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박쥐' 영화 리뷰
박쥐를 처음 본 건 작년 생일이었다. 짤막한 감상문은 내 생일 정확히 이틀 뒤에 쓰였다. 기특한 자식. 작년의 나는 나 스스로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선물 같은 박쥐의 처음은 충격적인 이미지의 잔상과 송강호의 얼굴로 남았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송강호 역)이 처음으로 피를 폭음하는 장면, 상현과 태주(김옥빈 역)가 서로의 피를 나누며 키스하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해피 버쓰데이 태주씨까지. 뭐 이런 축축하고 달큼한 이미지들 말이다. 송강호의 얼굴을 기억한 이유는 박쥐에서 송강호가 마치 강동원처럼 잘생겨 보이기 때문이다. 뱉어버렸네.
하지만 박쥐의 이미지들에 대한 그 미칠듯한 끌림. 그 끌림의 이유는 몰랐다. 이유도 모르고 머릿속을 뛰노는 이미지들을 핥았다.
그 이유를 해석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프랑스에 오고 난 뒤, 이곳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나서부터이다. 상현이 태주를 향해 내준 그 모든 마음과 홀로 겪은 고통처럼. 나의 사랑을 분해하다 보니 상현의 사랑도 윤곽이 보였다. 나의 사랑이 상현의 사랑을 퍽 닮아있나 보다.
영화는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도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큼의 자애롭고 신실한 신부 상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상현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자살을 바라는 신도의 고해성사를 심성껏 들어준다. 하지만 이런 타인을 위한 수많은 기도로는 부족했는지 ‘진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바이러스 연구에 피실험자를 자처해 떠나고, 다행히도 유일한 생존자로서 돌아오지만 뱀파이어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초등학교 동창, 강우(신하균 역)의 아내 ‘태주’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뱀파이어로 변한 상현에게 찾아온 변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 번째, 동물적인 감각. 너무나 예민해진 오감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이다. 두 번째,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 상현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 신체를 갖게 됐다. 이제 상현의 몸은 건물 5층 높이를 계단 한 칸 내려가듯이 여긴다. 세 번째, 피를 향한 열망과 솟아오르는 성욕. 나에겐 이 세 번째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상현은 모든 뱀파이어가 그렇듯이 누군가의 피를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성적 끌림과 유혹에 특히 민감해지고 면역을 상실했다.
한 순간 찾아온 이 모든 변화에 상현은 이를 받아들이기보단 거부하거나 부정한다. 사실 누구라도 그럴 테지만 특히 상현은 더 그런다. 우린 상현이 예수도 울고 갈 순백의 신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평생 사람을 살리는 기도를 하던 상현이 자신의 앞에 피를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성경을 인생의 등불 삼아 성의 순결과 동정을 지켜오던 상현이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미칠 듯한 성욕이 예고도 없이 자신을 덮치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모든 혼란을 고요하게 잠재워 버린 이가 있다면, 그게 바로 태주이다. 태주는 상현의 초등학교 동창, 강우의 아내로 강우와 강우 모(김해숙 역)의 지긋지긋한 히스테리를 홀로 감당하며 억압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상현은 태주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태주도 그런 상현의 마음에 응답한다. 그러자 마침내 결성된, 이름 그 자체로도 짜릿한 친구의 아내와 하는 사랑이 상현을 바꾸어 놓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상현은 뱀파이어가 됨으로써 찾아온 변화들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며, 마음껏 누리고, 즐기기 시작한다.
둘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현은 변해간다. 더 이상 상현은 성욕을 억제하지 않는다. 상현은 태주와 정열적인 관계를 나눈다. 또, 태주가 강우에게 학대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태주와 작당하여 강우를 강에 빠뜨려 죽이고, 혼수상태에 놓인 환자의 피를 텀블러에 챙겨 수시로 마시며, 어렸을 때 자신을 거둬 한평생 키워준 늙은 신부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선포한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신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결국 상현은 이 노신부조차 죽인다.
나는 이 사랑이 가져온 상현의 비약적인 변화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재앙적인 사랑인가. 태주를 향한 상현의 사랑은 상현의 손에 사람을 살리는 십자가 대신 강우를 죽이는 크고 무거운 돌을 들게 했고, 길고 어두운 밤을 성욕을 억누르는 자학 행위 대신 아름다운 태주를 한 몸 가득 안는데 보내게 했다. 사랑은 상현을 신부에서 뱀파이어로 완전히 탈바꿈해 놓았다.
그 긴 인생동안 신부로서 지켜오던 상현의 질서와 가치, 신념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사랑이란 것 때문에 얼마나 보기 좋게 무너졌는가. 그 모든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사랑이란, 사랑이란 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무례한 것인가. 내 시간과 마음을 들여 쌓아 올린 내 인생의 추구가 사랑에 비해 포기할만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 이 얼마나 재앙 같은 일인가.
그리고 나도, 나도 이런 사랑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다. 내 안의 것들을 내 허락도 없이 헤집고, 공격하고, 마침내 붕괴해 나를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말들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그런 강한 완력을 가진 듯한 사랑을. 나에게서 피어난 사랑이지만 주도권은 내가 아닌 사랑에게 있는 듯한 사랑을. 요즘의 난 사랑에게 종속된 몸뚱이 같은 걸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나풀대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사랑의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기분이다.
매일 내 자아가 사라져 가는 듯한 위기감을 느낀다. 사랑 때문에 나에게 집중할 수 없고 나에게 집중했던 모든 시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내준 지 오래다. 매일을 줏대 없이 흔들리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재앙 같다고. 나에게 사랑의 서브텍스트는 재앙이라고.
이어서 상현을 떠올렸다. 아, 작년 생일의 난 박쥐를 통해 내 미래를 어렴풋이 보았나? 작은 스크린 속에 재생됐던 이 영화는 1년 후의 나의 모습을 가리키는 발칙한 예언이었나? 내가 박쥐를 좋아하고, 남들에게 얘기하고, 밤새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은 내가 하는 나를 향한 최고의 기만이자 조롱이었나?
박쥐는 강우가 죽고 난 뒤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전까지 기괴한 세계관과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러한 사랑의 어마무시한 파괴력과 장악력을 관객의 눈앞에 생생히 보여준다. 강우의 죽음 뒤에는 지금까지 관객이 인식한 사랑이란 것에 '죄책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겹쳐지며 이야기가 전혀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박쥐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더 할 이야기가 많다. 사랑이 점점 더 다채로워지며 입체적인 모습을 갖춰 나간다.
2편에서는 이러한 변화된 사랑의 의미와 이유, 그리고 태주를 향한 상현의 사랑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육체적인 사랑이었는지, 정신적인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그 둘 다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실 2편 같은 건 없다. 글로 쓰기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 박찬욱 만나기 전 날에 적겠다.
*영화가 야하고 자극적이어서 글도 비슷한 톤으로 적어보고 싶었다. 근데 그냥 박찬욱과 정서경의 야함은 우아하고 내 야함은 경박하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적는데 2개월 걸림. 글에서 사리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