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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라 May 23. 2022

내가 싫어하는 상황

705호 활동 기록3

나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 그래서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게 싫다. 나는 의견이 선명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에는 짐작이나 배려가 필요치 않아서일까. 만약 누군가 원하는 바가 따로 있는데 그저 상황에 맞추고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나는 그를 도우려 할 것이다. 오해에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만약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딸기에 맞춰준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그가 딸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딸기를 준비하겠지. 그렇게 영영 바나나를 모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싫다.

반면 정말로 좋아하는 게 따로 있는데 스스로가 모르고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할까. 그런 경우에는 머리를 맞대고 미로를 빠져나가듯 함께 답을 찾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맞춰주는 게 그 사람의 행복인 경우에는 어떡해야 할까? 나는 그런 경우를 잘 알고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맞춰주면서 상대가 편안해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두 배로 만족을 느끼는 타입이다.


상대에게 맞춘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나는 내가 그런 행위를 즐긴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진 두 사람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둘 중 한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답이 아니라 나만의 욕구를 이야기하고 셋이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관계라면 과연 그 관계를 두 사람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한 사람이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황은 흘러갈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서로 다른 두 개성이 만나는 화학 반응이라면, 맞춰준다는 것은 한 사람의 몫을 포기하는 일이다. 상대는 새로운 관점을 만나는 기쁨, 타인과 교류하고 타협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셈이 된다.


만약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조금씩 나에 대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알아야 할 것이다. 상대방이 오해에 애를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럴 때 의견이 선명하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친절일 수 있다. 짐작과 배려, 오해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해주는 친절이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뭘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상대에게도 정확히 알려주기. 만족스러운 관계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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