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아까 분명히 택시 보라고 했는데... 택시를 놓치면 안 되지...(중얼중얼)"
스타렉스 앞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에 눈 앞이 개기일식마냥 보이는 나한테 저런 말씀을... 화장실에 갈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나는 점점 예민해져만 갔다.
"아까 택시번호 ####이었어 한 번 찾아봐봐"
앞에서 다른 계장님이 말씀하셨다. "####.... ####...." 나는 입으로 번호를 되뇌며 두리번거렸지만, 사실 그건 그냥 일종의 보여주기 쇼였다. 앞이고 옆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번호판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두리번거리는 척을 하며 옆에 앉은 진웅이의 상태를 살펴보니, 진웅이는 이미 눈이 반쯤 풀린 채 입을 벌리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이이--- 지이이잉---
한창 보여주기 쇼를 하고 있는데, 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김별희였다.
"응 언니"
"도연아 너 어디야??"
"나 지금 스타렉스 안이야"
"스타렉스...? 지금 어딘데...?"
"여기... 모르겠어... 서면이라는데 택시를 놓쳐서 그냥 갓길에 서있어 언니는 어디야?"
"어...? 스타렉스라고...? 나 지금 씻고 나왔는데..."
본인의 CCTV 순번 시간이 되기 전에, 김별희는 우리가 오늘 묵게 될 모텔에 들러 씻고 있었고, 씻고 나오니 단체 메신방에 택시로 이동을 하녜, 택시를 놓쳤녜 이런저런 얘기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왜 나한테는 그런 연락을 안 해줬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섭섭함이 담겨있었다. 다들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누구는 스타렉스에 타고, 누구는 호텔에 남고, 그런데 아무도 김별희에게는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피의자를 눈앞에서 놓친 우리는, 스타렉스를 타고 피의자가 어제오늘 갔던 곳과 갈만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새벽 1시경 다시 호텔로 돌아가 어제와 같이 순번을 정해 CCTV를 보기로 결정했으며, 나는 어제와 같이 김계장님과 짝이 되어 새벽 4시 조에 편성됐다. 물론 오늘은 빨래를 할 기력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새벽 1시 반경 숙소인 모텔로 들어가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일어나 어제처럼 호텔 방재실에서 CCTV를 보고, 아침 6시에 순번이 끝난 뒤 김계장님은 어제처럼 순댓국을 먹고 가자고 하셨으며, 나는 어제처럼 그 제안을 거절했다.(정말 너무 힘들어서 손사레를 쳤다)
결국 이 날 피의자는 호텔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당연하게도 우리가 예상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에 우리는 오전 내내 피의자가 갈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행방을 찾았지만, 당연하게도 피의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오후 5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그리고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고, 인천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오후 9시경이었다. 물론 김대훈은 지친 몸을 스타렉스에 싣고, 스타렉스와 함께 12시가 다 되어 인천으로 돌아왔다.
검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우리 동기들은 2박 3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본인보다 동기를 먼저 챙겼으며, 그 2박 3일 동안 우리는 '팀(Team)'이라는 단어의 실질적인 의미를 몸으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2박 3일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했지만, 그다음 날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마치 고생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쌩쌩한 체력으로 출근한 것처럼 일해야 했다.
3일간의 고생스러운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2018년 8월 30일 목요일 오랜만에 멀끔한 모습으로 출근한 나와 진웅이는 사무관님께 부산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었다. 사무관님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셨고, 고생한 막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시겠다며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소고기집에 가자고 하셨다. 나와 진웅이는 점심으로 소고기를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고, 저번 주와 같이 다른 동기들과 메신저를 하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마약수사과 서무 선배님에게 우리 방 전체를 수신자로 한 쪽지가 왔다.
2018. 8. 30. 09:50경 인천세관에서
필로폰 3,235g 적발보고서입니다.
수취지 인천 ㅇㅇ구 입니다.
2호실 배당되었습니다.
나는 서무 선배님의 쪽지를 받고 한참 동안 멍하니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흐흡... 오늘 소고기 못 먹겠는데?"
사무관님이 말씀하셨다.
"네...?"
그리고 내가 말을 하려던 순간, 옆에 계시던 최계장님께서 스타렉스 키를 가지고 나가면서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