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언터처블: 1%의 우정’(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 2011)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영화이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중년의 필립(프랑수아 클루제)은 젊은 시절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해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다 사고로 목 밑으로 전신 마비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 앨리스를 불치병으로 잃었다.
가족이라고는 입양한 16살 딸 엘리사뿐. 그는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24시간 내내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한데 일이 고되 돌보미는 수시로 도망간다. 돌보미 면접 때 흑인 청년 드리스(오마 사이)가 나타나 취업은 관심 없고, 정부로부터 생계 보조금을 타 내기 위해 왔으니 서류에 사인해 달라고 조른다.
피지컬은 좋지만 교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에게 흥미를 느낀 필립은 다음날 아침을 약속한다. 드리스는 강도죄로 복역한 뒤 6개월 만에 출소한 이후 처음으로 집에 간다. 범죄에 가담 중인 남동생 아다마는 그에게 무심하고 심지어 어머니는 연락을 끊은 것을 이유롷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노숙한 뒤 다음날 만난 필립은 2주 동안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수 있는지 내기를 제안한다. 개인 욕실까지 갖춘 호화로운 생활환경에 매료된 드리스는 받아들인다. 이후 조용하던 드리스의 집안과 생활은 변해 간다. 드리스는 미모의 집사 마갈리(오드리 플뢰로)에게 추파를 던지다 매번 망신당한다.
엘리사와도 갈등한다. 다만 나이 먹은 메이드 이본만이 그의 말벗이 되어 줄 뿐. 망나니 건달이었던 드리스는 지적인 필립의 삶 속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필립에게 담배를 가르쳐 주는 등 일탈의 환희를 맛보여 준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가고, 드리스는 아다마의 범죄를 해결해 주기 위해 떠나가는데.
실제의 드리스는 백인이지만 작품 속에서 흑인으로 설정한 데서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제는 휴머니즘적 사해동포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분법, 혹은 이항대립으로 설정한다. 남자와 여자, 좋은 놈과 나쁜 놈, 백인과 유색인 등. 하지만 그런 이분법은 빡빡한 흑백 논리만 낳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1%의 갑부와 1%의 극빈층 흑인이 친구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계층이 가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환경과 동선이 아예 다른 점도 한몫한다. 그런데 두 주인공 사이에는 실제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이는 우리 인류에 사해동포 사상이 실현될 가망성이 있다는 희망이다.
마갈리의 연인의 정체 역시 이분법적 논리와 편견에 과감한 조롱을 던진다. 필립은 클래식을, 드리스는 소울을 각각 최고의 음악이라고 주장한다. 의례적인 필립의 생일 파티가 열리자 그는 “친척들이 내 생사를 확인하러 오는 것.”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집안의 소규모 오케스트라 공연은 즐긴다.
그러자 드리스가 갑자기 어쓰, 윈드 앤드 파이어의 ‘Boogie wonderland’를 틀어 놓고 신나는 춤을 추고, 파티에 모인 친척들은 물론 연주자들까지 댄스파티에 합류한다. 드리는 “이게 생일 파티이지.”라고 우쭐해한다. 드리스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추상화를 필립이 고가에 매입하는 걸 보고 그림에 빠진다.
드리스는 놀랄 만한 추상화 한 점을 완성하고, 필립은 그걸 친구에게 판매하고 받은 1억 원대의 돈을 드리스에게 건넨다. 필립이 드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 드리스 역시 그렇게 화답한다. 필립이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이지.”라고 한 말을 드리스가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아집과 가식에도 비아냥거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처음 필립이 드리스를 고용했을 때 친구는 그의 과거 행적을 근거로 경고를 하지만 필립은 “과거가 뭐가 중요해?”라며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소위 ‘있고 배운’ 자들은 ‘없고 못 배운’ 자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걸 버리지 않으려 고집한다는 것.
부자가 ‘천민’들에게 보란 듯이 가식을 떠는 걸 필립은 깨뜨린다. 드리스는 필립에게 파란만장한 제 가정사를 털어놓는다. 부모가 없어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랐는데 삼촌이 요절하는 바람에 숙모가 두 번 재혼했다. 지금의 어머니가 숙모. 수많은 동생 중 아다마만 사촌이고, 나머지는 남남이었던 것.
자본주의의 극빈층과 문맹은 상류 계층 혹은 사회 지도자들이 생산해 내는 잉여이거나 산업 쓰레기이다. 그들에게 잘못은 없다. ‘있는’ 자들의 욕심과 이기심이 만들어 냈을 뿐. 그 소외된 사람들은 분명 똑같은 사람인데. 필립은 6달 동안 편지를 교환해 온 엘레노어를 짝사랑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드리스는 과감하게 서로가 사진을 교환하도록 만들고, 만남까지 주선하지만 역시 자격지심을 느낀 필립의 포기로 데이트는 성사되지 못한다. 드리스는 다시 한 번 깜짝 데이트를 주선해 주며 “이번에는 도망가지 마요.”라고 말한다. 무식하고 가난한 드리스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섰고 선입견에 도전했다.
“내 장애는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앨리스 없는 삶이지.”라며 많은 걸 가졌음에도 모든 걸 잃은 듯 인식했던 필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결여투성이인 드리스에게서 새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사르트르는 ‘의식이란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라고 했다. 의식의 존립에는 대상이 필요한 것.
필립과 드리스는 서로의 의식의 대상이었다.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이다.’라고 했다. 존재는 죽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실존이 된다. 그리고 인생이란 매일매일이 선택으로 진행된다. ‘환경 탓만 할 것인가, 오늘을 힘차게 살 것인가?’를 묻는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