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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25. 2023

새로운 회사의 오퍼

겨울의 햇빛을 위해 찾아온 마르세유였고, 도착한 이틀 동안 날씨 운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햇빛이 없어 불을 켜야 하는 베를린과는 확실히 달랐다. 10년 전 내가 살던 스페인의 아침과 비슷했다. 남편이 일찍 일어나 근처 빵집에 가서 크로와상과 빵쇼콜라를 사 왔다. 숙소로 잡은 곳에 에스프레소 메이커가 있어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크로와상에 카푸치노 한 모금을 마시니 세상 천국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


1월의 마르세유.햇볕 아래 다들 나와있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본지 대체 언제.
역시 프랑스 크로와상.



회사는 아직 관두려고 결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유럽 경제가 안 좋기도 하니, 조금 여유를 두고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이곳에 오기 몇 주전부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하나둘씩 봤다. 조금 쉴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번아웃이라기보다는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회의감이었기에 일을 아예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지금 회사를 관둔다면 남은 휴가를 몰아 쓰고, 새로운 회사 시작일을 조정한다면 한 달 정도는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속매니저이자 우리 부서 디렉터가 사직서를 냈다. 다른 부서 디렉터들도 줄줄이 사직서를 냈다. 직속 매니저가 사직서를 낸 나에게 따로 연락을 했다.


"내가 가는 곳에 같이 가서 일해보지 않을래? 회사 창립자들이 컨퍼런스에서 너 워크숍을 보고 너한테 관심이 많다, 한 번 인터뷰 안 해볼래?"라고 했다. 내 매니저와 나와 같이 일한 세월이 3년. 업무 스타일이 맞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리모트로 일을 하는 것에 딱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매니저고,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플러스다. 새로운 곳에 들어가 적응하고, 새로운 매니저에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다. 더군다나 사실 내일이라도 사직서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쑥날쑥했던 시기였기에 이런 제안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이 회사 창립자들과 몇 차례의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라기 보단, 디지털노마드로 사는 내 친구들, 그리고 사업하는 친구들과, 내 남편과 나누는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시도해 봤어?

-이 회사가 이거 진짜 잘하더라, 비슷하게 해 봤는데 우린 이런 결과가 나왔어.

-업계에서 찬반이 갈리는 포인트지, 나는 이렇게 생각해.


같은 선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좋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더군다나, 내 매니저의 힘을 실어 꽤나 좋은 푸시를 하고, 성과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이들의 프로덕트에 대한 열정과 진심 어린 마음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지막 스텝 관련 곧 연락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마르세유에 왔다. 지금 있는 회사와 조금 더 싸워보고도 싶었지만, 일단은 마르세유에 있는 동안만큼은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마르세유에 온 진짜 이유가 있었으니까: to be continued).  

대략 오후 4시-7시 사이. 술을 저렴하게 파는 프랑스의 해피아워 (Happy Hour), 프랑스인들은 [애피하워]라고 부르는 그 시간. 쌀쌀한 날씨인데도 역시나 유럽의 젊은이들은 여기저기에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생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우리도 저러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남편과 나는 조용히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과일향이 살짝 나면서도 반투명한 레몬색이 도는 NEIPA 를 시켰다. 한 모금 들이키고, 핸드폰 이메일을 확인했다.


-We'd love to have you onboard! (우리 회사의 일원이 되면 좋겠어!)


오퍼 메일이었다. 같은 포지션이지만 현 회사보다 꽤나 좋은 조건이었다.  초기 멤버들의 특혜를 같이 더해주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았다. 오피스와 리모트를 섞어 일하는 하이브리드형. 매니저와 이야기했는데, 내가 딱히 베를린에 없어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했다. 아직 남은 단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내 매니저와 3년을 넘게 일을 한 사이인 것이 큰 레퍼런스로 작용했다고 했다. 또 몇 번의 인터뷰 끝에, 이미 딱히 다른 과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 오퍼를 미리 주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아직 오퍼를 받아들이진 않았고, 베를린에 돌아가 오피스도 가서 인사도 하고 얼굴을 직접 보며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번주와 다음 주에 다른 인터뷰도 있기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회사에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기분 전환을 위해 온 마르세유에서의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되었다.


시작이 좋은 이 도시는 우리에게 보다 더 많은 것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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