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는 어떤 시리즈에 대해 특별한 믿음을 가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스토리가 별로일지라도 액션이 좋을 거라던가, 모험을 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등등을 말입니다. 개발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유저는 캡콤에서 만든 액션 게임을 보고 전투에 대한 기대감을 높게 가는 편입니다.
전투에 한가락하는 작품들
닌텐도의 경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창의력과 안정성을 주로 살펴봅니다. 노하우가 많이 쌓인 만큼 게임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상상력을 그대로 펼치는 능력도 있습니다. 골판지로 만든 완구를 스위치와 연동하여 즐길 수 있는 [닌텐도 라보]가 발표되었을 때 필자는 역시 닌텐도라고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명작은 30%가 창의성, 70%가 클리셰일 때 완성된다는 말을 닌텐도가 가장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비슷한 장르의 게임일수록 닮은 점이 많고, 매너리즘에 쉽게 빠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 다 획기적인 시도가 있었음에도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평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닌텐도 게임 특징을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이하 디스커버리)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단, 여기서 다루는 특징은 필자가 생각했을 때 자주 보이는 것들일 뿐, 모든 닌텐도 게임에서 이러한 특징을 드러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물의 숲]이나 [스플래툰]처럼 독특한 게임성을 가진 작품들에는 허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다루는 특징은 참고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동물의 숲]은 닌텐도가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라고 정의할 만큼 특이한 작품이다
다양한 기믹의 조화와 불협화음
주인공 커비의 아이덴티티는 카피 능력이며, 적을 삼켜서 그들의 능력을 일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의 수만큼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는데, [디스커버리]에선 머금기 변형이라는 것도 추가로 얻었습니다. 머금기 변형은 커비가 물체를 입에 넣은 상태로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머금으면 운전할 수 있고, 전구를 머금으면 불을 켤 수 있습니다.
적을 삼키거나 물체를 머금어서 능력을 얻는다
이렇듯 커비가 할 수 있는 건 많지만, 사실 게임에서 다양한 기믹이 나오는 건 흔합니다. 중요한 건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좋은 레벨 디자인을 만드는 것인가입니다. 그래서 일반 스테이지를 살펴보면 주된 카피 능력과 머금기 변형이 최소 하나씩은 들어간 편입니다. 이때 조합이 잘 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네이첼 초원의 ‘터널을 지나서’라는 스테이지의 컨셉은 파이어 능력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을 붙일 수 있는 램프나 도화선 달린 대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머금기 변형도 계단을 활용하여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간도 있습니다.
파이어 능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브젝트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원더리아 철거지의 ‘서킷에서 GO!’란 스테이지에서 자동차 머금기로 레이스를 한 후 중반부에서 갑자기 밤 능력의 활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밤 능력과 자동차 머금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네이첼 초원의 ‘데굴 로드’에선 레인저 카피 능력과 자동차 머금기가 주로 쓰였지만 바위가 굴러 떨어진다는 컨셉과 기믹으로 스테이지에 통일성을 주었습니다.
능력과 머금기 변형은 여전히 따로 논다
모든 스테이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거나 목적을 공유하지 못하고 제각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나마 하나 발견했는데, 그 방향성은 바로 기믹의 다채로운 활용입니다. 즉, 일반 스테이지 대부분이 능력 활용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인 것 같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려워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저에게 큰 고민거리를 주지 못하는 난이도입니다.그나마 각 기믹도 트레저 로드라는 곳에서 더 어렵게 쓰입니다.
몬스터 러쉬를 5번 해야 하는 트레저 로드
기믹이 다양하고 활용도가 높은 건 다소 닌텐도스럽지만, 스테이지 구성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이유는 카피 능력과 머금기 변형의 차이점이 너무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피 능력은 스테이지 바깥에서도 교체가 가능해서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금기 변형은 스테이지 내에서 삼키고 뱉는 과정이 반드시 들어가서 그 능력만을 위한 구간이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게다가 그 둘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단 분리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각 능력을 합친 레벨 디자인이 나온다면 그대로 하되, 그게 힘들다면 아예 분리시킨 후 활용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 상태에서 부메랑을 날리거나 불을 뿜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기승전결식 난이도
닌텐도의 스테이지는 기승전결을 이룰 때가 많습니다. 처음엔 어떤 기믹을 사용하는지 소개하고, 그것으로 문제를 풀고, 그걸 더 어렵게 풀고, 골인 지점에 도달하면 끝입니다. 이 방식은 게임 메카닉 중 하나를 확실하고 깊이있게 활용하면서 유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고 성취감도 줄 수 있습니다.
[슈퍼 마리오 3D 월드]에서도 등장한 기승전결식 난이도
보통은 이걸 대부분의 스테이지에 넣는 편이지만, 앞서 언급했듯 [디스커버리]에선 좀 다릅니다. 일반 스테이지는 각 기믹의 튜토리얼의 역할을 수행하며 유저에게 모험과 탐색의 재미를 주는 데에 집중한 콘텐츠입니다. 그렇다보니 기승전결식 구성은 트레저 로드에서 더 많이 보입니다. 트레져 로드는 카피 능력이나 머금기 변형 중 하나만 사용하여 제한 시간 내에 클리어하는 콘텐츠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사용할 기믹을 보여주고 난이도가 순차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일반 스테이지보다 트레저 로드의 압박감이 더 큰 편입니다.
시간 제한과 낙사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풀 메탈 커터 트레저에서는 해당 능력이 벽에 뜅긴다는 기믹을 이용합니다. 처음엔 벽이 하나이지만 이후 점점 늘어납니다. 다음부턴 유저가 벽을 직접 돌려서 커터가 튕겨 나갈 길을 만들어줘야 하고, 마지막엔 커터를 날린 후 타이밍에 맞춰 벽을 돌려야 합니다. 이걸 최대 3분 30초 내에, 혹은 목표 시간 1분 30초 내에 달성해야 합니다.
별 모양 발판을 누르면 벽의 각도가 달라진다
유저가 스스로가 기믹을 실험하기에는 트레저 로드의 제한 시간이나 목표 시간은 생각보다 빡빡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유저가 스스로 만들기 위해 능력을 진화시킬 때 설계도를 얻고 무기점에 들르는 과정을 추가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일반 스테이지는 모험과 탐색의 재미를 줍니다. 그때 거기서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면 스테이지 하나당 설계도를 딱 하나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후 무기점에 설계도를 가져가면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존 카피 능력에서 공격력이나 연사력이 증가하고 새로운 기믹이 추가되기 때문에 모험의 재미를 느끼던 유저에겐 새로운 장난감을 쥐어준 샘입니다. 심지어 풀 메탈 커터의 설계도를 얻은 후 다음 스테이지로 들어가면 '커터로 와일드 본커스 쓰러트리기'라는 도전 과제도 주어져서 바로 사용해보도록 유도도 해줍니다. 한 스테이지당 설계도를 하나만 주는 것도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설계도를 두 개 이상 주었다면 하나만 선택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풀 메탈 커터 트레저는 해당 능력을 얻은 후 후반부에 열린다
입문은 쉽게 마스터는 어렵게
단순하고 귀여운 생김새인 [디스커버리]의 주인공은 유저에게 거부감을 주기 힘든 디자인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게임 유저층을 확장하게 만들어주었고, 실제로 플레이할 때도 일반 스테이지는 클리어하기 쉬운 편입니다. 보스 스테이지를 개방하려면 웨이들 디를 최소 몇 명 구출해야 하지만, 최대 인원 중 절반 정도만 찾아도 충분합니다. 트레저 로드도 보상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게임을 잘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번에 깬 마지막 보스
다만 이건 정말 엔딩까지만 허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각 스테이지의 도전 과제는 전부 숨겨져 있어서 의식되는 걸 다 건드려봐도 놓치기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전 운전하기’는 저절로 달성되는 편이지만, ‘지명 수배 포스터 제거하기’처럼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즉, [디스커버리]는 입문하기 쉽지만 마스터하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마지막 보스보다 더 힘들었던 도전 과제
이렇게 설계된 이유는 유저의 정복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필자가 [셀레스트]를 다루며 딸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할 때 ‘얻을 수 있는 건 다 가져가려는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필드를 지나갈 때 험난한 곳에 딸기를 발견해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유저는 웬만하면 그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엔딩만 보고 치우기 힘들 정도로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서 무기나 스킬을 직접 실험해보고, 도감이 있다면 다 채우고 싶고, 달성률 100%에 도달하고픈 마음도 그 때문입니다.
수집품만 아니라면 달성률 올리려고 더 노력했을 것이다
이는 게임의 재미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무언가를 잘할 때의 기쁨은 게임 플레이의 원동력이 되지만, 숙달되고픈 욕심은 엔딩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를 위한 것이 2회차 콘텐츠인 외딴섬 드리미 포가입니다. 이때부터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회복 아이템이 줄어들고 적은 많아졌으며, 웨이들 디 탈출시키기처럼 수집품을 일정량 모으는 것도 약 83%로 더 늘어났습니다. 보스의 패턴도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갑자기 누구세요
게다가 숙달될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인지 조작법도 완전히 다 알려주지 않습니다. 특히 숙련도를 요구하는 것일수록 숨기는 경향이 있는데, 정확히는 메뉴에 직접 찾아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감춰두는 편입니다. [디스커버리]에선 저스트 회피가 그러했습니다. 주인공 커비는 체공 시간이 길고 몸집이 작아서 회피기를 쓰지 않아도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회차 콘텐츠에선 저스트 회피를 못하면 죽기 쉽고, 이를 활용할수록 좋은 능력도 있습니다. 다른 작품에서 이와 비슷한 걸 찾아보자면, 필자의 기억으로는 [마리오 카트 8 디럭스]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거기선 거북이 등껍질 등을 뒤에 배치하여 공격을 막아내는 걸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카피 능력별 커맨드 등 알려주지 않은 것이 많다
직관적인 비주얼
게임에 현실성이 들어가면 유저는 하나를 알고 열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에 뒤덮인 적에게 물 속성 공격이 잘 먹히는 걸 알아내면, 불타는 물체에 물을 끼얹어 장애물을 치우는 행동을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직관적인 비주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보자마자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디자인은 유저가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원신]의 원소 반응처럼 현실성으로 이해하던 요소에 게임적 허용이 과하게 개입하면 유저가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것이 [디스커버리]의 커비에게는 특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커비가 상대방의 어떤 기술을 카피했는지 상시로 알려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과 주인공은 능력에 맞춰 외형이 결정됩니다. 파이어 능력을 가진 핫헤드는 무언가를 뿜을 수 있는 입과 불타오르는 머리를 가졌고, 그를 흡수한 커비의 머리에는 불이 피어오릅니다. 평소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만, [디스커버리]에선 능력을 진화시킬 수 있고, 머금기 변형이라는 새로운 기술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는 그 둘이 양립할 수 있는 비주얼과 규칙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규칙의 결과물이 이것이다
바로 카피 능력을 모자로, 머금기 변형의 능력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도구만 들고 있던 파라솔 능력이나, 몸이 바뀌는 UFO 능력이 [디스커버리]에서 빠진 이유도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카피 능력과 머금기 변형을 표현하는 부위가 서로 달라야 하는데, 파라솔이나 UFO 능력은 오히려 그걸 침범하는 케이스입니다. 모자의 디자인은 기존 시리즈에서 써온 걸 거의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머금기 변형과 양립하기 힘든 디자인이다
진화한 능력의 디자인도 규칙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어떤 기술을 가졌는지는 이전 능력으로 학습하였으니 새로운 컨셉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 능력을 진화시키면 더욱 강한 보스 몬스터의 외형을 따와서 그들의 기술을 추가로 구사할 수 있고, 파이어 능력을 진화시켜 드래고닉 파이어가 되면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가 달립니다. 혹은 노블 레인저나 스페이스 레인저처럼 컨셉만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커비의 정체성도 지켜주는 디자인
추천
[디스커버리]는 닌텐도의 정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게임입니다. 그래서 출시일인 22년 3월 25일부터 현재 24년 3월 22일까지 1.0.0 버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집대성한 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는 뜻이기도 하며, 이번 작품에서 고칠 버그나 추가할 콘텐츠도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로 끝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그 어려운 걸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작품을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만족도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닌텐도 게임을 접한지 얼마 안 된 분들에게는 좋은 맛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숙련자에게는 쉬운 구간이 너무 많을 수 있으니 시간 떼우기 용으로 시작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게 엔딩이 끝나고 2회차 콘텐츠를 시작하시면 왜 애들용 [엘든링]이란 별명이 붙었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패치나 업데이트가 없던 시절의 풍조를 현대에서 느낄 수 있다
다음편 예고
닌텐도 게임은 새롭다와 진부하다는 평을 동시에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시리즈가 오래된 게임일수록 그런 모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있습니다. 정식 시리즈에선 위에서 언급한 특징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작품에선 매너리즘을 타파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지만, 필자가 봤을 때는 기존 규칙에서 약간의 변화만 가져온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큰 결과를 가져온 건 맞습니다. 매우 효율적이었고, 앞으로의 닌텐도 게임에도 좋은 영향력을 미칠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래서 다음에 다룰 작품을 통해 닌텐도가 지금까지 고수하던 것들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무엇을 버리고 바꿀 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음에 가져올 작품은 바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