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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May 06. 2024

이민 온 한국 아이들은 이상하다 (1)

1991-1994


이민을 와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같은 학교의 다른 한국 아이들이다. 부모보다 친구가 중요한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하게 생기고 같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들은 아이가 외국에 나와서 살면 자동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거라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가족 외의 인간관계란 학교에 얼마 있지 않은 한인들과 맺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새로 전학 올 때마다 아이들은 누굴까 기대를 한다. 새로 온 여자애가 엄청나게 예쁘다고 소문이 날 때도 많았지만 그게 사실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 오지를 탐험하는 사람들은 아주 못생긴 여자를 같이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에서 몇 개월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다 보면 처음에는 그렇게 못생겨 보이던 여자라도 정이 들기 시작하고 예뻐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면 탐험가들은 얼른 짐을 챙겨서 다시 돌아온다. 문명사회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는 의미니까."


어쩌다 정말로 예쁜 아이가 들어오면 소문은 다른 학교에까지 퍼지고 다른 학교의 "형들"은 구경을 하러 차를 몰고 원정을 오곤 했다. 한국인들은 외모의 아름다움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못생겨서가 아닐까 한다. 외모가 그럴듯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에서는 미의 가치가 그렇게 높을 수가 없다.


내가 10학년때 우리 학교에 들어온 J라는 아이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남자들이 좋아할 조건은 모두 갖고 있었다. 긴 머리에 하얀 얼굴, 병적으로 마른 몸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항상 뭔가 알듯 말듯하게 미적지근한 식으로 말을 했다. 압구정동에서 살다 온 부잣집의 딸이었고, 그 아버지는 항상 자기 돈 아니면 차 자랑을 하는 전형적인 졸부 스타일이었다. J는 나에게 처음부터 친한 척을 했다. 내가 여기 지금 와서 모든 것에 서투르니 네가 날 좀 도와주면서 우리 친하게 지내자는 것이었다. 그녀의 태도에 불안함이란 건 없었기 때문에 나는 J가 남자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그게 잘 먹혔을 거라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아이가 이민 와서 처음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어수룩하지만 공부 웬만큼 하고 학교 사정을 아는 아이를 앞잡이로 포섭하는 것이다. 나중에 본인도 현지 사정에 익숙해지고 영어도 좀 편해지게 되면 그때는 온갖 김칫국은 다 마시고 있지만 이젠 이용가치가 떨어진 그 아이와는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조금 친해지게 되었지만 이런 종류의 아이들은 상황이 바뀌면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자신의 생일이 내일인데 여기 와서 남자한테 생일에 축하도 못 받는 건 너무 아쉽다며 나에게 뭐라도 달라는 것이었다. "넌 내 생일에 뭐 줬냐?" 하고 대꾸했지만 나는 그동안 알고 지낸 것도 있고 해서 내 기준에서는 거금인 5불짜리 초콜릿을 사다 주었다. 고맙다고는 했지만 뭔가 께름칙한 표정이었다.


J는 1년 동안 우리 학교에 다니다가 부촌인 웨스트 밴쿠버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그 동네의 규모가 훨씬 큰 학교로 전학을 갔고, 그곳에는 한국인들이 좀 많았던 까닭에 그녀는 곧 유명해졌다. 그녀를 두고 남자들은 서로 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J는 곧 '압구정'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아버지가 사준 마즈다 MX-6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다. 그 후로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남자들이 자기를 두고 다투는 것을 매우 고상하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며 즐기는 것 같았다. "좋은 오빠들 사이에서 나는 누구 한 명을 선택을 할 수가 없어" 한마디에 당사자들은 서로 네가 꺼지라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열을 냈다. 대부분 여자가 그런 말을 하면 둘 다 별로라는 이야기다.  대 놓고 여왕처럼 굴어도 예쁘면 상관이 없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온갖 핀잔을 받으면서도 나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하던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출세한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말했듯 세상에는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이런 능력을 가진 여자들이 있다. 한국 남자라곤 나 같은 아이들 밖에 없는 우리 학교로 온 것은 J에게는 불운이었고, 다행스럽게도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된 J는 연애를 할 때마다 아이들의 입방아에 매번 올랐다. 다시 말하지만 이민을 온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자동적으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갖다 놓던지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남이 누구랑 연애하느냐가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나는 이민을 오고 난 후에야 서울 밖에도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주로 대구나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지방 사람들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보다 더 부유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업하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장사에는 재주가 없었던 친척들의 영향으로 사업이라고 하면 부도니 야반도주니 하는 단어들만 연상되는 나에게 사업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기이하게 보였다.


이상하게도 우리 학교에는 비슷한 시기에 부산 출신 아이들이 여럿 왔었다. 나와 동갑인 H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덩치가 크고 어수룩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생선 도매업을 돕느라 몸에서는 항상 고등어 비린내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는 없었는데, 본인은 그게 인종차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기 없는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과거에 자신이 다른 학교 싸움 짱들과 대결을 펼쳤다며 무협지에서 본 것 같은 이야기들을 자기 얘기인양 떠들어대곤 했다. 나는 H가 약간 불쌍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끄덕끄덕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H는 그래서 나만 보면 친한 척을 했다.  생선 냄새도 불편했고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매일 받아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J와 이야기를 할 때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부산에서 온 자매도 있었다. 언니는 바이올린을 잘했고 동생은 피아노를 엄청나게 잘 쳤다. 그 집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셔서 코가 빨갛고 목소리가 매우 컸으며 딸들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언니와 동생 둘 다 나대는 걸 좋아했고 자신들이 굉장히 매력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언니인 L의 외모는 얼핏 보면 양배추 인형과 비슷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 그녀의 별명은 아톰이었다. 자매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끝없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그 집 부모님을 몇 번 만나보고 그 자신감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딸들을 무슨 동화 속 공주들 인양 애지중지했다. 한국은 유난히 딸들을 오냐오냐하고 키우는 아버지들이 많다. 왜 그런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자란 우리 세대의 여자 아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빠순이-된장녀-맘충 등으로 불리며 살아가고 있다.


외모를 그렇게 따지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L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난 그런 걸 잘 숨기지 못했기 때문에 L도 그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런데 고백을 가뭄에 콩 나듯 받는 여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L은 이 상황을 최대한 오래 즐기고 싶어 했다. 흔히들 인기 없는 여자는 꼬시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찬밥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에 본전을 뽑으려 들게 마련이다. L은 나와 같이 학교 오케스트라에 있었고 학교에서 하는 송년 연주회를 보러 온 아버지는 내 옆에 있는 양배추 인형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끝나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말했다. "이 아비가 널 잘못 가르친 것 같다." 아버지는 못생긴 여자를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는 무슨 주도권을 쥔 마냥 점점 거만해지는 그녀의 태도에 환멸을 느껴서였다. 나는 11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후에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쯤 L은 친구를 통해서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스카이트레인 (지상으로 다니는 무인 전철)에서 내리다 L과 마주쳤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어떻게 자기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냐면서 "너랑은 이제 정말 끝이야!" 하고 드라마에서처럼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내 옆에 있던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쟤 누구냐? 진짜 못생겼다." 난 그냥 예전에 알던 애라고 둘러댔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10학년까지 있는 학교였고 학생수도 적었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은 대여섯 명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딱히 한국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11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더 규모가 큰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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