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림 이승희, <일놀놀일> 리뷰
"이제는 워라밸이 아니라 일놀놀일 입니다." 평생 최소 8만 시간은 일하게 될텐데, 하루하루 견디기만 하는 건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저자들은 묻는다. 그러면서 '노는 게 일이 되고, 일이 노는 데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라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은 일터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25가지 키워드에 대한 저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풀어놓는 구성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일놀놀일>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직전 회사 대표님이 지나가듯 언급해서 알게됐는데, '일하듯이 놀고, 놀듯이 일한다'를 축약한 제목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직관적인 제목에 이끌려서 읽을 책 리스트에 저장해두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읽지 못했다. 퇴사한 후에야 뒤늦게, 텅 비어버린 헛헛한 마음을 채우려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웬걸, '망치를 들면 모든게 못으로 보인다'고 백수가 된 내게도 깨달음과 응원을 주는 보석같은 구절들을 만났다. 심지어 '백수'라는 키워드로 쓰인 챕터도 있다. 알고 보니 이 책을 쓴 이승희 씨도 퇴사한 뒤 백수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하긴, 백수만 노는 게 아니듯이 회사원만 일하는 것도 아니다. 아래는 다시 따끈따끈한 백수가 된 내 마음을 건드린 다섯 구절.
1.
저희에게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모든 활동들입니다.
- 프롤로그 중
일과 나머지 삶을 분리해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을 나도 추구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난 좀처럼 일과 나머지 삶을 분리하지 못했다. 아무리 칼퇴가 가능한 직장에 다녀도, 일이 맞지 않거나 잘 해내고 있지 못하면 퇴근하고도 나머지 삶을 즐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근무 시간에만 회사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에 '내 일'을 한다는 것도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일단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 게다가 '내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마 뭔가를 글로 쓰는 일이긴 할텐데,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가 뾰족하지 못했다. 그럼 둘 중에 하나다. 회사 일을 나의 일로 만들거나, 회사를 나와 나다운 글을 찾아서 쓰거나. 웬만하면 전자를 할 수 있길 바라며 그 가능성을 찾으려 애썼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무모하지만 후자를 택했다. 당연히 회사가 제공하는 온실 바깥으로 나오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것도 택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해봐야, 의미를 잃은 고통만 길어질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무한에 가까운 여유가 주어졌으니, '나다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활동이 필요할지 탐색하고,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물론 그 과정은 계속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어 그럼 위의 정의에 따르면.. 일하기 위해서 회사 그만둔 셈인건가,, 그렇군 ㅎ
2.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살기로 결정했을 때도 나는 백수 기간의 마감일을 정했다.
'딱 1년만 방학을 갖자'
- 마감: 강력한 동력이 필요한가요? 중
이승희 저자는 '1년'이라는 기간 후에 백수의 삶을 연장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다시 선택하기로 했단다. 백수 라이프에도 마감을 설정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렇지, 뭐든 끝이 있어야 더 소중한 법이다.
원하는 대로 삶을 설계할 여유를 갈망해서 백수가 되기로 해놓고 시간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만, 세월이 하염없이 흘러가버릴까봐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널널한 마감 설정'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앞으로 1년, 나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유감없이 실험해보고, 가능성과 한계를 회고한 뒤 이 생활을 계속 이어갈지 여부를 결정해야겠다.
3.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기회를 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늘 새로운 시간을 주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선물한다.
(중략) 시간은 가차없어 보여도 품이 넓다. 불완전한 모든 것을 품고 흘러간다.
그러니 힘을 빼고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보자.
미래에 당신이 되어 있을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며 그것을 하자.
- 시간: 무엇을 해도 시간은 흐르는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중
초조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초조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데 계속 시간은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까. 흘러가버린 시간을 만회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항상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상 깊었던 구절 가볍게 정리하려고 쓰기 시작한 이 글을 이틀째 붙잡고 있는 지금처럼 ㅋ
저자의 말처럼 조금은 힘을 빼고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야겠다. 완벽한 걸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부담없이 시도하며 내 콘텐츠를 축적해가야겠다. 그러려고 회사 나온 것 아닌가. 미래의 나는 초조해하느라 다양한 시도를 할 에너지를 빼앗긴 과거를 아쉬워 할 것이다.
4.
나는 매일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었다. 기록은 시간을 눈으로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시작해 얼마간의 시간을 쌓았는지,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볼 수 있는 데에는 기록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 시간: 무엇을 해도 시간은 흐르는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중
내 삶을 기록할 사람도 나 한 사람뿐이다.
내가 아니면 이 지루하고 평범한 드라마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나는 적는다.
쓰면서 나아지는 마음과 나를 이룬 것들, 나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 나는 쓴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보려고 한다.
- 기록: 왜 아무것도 적지 않아요? 중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계기가 된 구절들이다. 기록의 중요성이야 나도 익히 알고, 실제로 꽤나 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메모장을 켜서 뭔가를 쓰려다가도,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창을 닫았던 때가 많았다. 그렇게 흘려보낸 소중한 순간들이 꽤 된다. 이것도 어쩌면 완벽주의의 한 모습이겠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소재가 필요할텐데, 돌이켜보면 소재는 대부분 기록에서 나왔다. 당장은 그 쓸모를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일단 써두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설령 콘텐츠로 활용하지 않아도 언젠가 또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때, 고군분투해온 내 흔적을 살펴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단서가 되리라고 믿는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구절. 내가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담고 있었다.
한 단어, 한 단어 더하거나 뺄 구석이 없는 소중한 다짐이자 선언문이다.
좋아하는 것,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브랜딩하면 소속이 사라져도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방향은 바뀔지언정 그 자신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현재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보다는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또다시 백수가 될 테고,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불려지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짐을 새겨두었다.
1) 나를 세상의 기준대로 규정하지 않을 것.
2) 나를 여러 개의 자아로 규정할 것.
3) 내가 규정한 대로 변화해갈 것.
- 백수: 백수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