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운동으로 긴 시간을 보낼 때 다짐했다. 다시 무대에서 춤추는 날이 오면 글을 쓰겠다고. 마음껏 벅차오를 감정과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줬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기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복귀 무대를 마치고 돌아와 지난 시간을 곱씹으며 글을 쓰면 행복할 거야.’라고 상상을 했다.
막상 꿈꿔왔던 순간이 오니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쏟아지고 교차되는 생각과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바라보며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묘하게 엉켜있는 이 느낌을 글에 전부 담아낼 수 있을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한 문장, 한 문장씩 풀어본다.
복귀 무대를 준비할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무사히 무대에 설 수 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스텝을 내디뎠다. 다행히 몸은 생각보다 잘 움직여주었다. 격한 동작을 하는 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숨이 금세 가빠왔다. 땀이 연습복을 흠뻑 적셨다. 매일 찾아오는 근육통이 반가웠다. 조금 힘들면 어때. 발레단 동료들과 헐떡이며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단원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괜찮냐고.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몸은 지치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달아오르던 공연 준비 기간.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기다렸다.
공연 당일, 내 기분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무대이기에 조금은 흥분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클라스를 할 때도, 분장을 할 때도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이 침착하게 유지되었다. 공연 30분 전, 몸을 풀기 위해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로 향했다. 객석 입장이 시작되어 막이 내려져 있었다. 어두운 백스테이지에서 세팅되어 있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우리 다시 춤추자.’ 무대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 다시 춤추는구나. 살짝 목이 메었다. 마음을 다잡으며 슈즈를 신었다. “공연 시작 5분 전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단원들이 복귀 축하한다며 힘내라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꾸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조명이 꺼졌다. 서곡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무대에 앉아 흐르는 음악을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정강이를 쓰다듬었다. 울컥.
결국 참고 있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부상을 입었던 그 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다리가 부러진 순간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던 나. 너무 아파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손을 꽉 잡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정신없는 와중에 울먹이며 말했다. “저 발레 이제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웃음을 보이며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던 엄재용 선생님.
“괜찮아, 선우야. 다 할 수 있어. 다시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부러져 퉁퉁 부은 다리로 실려간 응급실, 철심을 박는 큰 수술. 더디게 진행된 재활 운동, 답답함과 억울함에 내쉰 한숨들. 금방 좋아질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사라지지 않던 우울함. 도대체 언제쯤 다시 춤출 수 있는 걸까 온종일 머리를 맴돌던 고민들. 힘들게 견뎌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펑펑 눈물을 쏟아냈던 밤도 떠올랐다. 작년 여름 어느 밤,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였다. 엄마는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 익숙한 엄마의 웃음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누구야?”
“아, 엄마 대학 선배.”
응. 그렇구나.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엄마의 말.
“엄마 선배가 그러는데, 포기하지 말래. 잘하고 있으니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이제 울고 싶지 않은데.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 눈물이 맺히려 했다.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행복한 눈물이지만 곧 막이 올라가기에 고개를 들고 꾹 참았다. 그랬다. 난 괜찮았다. 당시에는 흐릿하게 들렸던 엄재용 선생님의 그 말이, 이제야 선명하게 기억났다.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부러진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춤 인생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발레가 없는 나는 무엇인지, 내가 하고자 하는 예술은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천천히 단단히 나아서, 언젠가 이런 글을 썼었네 생각하는 날이 오기를요. 그때까지 글쓰기가 달빛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글에서 고수리 작가님의 댓글.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는데 도와준 ‘브런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춤추지 못해 답답했던 일상에서 새로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 준 글쓰기. 어쩌면 내게 찾아온 부상이 브런치와 인연을 맺게 해 주기 위해서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