 나였다.
글을 쓰는 데에 큰 제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글 쓰기? 라기보단 기록하기를 좋아했다.
오늘의 하루를 기록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어 안정이 되는 기분이어서 즐겨했었다.
그랬던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육아를 하며 잠시 잊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마음이 썩 힘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음이 힘들거나 내 스스로에게 위로의 시간이 필요할 때, 버릇처럼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졌던 것 같다.
육아를 하다 일을 시작했고, 1인브랜드를 런칭하여 열심히 자리 잡는 시간에 힘들었던 마음을 나는 또 글로 붙잡았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열심히 글을 써봐야지!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바쁘다는 핑계 삼아 멈췄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인내심도 부족하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써 둔 글을 보니 우리 아기가 새삼.. 19개월이었다. 지금은 어느덧 42개월이 되었고, 조금이나마 써뒀던 그 기록에 나는 애잔함과 후회를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그 시간 속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해본다.
기록이란 건 이런 거였는데.. 또 잊고 지냈다!
불과 며칠 전, 밤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아이가 나를 깨웠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물을 마시고 싶다기에 화장실에서부터 정수기까지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그 길이, 순간적으로 너무 멀게 느껴지고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얼른 물 주고, 들어가서 자야지. 이 생각뿐이었다.
엄마다 보니 극심한 어지럼증에도 꾹 참고 물 주기 미션까지 끝을 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울기 직전의 남편의 얼굴이 보였고 핸드폰 너머 119 숫자가 보였다.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와 함께 구급대원의 목소리도 저 너머로 들려왔다.
“깨어났어요! “
- 뭐야..? 나 괜찮아, 왜 그래?
“의식 있어요,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쿵! 하는 큰 소리에 남편이 놀라 일어났고, 아이가 넘어진 줄 알았던 소리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쓰러져 넘어지는 소리였다.
의식 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는 뒤로 넘어간 채 두 팔이 경직된 상태로 나는 기절해 있었다.
놀란 남편이 어디서 그런 초인적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번쩍 들어 거실로 눕혀 하얗게 질린 내 얼굴보다 아마도 더 하얗게 질렸을 얼굴로.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에 전화까지 했던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엄마가 물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생각하고 있었고,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 기억이 없다.
너무 무서웠다. 다시 잠드는 게 무서웠고, 깨어나지 못할까 봐 그리고 내가 지금 보고 있고 누리고 있었던 이 모든 생활이 오늘이 마지막이 되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 찾아갔고, 피로가 누적되어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이 날의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일종의 리셋 버튼을 누른 계기가 되었다.
‘잘 잤어? 좋은 아침이야.’라는 말이 그렇게도 소중한 말인 줄 몰랐고, 나의 존재감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지도 몰랐다.
그저 엄마 혹은 아내의 이름으로 당연하게 느껴졌던 내 자리의 소중함이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엔 좀 더 꾸준하게 내 삶을 돌이켜보기로 했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나를 가꿀 수 있는 건 나뿐이다.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며, 이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엄마란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을 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해주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엄마란 이름은 나를 자꾸 잊히게 만든다. 내 몸이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 왔음에도 엄마라는 이름 아래에, 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을 수많은 엄마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몸이 지쳐 나도 모르는 새에 쓰러지기 전에, 내 마음을, 그리고 모두의 마음을 다독이고 나누고 싶어 다시 써 내려가본다.
어디선가 본 글귀가 요즘 내 머릿속에 유독 오래도록 남아있다.
“내가 내 아이를 좋은 환경에 두듯이, 나도 좋은 환경에 둬야 해요.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아이를 사랑하듯 스스로도 사랑해주어야 해요. “
나를 내 아이 대하듯 조금 더 사랑해줘 보자.
어쩌면 내 아이보다 내 스스로에 대해 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엄마들이 육퇴 후에 반성보단 사랑이 더 많이 남아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