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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모 Mar 24. 2022

‘인사이드 맨’, 전범과 자본주의 심판 미스터리

[유진모 ybacchus@naver.com] 미국의 스파이크 리는 거의 매 작품마다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루는, 그에 관한 한 급진적이고, 때론 독선적인 흑인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다수의 관객에게 친절하지는 못한 편인데 ‘인사이드 맨’(2006)은 좀 다르다.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흥행 상위(북미 기준)에 올라 있다.


맨해튼 신탁 은행에 러셀(클라이브 오웬)이 이끄는 4인조 강도가 침입해 직원 및 고객을 인질로 잡는다. 작업복, 마스크, 선글라스 등으로 정체를 숨긴 그들은 인질들도 똑같은 복장을 하게 만든다. 경찰은 유능한 협상가 프레이저(덴젤 워싱턴)를 투입해 현장 책임자 다리우스(윌렘 대포)에 합류시킨다.


은행 소유주 아서는 유능한 변호사 매들린(조디 포스터)을 은밀히 만나 자신의 보관함을 가져오든지, 없애든지 하라고 부탁한다. 매들린은 자신에게 신세 진 시장을 압박해 프레이저를 만나 은행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러셀을 회유하지만 그는 내막을 잘 알고 있었고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러셀이 비행기를 요구하자 프레이저는 인질들이 안전한지 확인한 후 내놓겠다며 은행에 들어간다. 확인을 끝내고 나가던 중 돌변해 러셀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러셀은 전화를 걸어 경찰 카메라를 보라고 하고는 프레이저의 돌발 행동에 대한 경고로 인질 한 명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자 반장은 프레이저에게 손을 떼라고 명령하고는 지휘를 다리우스에게 맡긴다. 다리우스는 중무장한 특수 부대를 거느리고 은행 공격을 시작하는데. 리 감독의 연출력이야 보증 수표인데 일단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먼저 은행 강도와 인질극이라는 설정으로 액션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로의 전환이 압권이다. ‘도대체 러셀 일당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은행을 점령했을까?’, ‘목적을 무사히 이룬다면 어떤 기발한 방법으로 경찰을 따돌릴까?’ 등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각 플롯은 매우 훌륭하다. 여기에 리의 깔끔한 연출력까지!


게다가 주연 배우들이 모두 정상급 연기 솜씨를 갖춘 톱스타이다. 기존의 리의 영화들이 인종 차별이 선두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사이드 디시이다. 흑인인 프레이저 앞에서 부하 백인 경찰이 대놓고 인종 차별 발언을 한다거나, 인질로 잡혔던 시크교도 은행 직원을 경찰이 아랍인이라고 차별하는 정도.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정조준한 것은 전범(戰犯) 처리와 자본주의에 대한 병폐이다. 아서는 유대인임에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부역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팔아넘겼다. 392에는 그 증거 서류와 함께 유대인 은행장 부인 소유였던 카르티에 다이아몬드 반지  등 값비싼 보석이 있었다.

철학자들은 고대 때부터 유대인이 대금업으로 큰돈을 버는 것을 맹비난한 바 있다. 다수의 인종은 유대인에게 남다른 경제 능력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실제 그렇기도 하다. 이 영화는 문화적으로 우수하고 경제 감각이 남다른, 우수한 민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악한 이도 있다고 고발한다.


‘어긋난 민족주의로 파쇼 정권을 다지기 위해 유대인 학살이라는 전무후무한 만행을 저지른 나치도 나쁘지만 그들에게 친구를 팔아먹은 유대인은 더 나쁘지 않은가?’라는 이 작품의 웅변은 장엄하고 광대하다. 아서는 갑부이다. 나치에 부역해 부자가 되었고, 전후 그 자본으로 더 큰 부를 축적했다.


그러고 나서 각종 기부에 이름을 올리며 자신의 전쟁 범죄를 은폐해 온 것. 매들린은 그의 만행을 알면서도 “빈 라덴 조카도 내 고객.”이라며 돕는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변호사의 위치가 어떤지 보여 준다. 프레이저는 수사 중 발견한 ‘검은돈’을 착복하려다 들키는 바람에 매우 곤란한 처지.


사랑하는 연인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청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게 아서, 매들린, 시장의 ‘격려금’과 승진 제안은 매우 달콤하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메카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바람직한 전범(典範)이다.

은행에서 대치 중 러셀은 한 흑인 소년에게 피자와 음료수를 주며 얼마 후 안전하게 집에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자 소년은 “나는 브루클린 출신이다. 당신들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돈 벌면 장땡 아닌가?”라고 말한다. 감독은 브루클린 출신이다. 자본주의가 순수한 영혼마저 파괴한다는 은유.


매들린은 “로스차일드(유대계 금융 재벌가)는 피가 흐르면 땅을 사라고 했다.”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땅이라도 사야 하나? 자본주의에 대한 살벌한 비판의 표현이다. 결국 인질들도, 강도들도, 경찰들도 모두 일상으로 돌아간다. 392만 털렸을 뿐 고객들의 현금은 안전하다. 경찰은 사건을 덮는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명령을 어기고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392를 개방해 아서를 잡아들일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한다. 러셀은 영리한 데다 지식도 깊다. 하지만 그런 머리로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게 미국(자본주의). 노동자는 자본의 도구일 따름이니까. 그가 강도이면서도 주인공인 이유이다.


그는 고객의 돈에는 손도 안 대고 오직 전범인 아서의 개인 재산만 턴다. 물론 무거운 현금보다 다이아몬드를 챙기는 게 더 실속 있다. 모든 상황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온 프레이저의 재킷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한 개가 발견된다. 작가는 우리네 ‘홍길동전’이라도 본 걸까? 아니면 ‘로빈 후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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