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왜 하필 고양이 수의사였을까?

by 고양이수의사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처음부터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수의사, 그것도 '고양이만 진료하는 수의사'가 되어 있었을 뿐이다.


원래 내 꿈은 수의사가 아니었다. 나는 '의대병'에 걸려있었고 다른 길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 꿈이 의사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의사가 되고 싶어 졌고 꼭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학창 시절 내내 따라다녔는데 그게 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성적 좀 나오는 이과생들이 갖는 공통된 목표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의학 드라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의대를 꿈꾸던 나는 수능날 주종목인 언어 영역을 망쳤고 자포자기하듯 점수에 맞춰 원서를 넣었다. 그중에 수의대도 있었는데 합격하더라도 다닐 마음이 없었기에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새벽 버스를 타고 학원을 오가던 나는 수의대 합격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 친구와 상의 끝에 수의대에 가기로 했다. 수의대도 의대랑 비슷하지 않겠냐는 희한한 논리에 설득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재수 학원을 다니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결 4번이었다. 거의 뒷문을 닫고 들어간 거다. 선후배 대면식에서 전장을 받고 싶다는 무모한 선언을 한 것이 무색하게 내 예과 시절 성적은 처참했다. 본과에 가서는 조금 정신을 차렸지만 딱히 진로에 대한 계획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수의대를 졸업하면 공중 방역 수의사로 복무하는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앞날 걱정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그때 준비하면 되니까. 수의사 면허를 딴 나는 다짐과 달리 공방수 3년 동안 열심히 술을 마시며 시간을 허비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동물 메디컬 센터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무식한데 경험도 없었던 나는 많이 혼나고 많이 다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임상을 알아가던 나는 인턴 이후의 삶이 걱정이 되었다. 1년 선배 명철이형의 권유로 고양이 진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형이 원장이 되던 해에 나도 그 병원에 입사했다. 그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나보다 높은 연차의 선생님 두 분이 차례로 퇴사를 하고 나는 원장님 셋과 남겨지게 되었다. 매일 얼굴이 시꺼메져서 퇴근했고 부정맥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원장님들이 모두 워크숍을 떠나면 나 혼자 병원을 떠안았다. 그 와중에 고양이가 캣호텔 천장에 들어가 버린 일, 조폭 같은 사람이 호텔링 중인 고양이를 멋대로 데려가려고 시도한 일 등을 겪기도 했다.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고양이 수의사로서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진료 팀장을 거쳐 부원장이 되었다. 부원장이란 직함이 그럴싸했지만 그만큼 퇴사가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장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하고 결국 퇴사를 했다. 내 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도 많고 화는 더 많았던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하고 병원 자리를 보러 다니는 순간에도 고양이 병원을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퇴사한 그 병원 말고는 고양이만 진료하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개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한데 강아지 진료를 포기한다는 건 ‘줄 없이 번지 점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졌고 나는 1년을 더 쉬게 되었다. 자신감, 자존감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마저 생겼다. 나는 개원을 할 수 있을까?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재활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다리가 나으니 피하고만 싶었던 '개원'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개와 고양이를 모두 진료하되 고양이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제대로 하려면 둘 다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다시 고양이만 보는 병원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그때 명철이형이 고양이 병원은 잘 될 수밖에 없으니 꼭 해보라고 용기를 줬다. 그전까지 내가 주로 들었던 건


"미쳤냐?"

"네가 뭐 그렇게 잘났길래 그러냐? 그냥 우리 병원 와서 고양이 진료나 좀 보고 그래라."


이런 얘기들 뿐이었는데 용기가 났다. 그렇게 난 고양이만 진료하는 1인 병원을 개원하게 되었고 고양이 수의사로 살게 되었다.




처음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혼자서 개원을 준비하는 것도 괴로웠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현실과 이상은 달랐고 내 능력도 부족했다. 힘 조절을 할 줄 몰라 모든 진료에 불필요한 정보를 쏟아냈다. 보호자와 고양이들 각자의 상황은 무시한 채 입바른 얘기만 하기 바빴다. 친절을 가장한 폭력이었다. 정작 나는 형편없는 집사이면서 남을 지적하기만 했다.


점점 출근하는 게 싫어졌다. 그냥 고양이를 많이 키우고 말지 고양이 수의사를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기도 했다. 진료가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고양이를 힘들게 병원에 데려온 보호자에 대한 공감은 전혀 없었다.


환자들이 지각하면 화가 났다. 보호자의 질문이 많아지면 기분이 안 좋았다. 고양이들이 조금이라도 예민하면 긴장이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뭔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일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자신감이 있으면 화가 나지 않는다. 요령이 있으면 임기응변이 가능하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의 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걸 인정하기 힘들었고 밖에서만 이유를 찾았다. 나는 매 순간 화가 났다.


그렇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갈수록 나 자신을 잃어갔고 스스로를 파괴하듯 살았다. 사는 게 괴로워 상담을 받게 되었고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내 감정을 무시하는 대신 보듬어 주기로. 비겁하고 못된 나도 받아들여 주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나와 친해지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더 솔직해지려고 한다.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병원에 오는 보호자들과 고양이들에게 공감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친절을 퍼붓는 일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진료가 예전처럼 힘들지 않다. 다만 더 잘하고 싶어 가끔 불안할 뿐이다.


나는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 수의사가 되려고 한 적은 없었다. 여러 상황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을 뿐이다. 솔직히 지금도 내가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는 수의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불안해하는 그들에게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편해질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양이만 진료하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매일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더 많은 고양이들을 진료실에서 만나고 싶다.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