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는 나의 본능이 한마디 내뱉었다. 점심때 먹은 닭갈비는 이미 소화가 된 지 한참이었고, 계장님들과 세관, 국정원 직원들의 회의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점심때처럼 하품을 하며 배를 두드려 보았지만, 점심때와같은 배 속의 묵직한 울림은 사라지고 없었다.
길고 긴 회의가 끝난 후, 우리는 9시가 다 돼서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메뉴는 호텔 근처에 있는 평범한 음식점이었고, 이것 저것 많은 메뉴를 하는 일종의 천국같은 식당이었다. 나는 돌솥비빔밥을 골랐고, 게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적어도 오늘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다시 호텔에 돌아온 나와 동기들은 호텔 로비 한 켠에 마련돼있는 소파에 널브러졌고, 그때까지도 김대훈은 부산에 도착하지 못했다. 계장님들은 연이어서 계속된 회의를 하셨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한 11시쯤 되었을까, 장시간 운전에얼굴이 이미 녹아내린 김대훈이 호텔에 도착했고, 가장 선임이신 김계장님께서 우리를 불러 앞으로의 계획을설명해주셨다.
우리는 2명씩 조를 나누어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새벽 2시부터 4까지,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마지막으로 6시부터 8시까지 시간대별로 4개의 조를 짰으며, 각 조는 2명씩본인의 시간대에 호텔 지하에 있는 방재실에서 CCTV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조직원이 머물러 있다는 객실 바로 아래층과 로비 앞에 세워둔 우리 수사차량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가장 선임이신 1호실의 김계장님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조에 배정되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호텔 근처 모텔에 각자 방을 잡고 조금 쉬다가, 각자의 시간대가 오면 교대를 해서 CCTV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당일 저녁은 마약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한 당일이기에 대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기에, 우리는 모두 정장 차림으로 로비에 있는 소파에 계속 앉아있었다. 새벽 1시 반쯤 되었을까, 녹초가 된 나와 우리 동기들은 모두 호텔 1층 소파에 드러눕게 되었다. 드러누운 지 약 10분쯤 됐을까 프런트에서 직원이 다가왔다.
“저기요.... 저기... 죄송한데...”
그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 이렇게 누워계시면 다른 투숙객분들이 보기 조금 그렇거든요...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 있으니 죄송하지만 앉아서 대기해주시면...”
프런트 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당시 우리는 호텔에 '수사 협조 공문'만 가지고 찾아가 온전히 호텔 측의 ‘수사 협조’에 의해 그곳에 잠시나마 대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네 죄송합니다...”
이내 나와 동기들은 모두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제대로 앉았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히 인천에서 부산까지 운전을 하고 온 김대훈의 낯빛은 마치 동짓날 팥죽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낯빛이 흙빛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대훈이 오빠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정말이지 큰일을 치를 것만 같았다.
“오빠... 괜찮아?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여...”
“야 도연아 죽겠다 진짜... 가서 담배나 한 대 피고 와야겠다”
나를 비롯한 동기 두 명은 김대훈과 동행하여 호텔 밖으로 나와 그의 담배 타임에 동참했다. 김대훈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흡연자였지만, 김대훈이 인천에서 부산까지 운전을 해서 오느라 너무나도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서울 노원구에서 인천지검까지 편도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는지라, 그 피로가 더욱 심했을 것이다.우리 동기 모두는 그의 담배 타임에 동행해주는 것으로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