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자칭 '키만 작은 완벽한 남자'다.
남편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스크린 골프를 친다. 버디를 하면 ''나이스!'' 하고 서로 손바닥도 마주쳐야 할 테지만 남편은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캬! 기가 막히다!''
''봤지? 쭉 돌아 들어가는 거. 어떻게 그렇게 치지?''
''놓치질 않네, 놓치질 않아.''
''눈 감고도 치겠네, 나 눈 감고 친다.''
TV에서 누군가가 장기 자랑하는 걸 볼 때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마디씩 던진다.
''저런 걸 왜 못해?''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못 하는 게 없지!''
그리고 이 모든 말의 뒤에는 ''남편 잘 만난 줄 알아!''가 나온다. 대화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남편이 내리는 한결같은 결론이다. 그 말이 나올 상황이 전혀 아닌 경우에도 무조건 갖다 붙인다.
'어쩜 저렇게 자화자찬 일색일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마는 나를 보며 또 한마디 투척하는 남편이다.
''이렇게 웃겨주는 남편이 어디 있어? 남편 잘 만났지!''
콩깍지가 써져야 결혼한다고 했던가. 깡마른 체격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에 반해 남편은 통통한 체격에 명랑하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그때는 나와 다른 점들이 왜 다 좋게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툭툭 던지는 그의 유머에 제일 끌렸다. 결혼할 남자의 조건 중에 첫 번째가 큰 키였는데도 남편의 작은 키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다니 콩깍지가 아주 두꺼웠나 보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고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서야 남편의 유머가 그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위가 물러가고 제법 찬바람이 불어서 남편이 여름선풍기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칭찬을 너무 안 해주니까 잘난 척하는 거라기에 모처럼 칭찬해 보기로 했다.
''깔끔하게 잘하네요.''
''그렇지? 잘하지? 얼마나 대단한 남편이야. 남편 잘 만난 줄 알아!''
칭찬하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잘난 척 좀 그만하라고 면박을 줘도 굴하지 않는 그의 끈기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남편의 흉을 다른 사람에게 볼라치면 ''웃기려고 하는 말이겠지.''라고 한다. 하지만 아니다. 남편은 진심이다.
지금껏 난 남편의 잘난 척이 꼴 보기 싫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 된 건지 남편의 잘난 척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동화책에서 봤던, 우쭐대고 뽐내다 결국에는 벌을 받았던 동물들을 바라보던 시선 그대로 남편을 판단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매사에 자신감 있는 남편을 보면서 잘난 척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잘난 척은 단순한 자랑질이 아니라는 것. 자기 사랑에 대한 표현이며, 표현할수록 자신감을 솟게 하는 선순환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너무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야 할 테지만.
잘난 척에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고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종종 나도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차마 입을 떼기 힘들기 때문이다. 뻔뻔할 정도로 잘난 척하는 남편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더불어 산 세월만큼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잘난 척만큼은 이제껏 닮지 않았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을 닮아볼까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남편에게 물들어 보려 한다.
잘난 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자랑할 줄 아는 사람. 할수록 자신감이 솟고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자랑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