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Sep 23. 2021

꿈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아, 깜짝이야.’     


몸이 땅 구멍으로 푹 꺼지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또 꿈이구나.

엉켜있는 이불 사이에 내가 끼어있다. 키우는 강아지 ‘빌리’가 날 무심히 한번 쳐다본 후 다시 자기 발을 핥는다. 최근 들어 세 번째다. 워낙 꿈을 자주 꾸는 편이긴 해도 잘 기억하지는 못하는데 이 꿈은 깨어도 생생하다. 마치 아직 그곳에 있는 것처럼.     


꿈에서 나는 공연 중이었다. ‘다이애나 악테온’이라는 남자 솔로를 해야 했다. 의상을 입고 무대로 향했다. 설렘 가득한 긴장이 찾아왔다. 옆에는 발레단 단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무대의 차가운 공기가 맨살에 닿았다. 밝다 못해 눈부신 조명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관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첫 포즈를 잡으니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왔다. 점프를 위한 도약을 했다.     


‘악!’

정강이가 뻐근했다.

뭐지? 다 나아서 복귀한 거 아닌가?

이렇게 아픈데 공연을 한다고?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나 아픈데. 공연하면 안 되는데. 지금 하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는데.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관객들이 술렁거렸다.     

그때, 갑자기 내게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뚝절뚝 거리면서 다음 점프를 위해 몸을 날렸다. 그 점프는 오른 다리로 뛰어서 오른 다리로 착지하는 동작이었다. 공중으로 치솟는 순간, 정강이가 찌릿했다. 잠시 후 ‘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까지가 꿈에 대한 기억이다.

이번에는 ‘다이애나 악테온’이었지만 전에는 ‘돈키호테’를, 그 전에는 ‘백조의 호수’를 하고 있었다. 꿈 내용은 항상 같다. 무대에 복귀한 내가 춤을 추려고 하면 정강이가 여전히 아프고, 통증을 무시하고 움직이다가 다시 다치게 되는.... 찝찝한 꿈이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온다. 억울함과 답답함, 한심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춤추는 꿈을 꾸는 건 좋다. 현실에서 못 추니 꿈에서라도 춤을 출 수 있다면 감사하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조차 다리가 아픈 걸까. 꿈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아픈데 없이 춤출 수 있는 거잖아. 마치 꿈이 내게 그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꿈을 꾼 날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이대로 영영 무대에 서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든다. 바보 같다는 건 알지만 진짜 두렵다.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나으려고 하나 보네.”

나는 심각한데 엄마는 웃었다. 사실 엄마 마음도 좋지 않겠지. 저 웃음 뒤에 걱정 어린 마음이 숨겨져 있을 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더 뻐근하다. 애꿎은 정강이만 톡톡 두드렸다.


꿈을 꾼 이후로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정강이를 하늘로 들고 손으로 쓰다듬는다. 마음을 다잡는다. 꿈은 반대잖아. 튼튼하게 나아서 복귀할 수 있을 거란 의미의 꿈이라고, 나에게 말한다. 그리고 오늘 만약 같은 꿈을 꾼다면 아프지 않고 마음껏 무대에서 뛰어놀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때, 꿈을 꾸고 이런 글도 썼었네.’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즈가 낯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