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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피 Sep 17. 2021

검찰 수습 일지, 갑자기 부산이요?(4)

폭풍오열

 “우리 언제까지 여기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 얘들아 미안한데 나 지금 발냄새 나는 거 같아... 신발 벗어봐도 돼?”




 “성님아 나 진짜 허리 부러질 거 같아”





 다들 바람 쐬러 나온 김에 푸념 섞인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고, 우리는 짧은 담배 타임을 가진 뒤 다시 호텔 로비 소파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시간 새벽 2시 20분경이었다. 갑자기 김계장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더니 이제 각자 모텔 방으로 들어가서 쉬다가, 각자의 근무 시간이 되면 나와서 CCTV를 보는 걸로 하자고 하셨다.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우리는 선배님들께서 미리 예약해두신 근처의 모텔 방키를 하나씩 받아 들었는데, 호텔로 가는 도중에 우리 2호실의 한 선배님께서 나에게 귀를 대보라는 제스처를 하시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수사관님, 제가 방을 총 10개를 잡았는데, 끝에 3호로 끝나는 방 키가 히노끼 욕조가 있는 방이예요. 저희방 후배들 특별히 더 좋은 방에서 재우고 싶어서 제가 따로 챙겼습니다 쿠쿠쿠..."





 선배님의 말씀에 나도 웃음이 쿠쿠쿠 나왔다. 히노끼 욕조가 있다니... 근데 히노끼 욕조에 몸을 담글 시간이 될까? 방에 들어가자마자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에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어? 맞다. 나 지금 입을 옷이 없지.

 입을 옷이 없었다. 그래서 씻고 나온 뒤 화장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찍어 바를 스킨로션도 없었고,




 안경도 안 가져왔다. 당연히 렌즈를 뺄 렌즈통도 없었다.




 심지어 여분의 속옷도, 양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와 나 어떡하지... 지금 양말에서 냄새나는 거 같은데...'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고민했지만 좀처럼 답이 안 나왔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내 가방 안에 핸드크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곤했던 나는 '록○○' 핸드크림을 손에 짜 무작정 얼굴에 발랐다. 그리고 급한 대로 속옷과 양말을 손빨래하기로 했다. 3시 45분까지 모텔 로비로 나가야 했기에,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남은 힘을 모두 짜내 모텔 비누로 속옷과 양말을 손빨래했다. 속옷과 양말을 대충 빨고 침대 위에 올려놓았으나, 이것들이 4시까지 마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 있는 드라이기를 이용해서 빨래를 말리기 시작했다.





 빨래는 생각보다 빨리 마르지 않았다. 드라이기를 이용해서 빨래를 말리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빨래를 드라이기로 말리는데 한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내가 이 새벽에 모텔에서 드라이기로 빨래를 말리고 있다. 안돼. 정신 차려야지. 이런 걸로 울면 안 되지. 이건 울 일도 아냐. 빨래를 대충 말리고 '이 정도면 그래도 다시 입을 순 있겠지'싶은 순간,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0분이었다.





 3시 20분...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난 뒤, 히노끼 욕조에 앉아서 울다가, 침대에 엎드려 누워 본격적으로 오열을 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3시 45분에 모텔 로비에서 계장님과 만나기로 했는데... 난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시 옷을 주워 입고 3시 45분에 모텔 로비로 나갔고, 김계장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임 수사관, 좀 쉬었어?”




 “네? 네 괜찮습니다.”




 “임 수사관...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눈이 빨갛네”





 계장님은 상상도 못하셨을 거다.  내가 속옷과 양말을 손빨래하고, 드라이기로 한동안 말린 뒤, 시계를 보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오열을 했다는 사실을...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다시 호텔 지하 1층 방재실로 갔고, CCTV를 보게 되었다.




 “임 수사관, 힘들지? 이런 일이 처음이라 힘들 테니까 좀 쉬어 내가 볼게”




 계장님도 힘드실 텐데,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드셨을 텐데도 정말 다정하셨다. 그러기에 신규인 내가 그럴 순 없었다. 호텔 방재실에는 CCTV 수십대가 있었고, 우리는 호텔 로비와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내부를 비추는 CCTV를 집중적으로 봤다. 어제 출근한 이후로 여태까지 렌즈를 못 빼서 눈이 뻑뻑했다. 아까 모텔 침대에 엎드려서 오열을 한 게 차라리 눈 건강에는 좋았으리라. 새벽 4시경을 비추는 CCTV는 용했고,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김계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교대할 시간이 됐다. 6시가 되어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고, 원래의 정상 근무시간인 9시까지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임 수사관 여기 앞에 순댓국집에서 아침이나 먹고 갈까?"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계장님께서는 아침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셨다.





 “아... 아니요 계장님... 죄송합니다... 전 그냥 들어갈게요”





 계장님께는 죄송하게도 한계에 다다른 나의 피로는 계장님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간 나는 들어가자마자 입은 옷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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