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내 곁에 없었다. 엄마는 늘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바깥사람이었다. 엄마는 집을 사러 다니느라 바빴다. 엄마가 집을 두채, 세 늘여 가는 동안, 나의 마로니 인형과 그들의 집과 살림도 늘어났다.
엄마가 집에 없는 대신 미미, 라라는 물론 그녀들의 남자 친구인 토토도 집에 들였다. 이들이 사는 이층 집과, 화장대와 옷장, 식당을 계속 증축해 나아갔다. 이층에 남는 방 하나를 인형의 집으로 꾸몄다. 나는 엄마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는 적절히 바빴고 엄마는 매우 바빴으므로 책을 읽으라는 사람도,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엄마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준다거나, 팔베개를 하고 옛날 얘기를 해 준 적이 없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시간이 없었다. 그럴 수 있다. 엄마는 집을 사 모으느라 바쁘니까.
내가 엄마를 마주하는 시간은 엄마가 세수를 할 때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거나 이를 닦는 엄마 앞에서 구구단을 외웠다. 그러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만이 엄마가 오로지 나에게 집중했다. 이해한다. 엄마는 집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바깥사람이니까.
엄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특이한 소비 성향을 보였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쇼핑을 한번 가면 마음에 드는 옷은, 같은 옷을 색깔별로 샀다. 언니 옷과 내 옷도 색만 다른, 똑같은 옷을 사이즈 별로 샀다. 엄마는 바깥사람이었고 나는 같은 모양의 옷을 몇 년 동안 입거나 그 옷이 있다는 것을 쉽게 잃어버렸다.
어느 날은 책을 빽빽이 들여놓았다. 서점에 가서 한 권 한 권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같이 골라 준 적은 없다. 그냥 어느 날 전집 몇 질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중, 에이브 전집,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단서다.
이 전집은 내가 그것에 관심을 갖기 꽤 오래전부터 우리 집에 있었던 것 같다. 고학년인 언니를 염두에 두고 장만하셨을 테다. 하지만 언니는 엄마의 바람대로 지독한 모범생이었다. 언니는 공부를 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생각이 없었다. 우리 집 에이브 전집은 깨끗하게, 외판원 아저씨가 박스를 뜯어 책장에 꼽고 간 상태 고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엄마가 색색깔 별로 구입한 후 산 것조차 잊어버려 쌓여있는 옷더미처럼. 엄마가 사 모으고는 있지만 우리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집들처럼.
그때, 엄마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온 후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다. 엄마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엄마가 집에 있었다. 학교 가기 전에도 엄마가 집에 있었다. 학교에 있다가도 집에 오고 싶을 만큼 엄마가 집에 있었다. 모르는 아줌마가 아니라 내 엄마가 집에 있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다다다다 집에 뛰어 들어오며 현관에 신발을 던지듯 벗고, 매일매일 하고 싶었던 이 말을 한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몇 번이고 한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지은아, 이 책 읽어봤니?”
엄마가 들고 있던 책은 ‘제닝스는 꼴찌가 아니다’라는 에이브 전집 중 68번이었다. 엄마와 교류를 시작했다, 책으로.
이후 나는 에이브 88 전집에 들어가 살았다. 나는 에이브 전집을 통해서 1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았고, 안네 프랑크의 친구가 되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파시스트와 게릴라 사이에서 홀로 각개전투를 했으며, 미국 독립 전쟁의 남북 이념 대립을 6.25에 대입시키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를 접했으며 잉카, 이집트, 남극과 북극도 다녀왔다. 마녀도 되었다가 인디언, 노예, 바이킹, 수도사, 늑대나 펭귄이 되거나 영국 사립학교도 다녔다.
88 전집에 3권이나 들어 있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 작가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그 당시 좋아하던 주근깨 갈래 머리 로라, 초원의 집 영화가 원래 책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의 장래 희망이 이때 생겼다. 초원의 집에 나오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갈래머리 로라가 아니다. 로라의 엄마가 나의 장래 희망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 다녀왔니?”하고 물어보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