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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May 12. 2023

환상의 맛

<글쓰기 수업>

초3 어린이가 떡꼬치를 먹으며 수업에 왔다. "출출한가 보구나. 맛있어?" 했더니 "네." 하면서 학교 앞에서 파는 떡꼬치는 7백 원인데 떡이 5개고, 학원 앞 떡꼬치는 1천 원인데 떡이 7개라고 말하면서 지금 먹는 건 학원 앞에서 산 거라고 했다.

'생활글'을 수업하는 날이었다. 중요 장면을 눈에 보이듯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형상화 작법을 지도할 예정이었다. 떡꼬치를 사는 장면, 소스가 조금만 발라져서 아쉬워하는 장면이 형상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아이는 분식집주인에게 인사하고 주문하고 원하는 걸 전달하는 장면을 대화글로 처리하고 떡꼬치 모양, 소스의 양과 그에 대한 맛을 이어서 썼다. 좋은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완성을 기다렸다.


두루 잘 쓴 글이었는데 맺음말이 걸렸다.

'가성비 최고. 환상의 맛이었다.'

이렇게 어려도 가성비라는 말을 아는구나. 하긴 아이가 좋아한다는 편의점 간식에 비하면야 맞는 말이다.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과 황금란 두 개, 스트링치즈를 사면 9천 원이라고 한다. 일주일 용돈이 간식비로 다 나가는 현실이라면 아무리 어려도 가성비는 중요할 테다. 넘어갔다.


'환상의 맛'은 그럴 수가 없었다. 환상은 정말이지 환상다워야 한다.

"기분에 대한 표현은 이렇게까지 과장하지 않는 게 좋아."

말했더니 아이 표정이 시무룩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가방을 챙겨 엄마가 마중 나온 곳까지 냅다 뛰었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아팠다. 그래도 얘야, 잊어선 안돼. 환상은 환상다워야 하거든. 떡꼬치 맛이 환상이면 편의점 그 간식은 뭐라고 표현할 거니?



#생활글 #형상화 #과장된표현 #어린이세계

#환상 #가성비

#어린이에게도현실은중요하지

#그렇다면표현의수위도외면하지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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