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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피 Sep 17. 2021

검찰 수습 일지, 갑자기 부산이요?(1)

닭갈비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어

 이전까지의 나는 집에서 걸어 다닐만한 거리에 있던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지각을 밥 먹듯 했었다. 그러나 첫 출근 이후로는 그래도 나름 신입사원이라고 8시 20분 전후로 사무실에 출근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좁디좁은 원룸 관사를  명이서 쓰다 보니 누군가가 일어나서 준비하는 소리에 6시 반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안녕하십니까!"




 8시 20분쯤 출근하면 우선 사무실의 캐비닛 4개를 열고, 그다음 사무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면 그게 내 하루 일과의 끝이었다. 첫 출근 이후 일주일 동안 늘 같은 패턴이었다. 출근하고 나서 약간의 막내일을 하고 나면 8시 30분쯤 하루 일과가 끝나 퇴근할 때까지 계속 자리에 앉아서 멍때리거나 컴퓨터 메신저를 이용해 동기들과 잡담을 했다.


 


 핑계를 대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선 검찰청의 모든 업무는 전산상으로 처리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전산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고 정식 공무원 신분이 아닌지라 서류 하나 조차 제대로 꾸릴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신규라는 이유로, 막내고, 또 후배라는 이유로 인천지방검찰청 마약수사과의 모두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잘해주셨다. 검찰청의 특수한 문화이기는 하지만 수습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밥이나 커피를 내 돈 주고 사 먹은 기억이 없다. 검찰청의 상명하복 구조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 떠도는 카더라는 많지만 신규직원으로서 내가 겪은 '검찰청'이라는 곳은 최소한 신규직원에게만큼은 굉장히 관대한 조직이었다.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출근을 한 지 딱 일주일 차가 되던 2018년 8월 27일. 그날 점심은 우리 사무실의 최계장님과 옆 검사실의 박계장님께서 나와 내 동기들까지 수습수사관 7명을 데리고 회사 근처의 닭갈비집에서 점심을 사주셨고 닭갈비를 배 터지게 먹은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어 졸려 죽겠다... 메신저에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계속 쉬기도 눈치 보이고 정말 죽겠네...’




 배를 두드리며 멍 때리던 중 검사실과 연결된 문이 열리며 검사님께서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2호실 전원 잠깐 얘기 좀 하시죠”




검사님의 호출이었다. 일주일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L검사님은 하루에 한 두 번씩은 우리 사무실 직원들을 검사실로 불러 직원들과 함께 업무와 관련된 의견을 나누곤 하셨다.




 “1호실에서 부산팀 인원이 좀 더 필요한가 봅니다. 2호실에서 인원 지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약수사과 수사관실은 기본적으로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1호실은 수석검사이신 S검사님의 지휘를 받았고, 우리 2호실은 L검사님의 지휘를 받았다. 검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자초지종을 선배님께 여쭤보니, ‘외국 마약 조직의 조직원 한 명이 부산에서 오늘 저녁 마약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 국정원 제보를 받아 1호실에서는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혹여나 조직원을 검거할 상황을 대비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부산에서 마약 거래를 한다고...? 그것도 외국 마약 조직의 조직원이...?’




 하는 일 없이 배를 두드리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갑자기 심장이 두근댔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가는 건가?'




 그러던 사이 검사님께서 다시 우리 방을 찾았다




 “계장님들하고, 신규 직원 한 명 정도 같이 가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신규 한 명 정도라는 말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방 계장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다.




 “검거 출장이니까 임 수사관 말고, 정 수사관이 가는 게 좋을 거 같네




 검거 출장이니 여자보다는 남자가 낫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건가?' 마음속에서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 사무실의 대장이신 사무관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 임 수사관, 이번에는 진웅이한테 양보하고 임 수사관은 다음에 우리 방 검거 나갈 때 그때 같이 나가는 걸로 하자고”




 사무관님께서는 내가 부산 출장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에 혹여라도 소외감을 느낄까 봐 배려해주시려는 듯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다음에 같이 나가자고 해주셨다.




 “네 알겠습니다




 첫 검거 출장 기회를 놓쳐서 아쉽기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부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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