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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Oct 25. 2021

네 체력은 무한대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왔다.


참 좋은 작품이다. 그 시절은 잘 몰랐지만 성인이 되어 2대 3대 빌리들의 공연을 보았을 때, 저 작품을 했었다는 게 영광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객석에 앉아 연주되는 첫 부분의 음악을 듣자 마치 내가 공연을 하는 것처럼 심장이 반응했다. ‘지금쯤 빌리 역 맡은 친구는 무대 뒤에 앉아 대기하고 있겠지.’ 긴장된 모습으로 어두컴컴한 백스테이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내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연 10분 전, 항상 앉던 곳에 앉아있었다. 샤프론 선생님과 한 무대 감독님과 함께. 우리는 나의 체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 체력을 100%라고 하면요. 솔리더리티(Solidarity-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이다.) 끝날 때쯤에는 한 70% 정도 남고요. 익스프레싱(Expressing yourself) 하면 50%, 앵그리(Angry dance)할 때는 겨우 10% 남는 것 같아요. 인터미션에 조금 충전되니까 다시 80% 정도로 2막 시작하는 거죠.”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난 장면, 장면들을 마칠 때, 어느 정도 힘든지를 퍼센트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었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무대 감독님이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하셨다.     


아니야. 선우야. 절대 그렇지 않아. 네 체력에는 한계가 없어. 네 체력은 무한대야. 넌 지치지 않아. 네가 하고자만 한다면 다 해낼 수 있는 거야. 그런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춤을 춰. 네가 얼마나 춤을 사랑하는지 보여줘.”


여전히 기억한다.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눈을 맞추며, 작지만 강한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무대 감독님을.

이상하게도 그날 공연은 어느 때보다 편하게 마칠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이 끝나고도 난 무용수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춤을 추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힘들었다. 반복되는 연습에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연습실로 향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무대 감독님이 해주신 말이 흐려진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스스로 되뇌었다. “내 체력은 무한대야.”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주문이었다.     


그때, 무대 감독님에게 그런 힘이 되는 좋은 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이 글을 빌려 전하고 싶다.

감독님의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저를 일으켜 세운다고.

무한한 체력으로 원 없이 춤을 춰보겠다고.     


춤에 대한 간절함으로 땀을 흘리며 재활을 하는 요즘,

다시 외쳐본다.     


“내 체력은 무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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