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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Feb 11. 2024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자주 찾아온다. 행복하게 살기도 부족한 시간에 굳이 미워하고 싫어하며 좋지 않은 감정을 속에 담는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생겨나는 미운 감정은 끊이질 않는다.





연휴 첫날부터 일하러 나가는 상황이 싫었다. 휴일인데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자신과 몸을 담고 있는 조직도 싫었다. 조금 늦어서 서둘러 운전하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차선을 반쯤 먹고 어정쩡하게 정차한 버스와 버스 기사님도 미웠다. 추월하려는 찰나 뒤에서 큰 소리로 경적을 울리며 나를 놀라게 하고 추월한 뒤차 운전자도 싫었다.



주어진 일이 아니지만 함께하려는 의도를 퇴색시키는 분위기도 싫었다. 잘 끝났지만 특별한 성과가 없는 게 짜증 났다. 마무리하고 돌아오려는데, 넓은 주차 공간을 두고 내 차 옆에 바싹 주차한 차량과 운전자가 미웠다. 명절이라고 선물이 나왔는데, 고기나 스팸이 아닌 김이 나온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부피가 사과 상자만큼 커서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 보니 선물을 선정한 담당자까지 미웠다.





화나고 짜증 나며 싫은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내 언행은 같았다. 혹시 다르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같은 감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대수롭지 않고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명상하거나 좋은 책을 읽으면 잠시 나아지는데, 지속성이 길진 않았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명절이라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겨난 나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속에서 뭉그러지며 찌들어서 썩은 냄새가 날게 뻔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표출하다가는 그동안 지켜온 좋은 사람 코스프레가 한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몰려든 미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집에 도착했는데, 고생하는 아빠를 응원한다며 두 딸이 댄스파티를 다. 물론 자기 흥에 넘쳐 즐겁게 노는 거지만, 딸 춤사위를 보면서 일이 싫고 밉던 감정은 사그라들었고 행복한 나루토만 남았다.



매번 신기한 기운을 보여주는 큰딸은 생뚱맞게 아빠가 운전을 가장 잘한다고 칭찬했다. 당황스러웠지만 큰딸 칭찬에 안전하게 운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딸은 평소 운전할 때 화  상황에서 큰소리치지 않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분명, 우연이겠지만 나쁜 감정으로 둘러싸인 하루를 다 녹여준 한마디였다.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끊임없이 생겨나는 나쁜 감정을 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건넨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끔하게 씻어내는 경험을 다. 사랑하는 사람과 돈과 시간을 나누며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듯한 한마디와 응원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딸에게 용돈이나 선물은 그만 주고 좋은 말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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