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이겨내기
<51일 차: 새로운 요가를 만나다!>
와! 몇 개월 만에 또 처음 만나는 수업이다. 이름하야 ‘하 타 요 가’.
하타요가가 무엇일까? 궁금하여 포털 검색을 해보았다. 하타요가에서 하(HA)는 해, 타(TA)는 달을 의미하며 해와 달, 양과 음의 조화를 추구하는 수련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요가의 근원이며 동작의 유지 및 강제성을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려 심신이 서로 조화가 되는 상태를 가져다주는 요가라고 한다.
하타요가를 ‘힐링요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갔는데 차분하면서도 아쉬탕가나 빈야사 보다 좀 더 과감하고, 좀 더 나아가는 느낌의 동작들이 많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허나 이런 면들이 의외로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요가원 가기 전에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불안감이 또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고 당장 그 기분이 하루종일 갈 것만 같은 우울감이 있었는데 하타요가 덕분에 상당 부분 떨쳐낼 수 있었다. 몸으로 버티고 평소 하지 않던 동작들을 추가하여 해봄으로써 정신적으로 어떤 경지 혹은 명상에 다다르는 게 함이 목표인 것 같은데,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하기엔 멀었겠지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맛보고 온 것 같다.
‘이 동작을 버티면 나는 정신적으로도 강해지는 거다. 버텨서 내가 강하단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자.’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먹는 굳은 마음에 단단한 몸까지 더해준다면, 그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나를 조금씩 더 강하게 만들고 스스로에게 자신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자주 접해보고 싶다. 아직까지는 아쉬탕가가 제일 좋지만 하타요가가 익숙해지고 그 매력을 알아버린다면 내 마음속 1순위 요가가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어느 하나 내게 우열을 가리기 힘이 든다. 게다가 나는 변덕이 있는 편이라 말을 종종 번복할 거다. 사실 어느 요가가 제일 좋다! 하는 게 이젠 큰 의미가 없긴 하다. 무엇이든 한다는 것 그 자체로도 너무 좋은 일이란 걸 이젠 잘 알고 있어서.
오늘도 정말 잘 다녀왔고 덕분에 정신도 몸도 맑아졌다. 이 기운 그대로 힘내서 하루를 또 살아야지!
<52일 차: 이겨내!>
‘아. 너무 피곤하다.’
비 오는 아침이다. 3월의 봄 비. 아직은 겨울인지 봄인지 아리송한 날씨지만 이미 서늘하고 날카로운 공기는 온 데 간데없다. 어둑한 아침을 걷어 올리고 굳은 마음가짐으로 “영차”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겨우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아. 너무 힘든데…”
속으로 내심 ‘가지 말까?’라는 말이 뒤이어 나왔으나 ‘아니다. 또 정작 가보면 달라. 다를 수 있어.’ 라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못 움직일 정도로 피곤한 날에도 요가원에 가면 의외로 잘 버티고 끝까지 잘 해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컨디션에 별 의심이 없는 날인데 정작 요가 시엔 어지럽고 힘이 딸려 금세 지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막상 닥쳐서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거다. 부딪혀보고 그때그때 자신의 컨디션을 봐가며 완급 조절을 하는 수밖에.
어기적 어기적 되는대로 아침을 해결하고 모닝커피를 내려 마시니 몸이 좀 깨는 느낌이다. 세수를 하고 눈곱을 떼고 로션만 챱챱 바른 뒤 요가원으로 향했다.
‘어라. 왜 사람이 이리 없지?’
이상했다. 일주일 중 가장 핫한 원장님의 빈야사 요가 시간인데 나 포함 세명 밖에 없다. 시계를 봤다.
‘아뿔싸. 평소보다 10분이나 일찍 왔네.’
잠이 덜 깨긴 했나 보다. 부랴부랴 뛰어왔는데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던 것. 대충 몸을 풀고 나니 빈야사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가벼운 스트레칭이다. 앉아서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몸을 열어낸다. 쭉쭉. 부드럽게. 스트레칭이 끝나고 나면 빈야사가 시작이 된다. 수리야나마스카라 A로 시작하는 오늘의 빈야사. 좋다. 왜인지 잘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게 있다. 많은 회원님들이 한 공간에 집약되어 있다 보니 너무나들 가까이 붙어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내 동작에 집중하기보단 다른 회원님들의 동작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 스스로의 페이스를 놓칠까 봐 신경도 쓰이고, 나도 모르게 잘하는 회원님들을 보고 따라 하다 눈이라도 마주쳐 본의 아니게 부담을 줄까 봐 그것도 살짝 걱정(?)이다.
되도록이면 원장님의 동작을 따라 하려 애썼고 또 되도록이면 스스로의 몸에 깊숙이 들어가 정신과 몸이 따로 놀지 않도록 집중하는 데에 애썼다. 그런데 사실, 여러모로 힘든 동작에 접어드는 후반부가 되면 이런 다짐 따윈 의미가 없게 된다. 너무 힘들어서 자연스레 내 몸 밖에 생각이 안 나게 된다.
내게 빈야사 시간 중에 가장 힘든 파트는 끝없이 하이 런지와 전사자세를 반복하여 하체를 불태우는 구간이다. 이 구간이 되면 나만 힘든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미 앞의 분들은 허벅지가 너무 아픈지 다리를 펴고 잠깐씩 쉬어 가는 분들도 계신다. 아. 나도 모르게 그런 분들을 보면 페이스가 흔들린다. 쉬고 싶지만 그래도 애써 내 동작에 집중하며 더 쥐어짜고 더 힘을 내어본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쳐본다.
‘힘내요! 힘내! 끝까지 갑시다! 으아아아아아’
막바지 사바아사나에 다다랐다. 이 악물고 포기하는 동작 없이 결국 오늘도 다 해냈다. 물론 아직도 균형 면에선 엉망진창인 동작들이 많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흔들리면 다시 다잡고 구령이 끝나기 전까진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해내려 노력했다.
‘이겨내. 이겨내. 할 수 있다. 못해도 괜찮으니 일단 이겨내.’
뭘 이겨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겨내라는 속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나약함으로부터 편안함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으로부터 습관으로부터 거칠고 주눅 든 마음으로부터 이겨내라는 주문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이겨내고 이겨내고 이겨내는 작은 성취의 시간들이 쌓이면 분명 더 단단해지리라고,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담담하고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그래서 또 요가를 한다. 이겨냄 뒤의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 결 가벼워졌다.
거봐라. 역시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다. 가보지 않으면 이겨내는 경험도 주저앉는 경험도 할 수 없다. 단단해지기 위해선 일단 마음속 의심을 버리고 덤덤히 부딪혀보는 수밖에.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뿌듯했던 빈야사 요가시간이었다.
<53일 차: 가볍고 다정하게, 요가>
아쉬탕가 시간이다. 흠, 요가를 시작하면서 너무 진지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약간 진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너무 진지하고 너무 진심이면 인간관계처럼 언젠가 작은 것에도 틀어질까 봐 미리 겁이 나는 것 같다. '쿨하게 요가를 대하자!' 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고 다정하게 요가를 대하자!’ 는 마음가짐은 늘 가지고 있다만 아쉬탕가에 들어가면 왜 이렇게 진지해지는지 모르겠다.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기분도 들고 뭔가 자꾸 도전하는 기분이 드니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오래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진지하지 말자면서 어느 순간 요가 유튜브를 검색하며 동작을 조금씩 눈에 더 익히고 있고, 또 요기니 분들의 SNS를 팔로우하며 요가하면서 느낀 이런저런 말들을 부러움 반, 공감 반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의 목표는 100일의 요가를 끝까지 해내는 것과 내 호흡에 맞는 평생 운동으로 가져가며 노인이 되어서까지 함께 할 친구 같은 운동이 되는 정도였는데 요즘 좀 마음가짐이 과한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나 하면 제대로,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하려는 완벽주의 성향이 더해져서 그런 것도 같고. 음.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런 것 같다. 말로는 못하는 날도 있는 거다면서 지난주의 나보다 더 잘하려고, 그래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내심 다그치고 있다.
요가의 본질이 이런 건 아니겠지. 자연스레 동작을 통해 어떤 명상에 가닿는 게 아쉬탕가의 목표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스스로를 약간 엄하게 다그치며 하는 건 올바른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내 나이즈음 되면 작고 큰 실패를 경험하며 얻는 교훈이 있다. '응당 그래야만 하는 거다.'라는 등의 어떤 삶에 대한 당위성을 두는 순간 약간은 인생이 고달파지더라. 열심히 하되 잘 되면 좋고 안되면 하는 수 없고 하다 보면 또 잘 되는 거고 안될 때도 있는 거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마음에 부담 없이 힘을 빼고 요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만의 에너지와 기운을 호흡에 옮겨 동작을 이어나가는 것. 힘으로 더 누르고 비틀고 버티는 게 아닌 동작에 나의 에너지를 싣는다는 느낌으로 이어나가는 것. 그렇게 되면 동작의 완성에 연연하기보단, 오늘 나의 에너지를 느끼고 그날의 에너지를 충분히 실었냐에 중점을 두게 되지 않을까.
내가 써놓고도 알 듯 말 듯 하지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거다. 아무래도 힘이 들어가는 것보단 이런 방법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생각보다 선생님을 따라 차근차근 동작을 익히고 외우는 게 먼저다! 잘 따라 하고 잘 배워야지! 삐약!
<54일 차: 학교에 가듯이 요가를 해요>
하타요가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동작들을 할까. 이 동작들을 통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새로운 경험은 설렘도 주지만 때때로 낙오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연연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될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이젠 동작이 잘 되지 않아도 주눅 들거나 스트레스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지난 주말 내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주말에 저녁마다 20여분씩 머리서기 연습을 했다. 아쉬탕가시간에 어느 정도 다른 동작들이 되어가니 이젠 ‘응당’ 머리서기 동작 또한 되어야 할 때라는 나의 고질병이 돋아버렸다. 그놈의 ‘당연히’, ‘응당’, ‘이 정도면’ 같은 멋대로의 당위성 같은 것들이 도진 거다.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차근차근하는데 자꾸만 힘없이 뒤로 고꾸라진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다.
‘이 즈음에서 이렇게 복근에 힘을 주고 하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스르르 미끄러지지?’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서 복근에 힘을 주는 거야?’
‘내 정수리가 유니크한 거야? 왜 자꾸 구르지?’
하다 하다 안되어 유튜브에 초보자를 위한 머리서기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이분은 요가 한 달 만에 머리서기를 성공했단다. 요령이 없어서 그렇지 요령과 감을 알면 근력이 없어도 유연함이 없어도 할 수 있단다.
하지만 나는 아닌가 보다. 그분의 영상대로 시도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똑같다.
'이 정도 시도하면 다리는 90도 정도 굽힌 채로라도 역 ㄱ자로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나 진짜 가망이 없는 거야?'
조바심을 내다 이내 또 주눅이 든다.
"여태 그래도 꽤 근력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근육들이었어."
주눅 들면서도 조바심이 나니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한다. 그러다 결국 아까부터 곁눈으로 지켜보던 남편이 입을 뗐다.
“그러다 다쳐. 그냥 그거 안 하면 안 돼?”
“응? 왜?! 이게 요가의 왕 이래! 하고 싶어. 해보고 싶어!”
“다칠까 봐 걱정돼서 그러지. 요가의 왕이라면 그게 요가 동작 중에서도 어려운 동작이겠네. 왕이면 쉽게 되지는 않겠지.”
“아… 하긴. 그래도 이젠 해보고 싶어. 욕심나.”
“차근차근하다 보면 언젠간 될 거야. 오늘은 그만하는 게 좋겠어.”
입꼬리가 축 늘어진 채로 누워있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시도! 하지만 이미 앞에 힘을 다 써버린 상태라 엉덩이로 구르기도 전에 몸에 힘이 빠진다.
“으아잇!!!!!!!”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소리를 내어버렸다.
“그만해 그만해.”
“허억 힘들다. 조바심 내다가 다치겠지? “
“그렇지.”
바닥에 널브러져 쉬다가 가만히 요가를 배운 개월수를 세어보았다.
“하나…둘…셋, 넷, 다섯… 나 이제 요가 배운 지 꽉 찬 5개월이야.”
“벌써 그렇게 됐어? 꽤 했네!”
“그러게!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앞으로 요가를 30년은 더 하고 싶거든.”
“오래 하면 좋지.”
“응… 그러면 머리서기 따위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아.”
“계속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응응. 맞아 맞아.”
오래 할 거라 생각하니 당장의 머리서기 따위 집착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되는대로 하자. 되는대로. 영원히 못하면 어때. 다른 동작들은 정성껏 하면 되지. 무엇보다도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내 페이스대로, 내 몸에 맞게 가는 게 본질이야.’
다시 또 당위성을 본질론으로 누르며 한바탕 머리서기의 소동을 끝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오늘 하타 요가를 갔다. 하타 요가 중엔 유독 꼬거나 비틀거나 뒤집는 동작들이 많은데 정적인 것 같지만 꽤나 하드코어다. 당연히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전에 같으면 또 ‘이 정도면 해야 되는 것 아냐? 해내 보이고 말 거야.’ 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이거 뭐… 고장 난 오징어가 따로 없잖아?ㅋㅋ'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따라 왼쪽 오른쪽도 헷갈린다. 주눅 들기보다 웃어 보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불태워 다 해버리겠단 마음보단 오래도록 다정하게 함께 가는 마음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요가원을 나오는데 같은 방향의 회원님과 같이 가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 전에도 한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다. 꽤 오래 다니셨는데 확실히 머리서기도 잘하시고 늘 내가(티는 안내도) 부러운 눈으로 보게 되는 분이다.
"제가 한 번씩 동작하시는 거 보게 되거든요.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너무 잘하셔요."
"어유. 아니어요. 제가 40대 후반에 요가를 시작했는데 이제 10년 차거든요. 남들은 이 정도 연차면 요가 강사 자격증도 따는걸요 뭐. 저는 잘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잘하셔요. 저야 말로 아직 한참 멀었죠. 저도 그렇게 오래도록 해보고 싶어요.”
"오래 하려면 그냥 해요. 그냥. 뭐 이거 못한다고 혼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점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난 학교에 가듯이 와요." 하시고는 크게 웃어 보이 신다. 화통한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같이 큰 소리로 웃게 되었다.
"푸하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오려고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그게 좋죠. 그럼 내일 또 만나요!"
"네! 들어가세요~!"
후아. 10년의 마음가짐이란 이런 거구나. 뭔가 지난 주말 내가 느낀 바와 같아 뿌듯했다.
"학교에 가듯이 와요."
왠지 모르게 가슴에 다정하게 박혔다.
<55일 차: 나의 다리에게>
안녕 다리야? 반갑다. 늘 나와 함께 하는 너인데 새삼스레 편지 비슷한 걸 쓰려니 어색하구나. 아니! 사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 나 너에게 불만이 있다. 너는 왜 요가 55일 차에 뜬금없이 또 탈탈 흔들리는 거냐? 왜 한 번도 운동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신체기관처럼 하찮고 볼품없이 흔들거리는 거냐고.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한 거야? 아니면 내가 많이 먹지 않아서야? 너희를 위해 하루 세끼 꽉꽉 채워 먹고, 중간에 시간마다 고열량의 간식을 섭취하고, 머리를 쓰는 활동을 멈추고 멍 때리고 앉아 있는다면 살이든 근육이든 붙을 수 있는 거냐? 붙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렇게 해볼게. 일정한 시간마다 무언가를 챙겨야 하는 게 내겐 고역과도 같은 일이지만 튼튼하게 살이 붙어간다면야 그렇게 한 번 해보겠어. 대신. 너는. 그 이후로 절대로 빠져선 안된다! 내가 지켜볼 거야… 태어나서 마른 내 몸을 스스로가 싫어했던 적은 잘 없어. 아니다, 간혹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아 멸치 같아 보일 땐 싫긴 싫었는데 웬만해선 잘 없어. 그런데 계란 한 판을 꽉 채우고 그 위로도 몇 알씩 조심스레 얹고 얹는 나이가 되어가니까 마른 몸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와. 확실히 몸에 살이 적절히 있는 분들보다 허약하고 체력적으로 금방 후달리는게 느껴져. 그러기만 하면 다행이게? 체력이 달리고 잔병치레도 잦으니 늘 약간은 병약한 이미지야. 가녀린 이미지가 아닌 병약, 허약, 종합병원의 대명사가 된 기분이라고. 스스로도 몸이 힘들면 얕게 얕게 짜증이 올라오며 예민해지니 성격까지 나빠지는 기분이야. 사실 성격은 원래 썩 좋진 않지만 더 나빠서 좋을 건 없잖아? 아무튼 그리하야 이런 이유를 포함해서 시작한 게 요가인데, 다리 네가 이렇게 나오니 조금 힘이 빠진다. 하지만 나는 한계를 넘어서야겠지.
빌빌대는 와중에도 오늘 빈야사 시간에 끝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다. 내일도 또 움직이러 가자! 우리. 좀 튼튼해져 보자! 할 수 있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