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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라 May 11. 2022

마티스 그림으로 글쓰기4

춤(댄스)

마티스의 댄스를 보면 20년 전의 여름이 떠오른다. 갓 대학을 졸업한 때라 가진 것 없이 세상 앞에 섰어도 기대만으로 가슴이 부풀던 때였다. 그 즈음 신학자 현경의 책들을 읽었는데 책 속의 문장 한 줄 한 줄을 경전처럼 새기며 힘을 얻었다. <미래에서 온 편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 같은 책들은 페미니즘과 영성을 향한 신명나는 초대장과 같았다.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주최하는 지리산 여신 축제에 현경이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참가 신청을 했다. 내 마음에 새긴 글들을 쓴 사람과의 만남이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회였다. 처음보는 여성들과 지리산을 올라 선녀탕 계곡에 이르렀다. 정해진 프로그램이었는지 즉흥적인 제안이었는지 갑자기 모두 함께 여신처럼 옷을 벗고 계곡에 들어가자고 했다. 현경을 만나고 싶었을 뿐 알몸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의 내가 조금은 망설였는지 아니면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는지 분명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보다는 훨씬 내 몸이 스스로에게 편안했던 때였으므로 훌훌 옷을 벗어놓고 선녀탕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여성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은 대중탕이나 수영장에서 흔하게 경험했지만 야외에 펼쳐진 여성들의 알몸이 주는 활력과 동질감은 느낌이 색달랐다. 서로에게 낯선 우리들은 물에 몸을 반쯤 담그기도 하고 바위 위에 올라가 볕을 쪼이기도 했다. 현경이 알려준 챈트를 따라 읊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몸에 닿는 찬 공기와 물의 느낌, 볕의 느낌을 되살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하지만 마티스의 댄스를 볼 때면 항상 그 때의 풍경이 되살아난다. 넘치는 자연 속 내 몸과 부끄러움 없던 여자들의 몸 그리고 영혼으로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만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지금은 영성과는 멀어진 채 20년 묵은 재야의 페미니스트가 되어 젊은이들을 응원할 뿐이지만 세상을 긍정하던 여성은 어디 멀리 가지 않고 그대로 숨 쉬며 함께 지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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