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사 인간입니다

by 고양이수의사

"저는 조림 인간입니다."


흑백 요리사 시즌2에서 최강록 셰프가 한 말이다. 시즌 1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가 했던 "나는 비빔 인간입니다."를 오마쥬한 것이기도 하다. 개그인가 싶었던 멘트 뒤에는 담담한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그는 조림을 특별히 잘하지 않지만 인정받기 위해 가면을 써온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어 했다. 최강록과 에드워드 리 모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게 고민한 끝에 각자의 정의를 내렸으리라. 인정하기 어려운 '나'를 마주하는 용기를 냄으로써 진짜 자기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럼 나는 무슨 인간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주사 인간'이었다. 찌르는 사람. 고양이들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 종종 생각해보니 그들에게 나는 단지 날카로운 바늘일 뿐이었다.


낮잠을 자다가 끌려와 보면 어김없이 저 '주사 인간'이 있다. 배도 고파 죽겠는데 놈은 나를 찌른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를 이리저리 눕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배 털도 밀어간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츄르 먹어야지 냠냠. 어? 츄르에 뭐가 섞여있네? 이것도 그놈 짓이겠지. 못된 인간.


과한 의인화이긴 해도 고양이들에게 내가 '주사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어린 고양이는 백신 접종을 한다고 찌르고 커나가는 고양이들은 검사를 위해 찌른다. 주사로 밖에 줄 수 없는 약들도 있어서 찌르기도 한다. 고양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지만 찔리는 대상은 말할 것도 없고 찌르는 자도 썩 유쾌하지 않다. 그것이 한 번에 되지 않을 때는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내 마음을 알리 없기에 서글플 때도 있다. '주사 인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고양이들이 휘두른 발톱에 맞거나 이빨에 손이 뚫리는 날에는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나는 그저 고양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 온 보호자들의 눈치도 보지만 고양이들의 눈치를 더 살핀다. '모든 고양이를 사랑해서' 같은 거창한 이유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최대한 덜 불안하고 편하게 병원을 다녀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그게 '고양이 수의사'인 내 역할이니까. 그래서 '고양이를 찌르는 사람'인 나보다 고양이를 함부로 대하는 보호자를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에게 난 두려운 대상일 뿐이지만.


고양이들은 끝내 모를 것이다. 이 '주사 인간'이 누구보다도 그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려 노력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주 불안해하는 그들과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알아주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주사기를 든다. 사명감이고 생업이기도 한 이 일을 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