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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험가 May 04. 2022

죽은 화분에서 꽃이 피었다.

둘째 하윤이는 꽃을 좋아한다. 알록달록 분홍색이 들어간 꽃을 특히나 좋아한다. 특별한 날이면 꽃을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아빠 퇴근길에 장미 한 송이 사 오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이제 8살 꼬마 아가씨 벌써 꽃을 아네.

우리 아파트에는 수요일마다 장이 선다. 화분을 판매하시는 분도 매주 오신다. 둘째는 거기를 그냥 지나칠 수없다. 색색깔 꽃 화분에 늘 관심이 많다. 나를 졸라 빨간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베고니아 꽃 화분을 사게 되었다.


붉은 꽃의 베고니아 꽃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짝사랑

 

 화분이 나에겐 그렇게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동향인 우리 집에서 식물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늦가을부터 다음  2월까지 오전에는 베란다를 통해 해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해를  받지 않아도 자라는 식물을 골라 키우곤 한다. 다육이 같이 까다롭지 않은 화분들은 그럭저럭  자라지만... 베고니아처럼  화분은 쉽지 않았다. 베고니아는 햇볕을 많이 받아야  자라는 화분이다. 우리 집에 빨간 꽃이 가득 피어 있는 베고니아 화분이 들어온  보름 정도가 지났다. 꽃잎들이 떨어지고, 빼곡하게 피어 있던 베고니아 화분에 듬성듬성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떨어진 꽃잎 고이 모셔가는 아이의 모습을 종종 보았다. 날이 갈수록 빨간색 베고니아  보다 푸른색 잎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빨간 꽃잎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도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간간히 화분을 들여다보며 물도 주고,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언제 다시 꽃이 ? 하며 물어보곤 했다. 내년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햇볕이  들지 않는 동향집에서 베고니아는 겨울을 보냈다.




겨울 동안에는 베란다 화분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둘째가 봄이 되니 화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빨아간 꽃잎이 활짝 펴주길 기대했지만, 베고니아는 겨울을 보내지 못하고 잎과 줄기까지 말라 버렸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이는 분주했다. 이미 예고된 일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올해 2월 코로나로 유치원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엄마 아빠가 준비해준 꽃다발을 받고 유난히도 좋아했던 아이였다. 졸업식 꽃다발을 곱게 말려 자기 방에 걸어 두었다. 갑자기 그 말린 꽃다발을 설거지하는 내게 갖고 왔다. 가장 마음에 드는 꽃송이를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무엇을 하려고 그러니 했더니, 베고니아 화분에 심어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거 심어도 꽃 안나" 하며 차갑게 말을 건넸다.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하고 있던 나에게 마른 꽃다발 속에서 꽃을 뽑아 달라는 부탁이 귀찮았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말이 야속하지도 않은지 "괜찮아" 하며 부탁한다.

물기 뭍은 고무장갑을 겨우 벗었다. 엉켜 있던 마른 꽃다발에서 다른 잎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이가 원하는 장미꽃을 마른 꽃다발 속에서 겨우 뽑아 주었다.  꽃송이를 받은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달려갔다.





어느날 아침 베란다 청소를 하던 중 햇살에 비친 예쁜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베고니아 꽃이 죽고 새로운 꽃이 피어 있었다.


아이가 아끼던 화분이 죽고, 아이는 그 화분에 새로운 생명을 심어 주었던 그날 밤. 아이가 만들어 놓은 화분을 보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아이가 학교 간 사이 화분을 보게 되었다.

그토록 바빴던 것일까? 우선순위가 밀린 것일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베고니아를 보내고, 새로 심은 마른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우리의 삶 속에 누군가 들어오고, 나가고를 누구나 겪는다.

그런 삶 속에 아이는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벌써 배웠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웃음 뒤에 남기고 간 아이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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