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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새로운 시작.

프랑스에서 다시 시작되는 우리 가족 이야기.

by Sun

살면서 문득 갑자기 모든 압박의 무게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그런 날이 있다. 번아웃이 찾아온 지는 꽤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번아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한 것은 한 달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외국에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육아를 하면서 또 다른 문화차이로 인해 남편과 여러 번 갈등을 겪게 됨 게 동시에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갈등. 외국에서 다른 외국으로 이사까지. 짧게 써놓아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 짐작이 될 테지만, 이 큼직하고 굵직굵직한 일들 사이사이에 성가시고 작은 일들이 오히려 나를 주야장천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사실상 남은 휴가를 몰아 썼기에 나는 휴가를 보내며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꿈꿔봤지만 그렇지 못했던 지난 한 달 반.



짐 풀고 새집정리


이사를 해서 짐을 대충 푸는 것은 2주면 되었지만, 집을 정리하고 목적에 맞춘 집의 구실을 하도록 만드는 데만 한 달이 소요된 것 같다. 남편이 이제 집 정리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직 내 눈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수납공간이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려고 인스타그램도 뒤져보고, 블로그도 뒤져보고 하지만 볼 수록 머리만 아프다.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줄자로 옷장 안을 재보고 딱 맞는 수납함을 사고, 용도별로 정리하고. 그렇게 정리만 하다가 어느새 9월 중순이 되어버렸다.


원래가 베케이션하우스로 시작되었던 프랑스의 마르세유집은 정말 필요한 것만 구비가 되어있었고, 여백의 미라며 물건들이 많이 없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베를린 집의 살림들이 들어오면서 커피머신만 두 개가 되었다. 갈 곳 잃은 전자제품들은 어떻게 나름 부엌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이젠 둘 다 일도 리모트로 해야 하니 책상도 다시 하나에서 두 개. 아이방으로 만들어주면 되겠다 생각했던 게스트룸은 그대로 게스트룸으로 남아있다. 딱히 그곳에서 잠도 혼자 못 자고, 하루의 90%를 거실에서 보내는 아이를 생각할 때 지금으로서는 워킹룸 겸 게스트룸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다고 판단되었다.



프랑스어


이제 어느 정도 숨을 돌리려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남은 시간은 2주. 오자마자 인텐시브 코스를 듣고 일 시작 전에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고 일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했지만, 8월 말에나 시작된 아이의 어린이집, 그리고 적응기간, 덧붙여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하니 프랑스어 공부할 시간은 딱히 내기가 어려웠다. 어학원에 가서 테스트도 봤지만 내게 맞는 레벨반은 시간이 애매했다. 아 이럴 땐 정말 혼자였던 스페인 유학시절이 차라리 나았었나 생각도 해본다. 애엄마가 삼십 대 중반에 또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잡고 있으니 마음은 급하고, 머리는 안 따라주고.


사실 아기를 낳기 전에 인텐시브로 3개월 정도는 독학을 했던지라 기본기는 다져져 있는지 요새 꽤나 남편이나 남편식구들, 친구들이 -뭐야, 너 프랑스어 언제 이렇게 했어?-라고는 말해준다. 레벨테스트 볼 때도, B1, B1+ 언저리는 나오는 걸 보면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스페인어와 영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B1과 B2의 갭은 너무 높은 산인걸 알기에. 것도 마음 놓고 공부할 처지도 안되기에 한숨만 푹푹 나온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애 엄마들 자유자재로 대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알아듣기만 하고 하고 싶은 말은 요점만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니 답답할 뿐이다. 아, 아니 차라리 말을 많이 안 하고 안 섞는 것이 나은 걸까. 싶기도 하지만.



끝없는 서류, 행정절차.


일을 시작하고 일에도 집중해도 모자랄 다음 달 10월. 이민청에서 신체검사와 프랑스어 테스트, 그리고 시민계약서 같은 것을 사인하러 오라고 통보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안내문에는 24시간의 시민교육이 하루에 6시간씩 네 번 있을 계획이라고. 그것도 모두 프랑스어로 말이다. 이런 단계는 보통 독일에서는 장기거주증이 나오기 전에 이뤄지는데, 이 나라 참 얼마나 대단한 나라라고. 13년을 넘게 프랑스인과 옆나라에서 살았는데, 프랑스에서 살지 않았던 이유로 1년짜리 비자를 줄 때부터 헛웃음이 나왔지만. 고작 1년짜리 비자 주면서 나중에 10년짜리 비자 갱신할 때 필요하니까 반드시 받으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Formation civique. 말 그대로 시민교육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로운 나라에 왔으니 다시 파야하는 새 통장, 새 핸드폰 번호, 국민건강보험 Social Security 가입. 운전면허도 바꿔야지. 아, 그런데 이 나라 메디컬 응급번호가 15라고? 이런 걸 가르치려나 보다 그 잘난 시민교육이란 데선.



새로운 일. 슬슬 밀려오는 압박.


어차피 해왔던 일을 하겠지만, 지난 2년간 독일회사에 있다가 다시 으쌰으쌰 미국회사 냄새 물씬 나는 회사로 가려니 지난 과거가 떠올라 벌써부터 숨이 차다. 오로지 능력으로만 인정받는 세계. 이런 회사일수록 사람들은 참 간지 나고 상냥하며 일할 맛 나지만, 그만큼 잘 해내고 살아남아야 하기에 밀려오는 압박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나 아직 번아웃이 채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새 일 시작이 2주도 안 남았다니. 회사에서 랩탑을 보내준다며 메일을 보내는데, 참 기분 좋은 메일을 받았다.

이 좋은 기분이 오래가길 바란다. 모든 이들이 리모트로 일해 오피스가 없어서 너무 좋은 이번 회사. 언제 무슨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2살도 안된 애 엄마에게 외국에서 가족 도움 1도 없는 상태에 오피스에 나와라 마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가 있다. 그동안 받았던 "오피스로 일주일에 2번 이상 출근"에 대한 압박 -차라리 하이브리드라고 부르질 말아라-며 극혐 하기 시작했는데, 이 회사는 다행히 100% 리모트다. 그리고 너무 운이 좋게 처음부터 파리에서 설립된 회사. 프랑스인 남편이 말했다. "나도 못 받아본 CDI (프랑스 정규직 계약서)를 네가 받다니, "


그래 나한테 잘해라 남편. 니 나라에서 내가 널 먹여 살릴 수도 있다고.

그런데 참. 코로나 이후로 워낙에 너도나도 리모트잡하겠다고 하니 이런 일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요즘세상. 가뜩이나 마르세유는 일자리도 없는데 이 회사 혹시라도 잘리거나, 홧김에 관두면 나 진짜 뭐해먹고살지- 이 생각 들 것 같아 무섭긴 하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 와중에 잔챙이 문제들.


이런 일들만 처리하면 다 되었나 싶은데, 인생이란 것이 살다 보면 갑자기 빌렸던 렌터카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오버차지를 해서 다시 항의를 해 돈을 받아내야 되는 일이 생기고. 잘 지내던 아이가 갑자기 밤새 4일 내내 토를 하고 고열에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뒤이어 남편님도 함께 끙끙 드러눕길 일주일.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독일과의 인연이었는데, 독일보험사에서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들먹거려 괜히 바로잡을 일을 만들게 하질 않나. 이미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 우리의 삶에 이런 잔챙이 일들이 생기면 제일 처음은 화부터 난다.


"내가 왜 이딴 일까지 처리해야 하지, "


그러는 와중에 이런저런 걱정이 몰아치던 어젯밤,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안 좋은 소식까지 들어 기분이 착잡하다. 이러나저러나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항상 있고, 애 엄마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그리고 나의 역할. 중심 잡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요새 잠을 계속 설치는 아이 덕분에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을 깼다.



그리고 바다, 햇빛 나의 아가.


이 모든 일을 겪는 와중에도 다행히 휴가랬던가. 그 와중에 낮잠 잘 여유는 있었다. 1시간 동안 아이와 침대에서 포근하게 곯아떨어져 자고 일어났다. 역시 마르세유집은 햇빛이 쨍쨍하니 거실 안까지 들어와 집안이 후덥지근했다. 에어컨을 켜고 아이스 라테를 만들어 먹었다. 레아도 낮잠 자고 기분이 좋은지 노래 들으면서 덩실덩실. 남편이 차 사기 전까지 차를 렌트했으니 자기 일끝 나면 바닷가에 가자고 했다. 애 수영복에, 수건에 간식에 이것저것 챙길 것이 너무 많아 귀찮아서 싫다고 했다가 아니다, 가자-했다. 그렇게 왔던 9월의 마르세유 바다는 관광객들이 다 빠져 고요했다. 지고 있는 태양에 반짝이는 윤슬이 너무너무 예뻤다. 바닷물은 조금 차갑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들어갈만했다. 바다를 바바라고 하며 물에 들어가 물장구치며 깔깔대며 안 나오겠다는 아이 모습을 보니 모든 만사 걱정이 사라졌다.


그래, 인생 뭐 있나.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지.


바다에 있는 도시에 살게 된 만큼, 바다가 주는 기쁨과 행복을 조금 더 알차게 누려보자고 다짐했다. 오늘같이 바다보고 멍 때리며 잔생각들을 흘려보내는 소소한 행동들을 말이다.


삼십대 중반의 새로운 시작. 머리아프지만 해볼만하길 바란다. 대신 내년만큼은 잔잔하고 평탄하고 심지어 지루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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