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 '더 랍스터' 영화 리뷰
세상은 정(正), 반(反), 합(合)으로 전개된다. 1950년대 후반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 혁명 '누벨바그'는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중 '반' 중 하나일 것이다. '정'은 누벨바그라는 혁명을 이끌어낸 과거 프랑스의 기계적이고 안이한 영화 제작 방식과 그에 따른 자가복제적 작품들이었을 것이고 '합'은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자리 잡은 현대의 프랑스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은 곧 다시 '정'이 되어 또 다른 '반'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 속 세상도 정, 반, 합으로 전개된다.
이 세상 속 정(正)은 무조건 커플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데이빗(콜린 파렐)은 아내에게 이혼을 당해 혼자가 되고 결국 세상의 규칙에 따라 커플 호텔로 보내진다. 이 커플 호텔은 그의 한쪽 손을 결박해 다른 한쪽 손만으로 생활하게 하면서 '하나'가 얼마나 어렵고 부자연스러운 일인지를 인식하게 하고 '둘'의 중요성을 강요한다. 또한, 그의 성욕을 분출하게 하거나 호텔에서의 유예기간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통해 모두가 '둘'이라는 완벽한 상태에 이를 것을 강요한다.
반면, 이 호텔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그가 만난 두 번째 세상, 그러니까 정(正)이 불러온 반(反)의 세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솔로 세상의 지도자(레아 세두)는 여기선 절대 그 누구와도 사귀지 말아야 하며 춤조차도 혼자 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 데이빗은 누군가와 키스하거나 사랑해서 입이 잘려나가거나 잔인한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 정(正)과 반(反)의 세상은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 아주 대조되지만 반(反)의 세상이 정(正)의 세상에 의해 태어날 수 있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비슷하거나 공통되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1.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형벌이 따른다. 첫 번째 세상에선 사랑하지 않으면 형벌이 잇따르고, 두 번째 세상에선 사랑하면 형벌이 잇따른다.
2. 한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세상의 형벌을 직접 실천해야만 한다. 커플 호텔에서 데이빗은 동물로 변하는 형벌을 며칠 남겨두고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여자(안젤리키 파풀리아)와 사귀기 위해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하는데 그 여자가 짝을 찾지 못해 먼저 강아지로 변한 자신의 형을 발로 때려죽이자 결국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들키게 된다. 비정한 여자는 데이빗의 거짓말을 호텔 매니저에게 고발하려 하지만 데이빗에게 역으로 당하고, 데이빗은 그 여자를 동물 변환 방으로 밀어 넣은 뒤에야 첫 번째 세상을 탈출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데이빗은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하지만 결국 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진 여자(레이첼 바이스)와 사랑에 빠지고, 솔로 세상의 지도자에게 이를 들키자 지도자를 둔기로 때려 기절시킨 뒤 들개들이 오가는 땅 속 무덤에 넣은 채 두 번째 세상을 탈출한다. 자신에게 닥칠 형벌을 세상의 지배자에게 갚아주고 나서야 그 세상을 탈출할 수 있었던 셈이다.
3. 자신의 짝을 공통점을 통해 찾는다. 첫 번째 세상의 커플 호텔에서 데이빗이 비정한 여자와 사귀기 위해 감정이 없는 것처럼 연기했던 것처럼 커플 호텔에서의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짝을 이룬다. 데이빗이 커플 호텔에서 만난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는 이전엔 자신과 같이 발을 저는 여자와 사귀었고, 커플 호텔에 오게 되자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사귀기 위해 주기적으로 책상에 코를 박거나 딱딱한 물건으로 코를 때려 코피를 자주 흘리는 척 연기를 한다. 두 번째, 솔로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데이빗은 근시라는 자신과 같은 공통점을 가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 여자가 사랑에 빠진 형벌로 솔로 세상의 지도자에 의해 장님이 되는 형벌을 받자 그 세상에서 무사히 탈출한 후 그는, 칼로 직접 자신의 눈을 찔러 본인도 장님이 되려 한다.
영화는 근시 여자와 함께 두 번째 세상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 번째 세상에 진입한 후, 거울 앞에서 자신의 눈앞에 칼을 대고 망설이는 데이빗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전개 양상을 정(正), 반(反), 합(合)으로 해석한 건 과연 데이빗이 자신의 눈을 찔렀을까, 찌르지 않았을까 라는 미칠 듯한 궁금증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데이빗은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도착한 세 번째 세상은 합(合)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정(正)의 세상은 기존의 세상이고, 반(反)의 세상은 정(正)의 세상에 대항하는 혁신적이고 해방적인 세상이지만 불완전하고 정(正)의 세상을 완전히 탈피하진 못한다. 하지만 합(合)의 세상은 정(正)과 반(反)의 세상이 결합된 세상으로 그것이 진전이든 후퇴든 무언가 변화해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데이빗은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도착한, 혹은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는 공통점이라는 것이 자신의 짝을 찾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 것이다. 사랑해야만 한다느니, 안 사랑해야만 한다느니 하는 것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형벌이 따른다느니, 형벌의 종류에는 무엇 무엇이 있냐느니 하는 것도.
영화 내내 깔리는, 데이빗의 인생을 설명하는 듯한 나레이션을 근시 여자가 하는 것도 데이빗이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공통점 따윈 없어도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설명을 타인에게 맡길 만큼의 신뢰와 믿음을 주지 않았을까. 만약 데이빗이 자신의 눈을 찔렀어도 시간의 흐름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삭제시켰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근시 여자가 데이빗의 인생을 읽어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 감상을 너무나 지엽적인 부분으로 끌고 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재밌는 걸 뭐 우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