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가인 내가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이유
나는 오랫동안 픽션의 세계에서 뛰어놀았다. 기억나는 첫 스토리 창작 활동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즈음이다.
믿거나 말거나 네 살 때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글자가 읽고 싶어 혼자서 한글을 뗐던 나는 (증인: 모친, 영웅 설화 아님, 그러나 내가 작가가 될 천부적 기질을 타고났다는 스스로의 비대한 근자감 형성에 아주 오랜 바탕이 됨) 어렸을 때부터 심한 활자와 스토리 중독 증상을 보였다.
거기에 색과 그림의 영역에도 꽤나 뚜렷한 기호를 가지고 있어 동화책을 읽거나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은 단언컨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그런 내가 ‘만화책’이란 것을 접하자마자 그 유익하고 아름답고 신명 나는 세계와 퐁당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은 필연 중의 필연 아니었을까? 용돈만 생기면 그저 동네 만화방을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드나들다가 결국 어느 날 반에서 나 말고 또 다른 그림쟁이로 불리던 ‘은영’이라는 친구와 투합해 ‘릴레이만화연재’라는 것을 하기로 한 게- 그러니까 내 최초의 스토리 창작활동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주 오랫동안 픽션의 세계에서 행복탕 좌절탕을 온탕 냉탕 번갈아 드나들 듯이 드나들며, 남들은 끈기와 투지의 승리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그저 생존이 걸린 사투 끝에(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부턴가 돌아갈 다리가 뚝 끊어져 있었으므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는 사는 길 밖에 선택할 수가 없지 않은가?), 드라마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른 게 하고 싶어졌다.
드라마가, 혹은 픽션이 싫어져서는 아니다.
은희경 작가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셋은 좋은 숫자이다. (...) 한 개의 가방에 담았다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지만 여러 개라면 상실에도 단계가 있고 고통에도 완충이 생겨날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목표가 있으면 앞만 보고 돌진하는 황소 같은 성향으로 엄마에게는 종종 ‘지나치게 외골수’라고 타박을 얻곤 했었는데, 드라마를 쓸 때도 그랬다. 도통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대학교 3학년 즈음 졸업을 앞두고 고난이 훤히 예비된 창작자의 길을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문득 승무원이 되어볼까 하고 잠깐 면접 준비를 했던 적 있지만- 키가 거의 기준 미달에 가까웠던 커트라인 간당간당 통과자(?)였던 까닭으로 딱 두 번 실무 면접에서 탈락해 보곤 간절히 원하지도 않는 일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낭비할 마음이 들지 않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쿨하게 포기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그전처럼 단 한 번도 한 눈 판 적 없이 드라마만 바라보고 우직하게 황소처럼 맹렬하게 돌진해 마침내 붉은 깃발을 잡아챘다. 아니, 잡아챘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알고 보니 실은 그 깃발이 슬프게도 환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간절했던 꿈을 이루고 나면 틀림없이 행복해지고, 주위의 사람들과 대인관계가 좋아지고, 재산은 넉넉해지고, 건강해지고,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날마다 하늘에 대고 행복하다고 감사 기도를 올리며... 아무튼 만사가 술술 형통해질 것 같았는데 그러기는커녕 그 깃발이 붉은 환상이었다는 차가운 현실만 깨닫고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깃발(돈과 명예로 대표되는 세속적 성공)을 바라보면서 달리는 삶은 끝없이 춤을 추는 깃발을 쫓아야만 한다. 어느 날 마침내 내가 세상에서 드라마를 제일 잘 쓰는 1등 작가(?)가 되어도, 다음 날은 그 타이틀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뒤척이며 손톱을 씹어야 한다. 서열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돈을 제일 잘 벌고, 글을 제일 잘 쓴다는 칭송을 받고, 시청률이 지상파 1위에 등극하고, 넷플릭스 순위표를 모두 점령해도... 그 세계는 끝이 없다. 나는 영원히 달리기만 하고, 깃발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깃발을 외면하기로. 펄럭이는 빨간색에 현혹되지 않기로. 투우사가 쥐고 있는 타인의 깃발에 내 삶을 소모하지 않고, 내가 추고 싶은 춤을 추며 즐겁게 살기로. 그래서 그럼 어떤 삶이 즐거운 삶일까? 즉각적으로 2차 고민이 따라붙었다.
너무 외골수처럼 ‘글’만 생각하지 말고 사업을 해볼까, 옷 장사를 해볼까, 카페 혹은 요식업 장사를 해볼까, 아니면 브이로그를 올리는 유튜버가 되어볼까...
하지만 머리를 조금만 굴려봐도 그런 엄청난(?)일들과 드라마를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쪽은 그 쪽대로 삶을 통째로 배팅해봐야 춤 비슷한 거라도 춰 볼 수 있겠다는 각이 나왔는데 그걸 위해 드라마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고 마음을 먹으니 웬 걸-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뭉근하게 아파오는 게 아닌가?
몇 번이고 내 속을 까뒤집어보고 들춰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고, 내 글을 통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내가 좋아할 만한 매혹적인 스토리의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었다. 드라마 데뷔를 통해 비록 바라던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드라마 스토리텔러로서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고, 더 좋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드라마와 두 번째로 사랑에 빠졌다는 걸 인정했다.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한 번 깨졌다가(?) 붙은 거라 심지어 더욱 불타오르기까지 했다.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좀 위험했다. 나는 드라마에 또다시 모든 것을 갖다 바칠 것이다. 내 뼈와 살을 갈아서 영혼까지 믹서기에 넣고 달달달달 갈아버릴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합법적 ‘외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라마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글’과.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 (...)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불안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은 첫 선택에 대한 체념을 강요당하거나 기껏 잘해봤자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정도가 되어버린다. 셋 정도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할 수가 있다. (...) 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은희경 선생님의 조언을 참고했다. (사실 책 전문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 조언이 이러라고 쓰신 조언인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가끔 우연히 마주친 문장들이 아주 매혹적이어서... 근데 그런 식으로 읽고 싶은 책들이 몇 백 권은 돼서... 아직 섭렵을 못 했다...)
웹툰과, 웹소설 등, 내가 외도를 고려한 다른 장르들이 있었으나 드라마와 비슷한, 구조적이고 상업적인 형식은 조금 지겨웠다.
그런데 그러다 문득 마주친 ‘에세이’의 세계는 그야말로 ‘아! 맞다 나 이런 얼굴도 좋아했었지?’라는 신선한 느낌으로 진한 프레쉬함을 안겨줬고- ‘이건 내가 너무 안 해 봐서 잘 못 할 것 같은데’라는 본능적인 불안함과 함께 강렬한 설렘마저 안겨줬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드라마라는 인생의 반려자를 두고, 에세이라는 두 번째 연인을 맞이하여 오늘 이렇게 길고 긴 ‘선전포고문’이자 ‘프롤로그’를 쓴다.
나는 비록 현재의 배우자를 다루는 것만큼 이 연인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 못지않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이 새로운 얼굴을 맞이한다고.
날마다 조금씩 더 ‘에세이’라는 연인과 친해지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모든 과정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그리고 내가 혼자 즐기기 위한 일이지만 어쩌면 내 삶의 소소한 풍경들을 기록하는 이 일이 누군가에게도 아주 작은 즐거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그러니. 잘 부탁드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