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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r 23. 2023

가장 힘든 가장 기본적인 것들

프랑스의 우리 집

2011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살 때는 모든 것이 아주 쉬웠다. 교환학생.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끼니와 학비를 해결하고, 아파트는 학생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학교에서 연결해 준 아파트. 딱히 이것저것 보러 다닐 필요는 없었다. 공과금도 모두 아파트 방세에 딸려나가니 내가 신경 쓸 것은 스페인어와 노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행복한 세상이 있을 수가 라는 생각에 외국 생활에 대한 환상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계절 내내 밝은 바르셀로나의 햇살 아래 의 기억으로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으로만 스페인을 기억했던 것 같다. 핸드폰을 두 번이나 도둑맞고, 지갑을 도둑맞고, 경찰서에 리포트만 세 번. 게다가 악덕 집주인에게 말도 안 되게 보증금을 까먹었는데 그런 기억은 하나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스페인 코르도바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독일 베를린. 이때부터 나에게 해외생활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한국에서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몰랐기에 더 편했는지 모른다. 아니, 아마 한국에 살면서 내가 아는 언어로 이 모든 것들을 처리한다면 한국같이 모든 것이 빠른 나라에서는 더 쉬울지도 모를 일이다.


비자부터 시작해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는 요소들이 사실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아마 가장 골치가 아플 것이다. 결혼, 파트너십이 워킹비자를 받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세 가지 모두를 해 보니 알겠다. 그 어떤 것도 외국인에게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디 그뿐일까,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한 집을 보려고 20명이 넘게 줄을 지어 집 뷰잉을 하는 광경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그 집을 구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빼곡한 서류들. 이쯤 되면 내가 과연 뭘 좋자고 외국에서 잘 알아보지도 못하겠는 외국어로 잔뜩 쓰인 서류들을 들고 이 고생을 하는가 하며 현타가 잠깐 온다.


인터넷 패키지 종류를 알아보고, 은행 어카운트를 열고, 보험을 알아보고, 세금번호를 부여받고, 거주증을 받고, 공과금을 내고, 핸드폰 통신 개통까지.


그렇게 모든 기본기가 끝이 났나 싶을 때쯤엔 또 다른 숙제가 주어진다.


비자를 연장한다거나, 실업급여를 신청한다거나, 병원을 가야 되는데 어디부터 어떻게 가야 할지. 일만 잘하고 사람만 잘 사귀는 것뿐만 아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외국생활은 그래서 가끔은 더 숨이 찬다. 그래서 한 번 외국 생활을 해 보면 다음 나라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드라마 보면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던데, 돈을 대체 얼마나 벌고 정말 어느 정도 부자여야 하는 거야.라는 심드렁한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집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이 골치 아픈 프로세스를 위한 필수 조건은 우리가 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날씨 좋고 따뜻한 남부였으면 좋겠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을 들여다보았지만 이곳의 참담한 서류행정 상황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아닌 프랑스. 그중에서도 햇빛이 내리쬐는 남프랑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50프로도 이해하지 못한 가계약서를 구글 번역기를 돌려 사인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참, 결국에 나는 남편을 백 프로 믿을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물론 우리가 사는 생애 첫 집이기에 기쁜 마음이 가득하지만 앞으로 독일어에 이어 프랑스어로 가득한 문서들이 점점 쌓이겠구나 하니 내 인생 참 쉽지 않다 싶었다.


이제 한국어 볼 날은 정말 내가 열심히 만들지 않으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요즘 나는 더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것도 있다. 앞으로 우리 앞에 공동자산이 생기니 공동명의의 통장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또 우리는 은행 어카운트를 알아보는 중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외국에서는 왠지 아무래도 조금 더 힘든 느낌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프랑스에 나의, 우리의 집이 생긴다. 또 다른 삶을 위한 기본을 탄탄히 다시 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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