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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지면, 아기 얼굴을 봅니다.

유럽에서의 육아일기 4

by Sun

엄마가 된 지 8개월 차. 그 어떤 직함보다 가장 의미 있고, 그 어떤 직업보다 가장 고된 직업. 육아휴직을 1년씩 가는 독일의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1년 육아휴직이라니 진짜 꿀이네 했는데, 24시간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고, 6시 땡치면 퇴근하던 이곳에서 퇴근조차 없는 육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


두 달 동안 한국에서 친정 찬스를 써가며 놀고, 쉬고 했더니 그 여파가 더 심했나 싶다가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또다시 우리만의 패턴을 만들며 이 것이 우리의 삶이려니 살아간다. 차라리 우리 식대로 누구의 터치도 없이 육아를 할 수 있으니 그 편은 차라리 낫지 싶다. 그래도 기왕이면 가족들이 옆에 있는 것이 더 낫기는 하다, 아무래도.




국에서 돌아오니 오랫동안 지냈던 이 오래된 베를린 아파트가 너무 싫었다 베를린에서도 우리가 원하면 충분히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었지만 그 빌어먹을 '베를린을 이제 떠야겠어, '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살아온 이 집에 참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들었다.


겨울에 환기를 잘 안 시키면 곰팡이가 쉽게 생기는 옛날 독일식 아파트. 올해 유난히 이 집에 많은 것들이 더 삐걱대고 고장이 났다. 중고로 썼던 세탁기와 파이프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서 세탁기를 바꾸려다가 집안이 물바다가 되어 소방관이 들이닥친 것이 이번 여름. 이제 좀 됐나 싶었더니,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 세면대의 수도관이 녹이 슬어 구멍이 나 물이 줄줄 샌다. 그리고 몇 년째 잘 버텨주던 중고로 샀던 냉장고까지 작별을 고하면서 이제 이 집에 살만큼 살았다는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베를린에 있는 렌트를 알아보던 중, 역시나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베를린의 렌트값에 혀가 끌끌 차인다. 2배도 아닌, 3배 4배가 되는 값을 렌트로 내며 살기에는 프랑스 마르세유에 사둔 우리 집, 그것도 엘리베이터에 꽤나 새 아파트가 떡하니 있었다.


낡디 낡은 부엌에 그나마 구색을 갖춘 나만의 한 켠.
아기가 들어오고 이제는 너무 좁은 것 같은 베를린 집.
페인트칠도 직접새로하고, 나의 정성이 200프로 들어가 더 특별한 마르세유 아파트.
아침마다 발코니로 들어오는 햇살에 지금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 안되는 베를린과는 전혀 다른 마르세유 아침 풍경.
역시 나의 정성 200프로 들어간 마르세유 아파트 세컨룸.
햇빛은 옵션이 아니라 그냥 원래 있는 그 곳의 우리 아파트.


베를린은 나나 내 남편,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도시다. 유유히 떠나기에는 사실 그보다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10년 전의 나는 가슴이 뛰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재고 따지고 생각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항상 아직도 나를 찾아오는 어린 학생들에게 모든 길은 항상 열려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막상 나 자신이 다른 길을 갈까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나는 것을 보면 30대 후반의 나는 확실히 쫄보가 됐나 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에 대한 생각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하며 살아가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하겠지만. 확실히 이왕이면 조금 덜 고생하고, 조금 더 쉬운 길이 있다면 찾아가고 싶은 것이 지난 10년 간의 유럽을 살아내 온 이민자로서의 바람이라면 바람이다.


아무튼 이렇게 생각이 많아질 때면 요즘은 아기의 얼굴을 본다. 책임감도 생기지만, 나와 그의 인생은 이제 전혀 다른 우선순위로 진행되고 있다. 까르르 웃는 아기 웃음에 -뭣이 중헌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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