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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Nov 29. 2024

나의 반려 요가

갈 길이 멀지만 조급하지 않은


<66일차> 내향인의 사정

 내가 다니는 동네 요가원엔 요가뿐만 아니라 줌바, 필라테스도 함께 수업구성이 되어있다. 마이솔이나 기타 어려운 수련이 포함된 수업을 제외하고는 원하는 타임에 아무 때나 가도 된다. 자신에게 맞는 수업을 찾아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애초에 요가가 배우고 싶어 등록을 했기에 아쉬탕가나 빈야사 수업 위주로 골라 가고 있고 오전시간과 저녁시간을 비교했을 때 오전이 좀 더 체력적인 여유가 있어 오전으로 가고 있다. 저녁시간에도 몇 번 가보았는데 초반부터 체력적으로 많이 무리가 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낮시간동안 많은 에너지를 쓰나 보다. 주로 오전 첫 타임이 내 하루 스케줄에 부담이 없기에 이 시간대로 가고 있고 다행히도, 오전 첫 타임 대부분이 요가와 관련된 수업이다. 이렇게 첫 수업 한 달여 동안 이 시간, 저 시간을 다녀보며 나에게 적합한 시간대를 정했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시간에 의심 없이 다니고 있다. 나에게 맞는 루틴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요가원에 다니는 모든 회원님들이 나와 같진 않은가 보다. 아니면 내가 별종인 걸까? 요가를 다닌 지 한 달 여가 되는 시점이었다.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난 뒤 요가 매트를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강사님으로부터 '다음 수업. 줌바는 안 들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말의 뉘앙스에서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연달아 수업을 듣는 분위기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고개를 들어 요가원 내부를 돌아보니 나와 몇몇 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남아서 다음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저는 아직 체력이 안되어서 연달아 듣기는 무리예요...”

 무리다. 그땐 여전히 체력도 부족했고 요가도 벌벌대며 겨우 했던지라 나는 다음 수업까지 들으면 하루치 체력을 모조리 다 쓰고 오는 셈이 된다. 아무튼 이것이 내가 들었던 “줌바는 안 하세요?”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원장님께서 에둘러하셨다(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긴 하다). 평소처럼 요가원에 들어서려고 주섬주섬 신발을 벗어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혹시 이번에 바뀐 시간표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오전 첫 수업 빼고는 시간이 잘 안 나시죠?”

 “아… 네.”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이 시간대에 오는 루틴이 저와 맞아서요. 하지만 스케줄 조정을 조금씩 하면 되니까 바꿀 여유는 있어요.’라고 말하려니 너무 장황해서 그냥 저렇게만 얼버무리며 대답을 해 버렸다.

 “혹시 다음 시간표에 줌바가 오전 첫 타임에 오고 그다음에 아쉬탕가나 다른 요가를 넣는 건 괜찮으세요?”

 “아… 네, 상관없어요! 제가 융통성 있게 시간 조절해서 오면 되니까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시간표 편한 대로 짜셔요!"

 "그래요~^^ 저도 그냥 물어본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셔요!"


 요가 매트를 펴고 앉았는데, 가만. 이거 약간 서로 배려가 지나치게 묻은 대화들이 아닌가 싶어 괜히 멋쩍은 웃음이 났다. 질문의 이유가 어찌 되었건, ‘당신은 요가만 주로 듣는 사람이고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것 같아 보이는데, 혹시 줌바가 그 오전시간대를 차지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원장님은 그 많은 회원분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는구나. 난 바뀐 시간표는 무리되는 스케줄만 아니면 그때그때 따라갈 수 있는 정도니까 너무 나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면 요 근래 나 같은 회원분들이 좀 계신가? 이래나 저래나 원장님도 신경 쓸게 많으시겠다. 차라리 시간표가 고정이 되어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나 내 일이 아니니 깊게 생각은 못 미쳤다.


 나는 지금이 너무 좋다. 줌바가 싫은 게 아니다. 아예 내 관심 밖일 뿐... 예전에 직장 선배가 일을 때려치우고 줌바 강사로 직업을 바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처음 줌바라는 단어를 들어 잠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검색으로 알아본 줌바는 매우 활기차고 신나는 춤과도 같은 운동이었다. 적응만 잘하면 재밌어 보인다. 다만, 나 같은 mbti 극 I의 내향인들은 줌바처럼 활기찬 운동에 진입장벽이 높다. 파이팅 넘치게 외치며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어설픈 춤사위로 진땀을 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에너지가 털려나가는 기분이다. 심지어 나는 몸치다. 삐걱거리며 이상한 몸짓을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아찔하다. 물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진짜 시간이 안 난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요가인데 요가를 듣고 다음 수업 때 줌바까지 들으면 하루가 너무 빡빡하다. 해야 할 일과 벌여놓은 일은 산더미인데 이것들을 팽개치고 오전 시간 내내 운동을 할 순 없다… 또한 워낙 저질체력이라 하루의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오전 연달아 두 타임을 뛴다는 건 내겐 운동이 끝난 순간 오늘 하루를 마감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후를 살아갈 체력이 방전되었으므로 오늘 일정 모두 셔터 내립니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


 요가원에 다닌 지 6개월 정도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또 다른 강사님께서 여쭈어 보신다.

 “줌바 수업은 안 들으세요?”

 “아… 네 시간이 안되어서요...”

 “아… 시간이 안되셔서…”

 “네…”


 흐으아아. 이 정도 되니 결혼은 안 하세요? 둘째는 안 낳으세요? 와 동급의 질문이 될 것 같다… 저는 그냥 조용히 요가가 듣고 싶어요… 그냥 제가 듣고 싶은 거 들을게요… 제발 이 질문이 마지막이 되길 바라며… 흑흑.


 다행인 건 아무도 다른 수업들을 들으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아마 이렇게 다들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며 자유롭게 누리고 있으니 너도 좋은 거 같이 하자는 의미였을 거다. 이런 형식이 이곳의 문화이기도 하고. 그러나… 저는 그저 지금은 겨우 찾은 이 루틴이 좋답니다. 그냥 이런 인간도 있구나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다음 요가시간에 뵙겠습니다!


 나마스테……흑.








<67일차> 꼬물꼬물. 느리지만 나아가는 중!

 그간 너무 내적인 이야기에 치중했다. 요가 기록인데 움직임 자체에 관한 글은 쓰지 않은 것 같아 죄책감이 살짝 밀려왔다. 그래서 오늘은 요가시간에 느낀 몸의 변화와 움직임들에 대해 써볼까 한다.


 67번째의 요가원! 나는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을까? 일단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상당히 유연해졌단 거다. 수리야나마스카라에서 두 손을 뻗고 백밴딩을 할 때에 예전엔 뒤로 잘 넘어가지도 않았고 살짝 시도라도 하려 하면 몸이 부들부들 사정없이 떨려 자세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몸의 큰 동요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백밴딩 자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시에 뒤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다리를 쫙 펴면 허리가 굽어져 제대로 된 동작을 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샌가 배도 홀쭉하게 유지한 채로 등과 허리를 평평하게 만들어 나름의 반듯한 산모양을 잡으며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그 상태로 유지하면서 좀 더 무릎 위쪽 근육을 끌어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도무카스바나 아사나가 언뜻 보기엔 쉬운 동작 같지만 은근히 내겐 까다로운 동작이라 겉으로 보기엔 산 모양을 만든 채로 유지하고 있어 보여도 혼자 팔을 더 바닥 쪽으로 붙여본다던지, 무릎 위 근육을 끌어올린다던지, 발 뒤꿈치를 좀 더 바닥에 붙인다던지 등 이렇게 저렇게 꼬물꼬물 시도를 해보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한 번에 동작을 만들어 호흡만으로 유지하는 시기가 오리라 믿는다.


 또한 서서 하는 자세 중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웃디따 하스타 파당구스타사나를 할 때에 비교적 높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게 되었고 다리를 옆으로 넘겨 고개까지 돌린 채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조금씩 흔들거리지만 언제나 될까 했던 동작들 중 하나인데 나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잘 되어 뿌듯하다. 헤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전굴자세인 파스치모타나사나시에 다리를 곧게 편 채로 배가 허벅지에 조금씩 닿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거야말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영원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동작 중 하나인데 어느덧 완벽한 폴더는 아니지만 살짝 어정쩡한 폴더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역시 뿌듯하다. 턱도 정강이 쪽으로 비교적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무릎 뒷부분을 바닥에 꼭 붙이려 하면 다리가 살살 떨려오는 건 아직도 남아있다. 다리 근력이 정말 부족한 건지 아직 덜 유연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하다 보면 어느새 되어 있겠지. 이만해도 많이 유연해졌다!


 하. 갑자기 지난날 햄스트링으로 애먹어 여러 차례 고비가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야말로 내 햄스트링은 영원히 가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집에서 틈틈이 해준 스트레칭들 덕분에 요가가 눈에 띄게 수월해졌고 그 뒤로는 드라마틱한 발전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쌓인 근력들 덕분에 조금씩 안되던 동작들이 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뭣보다도 예전엔 원장님의 빈야사 시간이면 항상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이젠! 이젠 정말 많이 수월해졌다. 끝까지 힘 있게 내 페이스를 나름 유지하며 할 수 있게 된 거다. 아아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정말 되긴 되는구나. 하면 되는구나. 천천히 느리지만 꼬물꼬물 되어가는구나. 요즘 그 어떤 걸 해도 무언가 막힌 기분이 들고 성장이 멈춘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몸은 느리지만 차곡차곡 성장하고 있었다.


 이 맛에 요가를 하는 건가.







<68일차> 저는 사실 호흡이 제일 어렵습니다.

 요가 중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호흡’이 아닐까 싶다. 요가원에서도, 즐겨 보는 요가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도 늘 ‘호흡하세요’라는 말은 빠짐없이 나오니까.


 ‘동작은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호흡은 늘 유지하려 노력하세요.’라는 말. 요가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본격적인 요가에 들어가기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명상, 호흡으로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시작 시에 불어넣은 그 호흡 그대로 수업 끝까지 자신의 요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나의 호흡이 어떤 형식과 리듬으로 이루어지는지 인식하고 느끼는 거다. 그런데 강사님의 말에 귀 기울여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은근히 고역이 될 때가 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게 맞게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 되는 건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심리적인 걸까?


 오늘 같은 경우도 그렇다.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들이마신 호흡과 내쉬는 호흡을 비슷하게 유지하세요.’라고 하시는데 어디까지가 내가 들이마실 수 있는 호흡인지 잘 모르겠는 거다. 내쉬는 것도 어디까지 내가 내쉴 수 있는 호흡인지 잘 모르겠다. 


 나의 경우엔, 호흡을 들이마시는 게 내쉬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내 생각엔 폐활량이 적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회원님들의 속도에 맞추거나 선생님의 속도에 맞춰 들이마시면 금방 숨이 차 헉헉거리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한다. 호흡이 짧으면 짧은 대로 남들보다 같은 시간에 좀 더 자주, 많이 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럽고 편한 것 같아서 그냥 내 속도대로 하고는 있는데 이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가가 애초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채로 동작들을 하고 싶은데, 호흡부터 조급한 느낌이라 이 점은 고쳐보고 싶다. 


 그래도 짧은 호흡이지만 동작중엔 되도록이면 잊지 않고 계속하려 한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아쉬탕가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놓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 중이고, 그중 절반 이상은 나름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며 하고 있다. 들이마시고 내쉴 때 좀 더 구부리고, 좀 더 내려가고, 좀 더 유연해진다는 기분으로 호흡을 원하는 부위에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모르게 동작이 더 잘되는 것도 같고 가뿐한 기분도 든다.


 호흡이란 경직된 몸을 풀어주어 몸을 가볍게 향상해 주는 좋은 도구이자 살아있음을 의식적으로 깨닫게 하여 지금에 머물게 해주는 좋은 명상의 재료 같다. 아니면 명상 그 자체일까? 아직 초보인 내가 느끼는 요가에서의 ‘호흡’이란 이런 의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의 나는 호흡을 하고 싶어서 요가를 간다. 삶에 긴장도라든지 스트레스가 많으면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쉬는 법을 잊고 얕은 호흡을 하게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것들이 지속되니 두통, 치통, 소화불량 등 각종 스트레스나 긴장성 통증이 자주 따라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의식하여 호흡을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


 나도 모르게 몰아쉬던 숨을 요가원에 가서 충분히 호흡해 주고 어루만져 준다. 내게 맞는 리듬을 찾아 새로 순환시키고 돌아와 또 일상을 살아가는 거다. 평소에도 시간을 내어 명상이나 호흡을 의식적으로 해주면 좋겠지만 왜 이게 아직까진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여전히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의미겠지? 뭐. 그러면 또 어떠랴. 숨 쉬는 법을 잊을만할 때 요가원에 가면 되는 거다. 짧든 길든 나만의 호흡으로 몸을 깨워 여러 요가 동작들과 함께 그때그때의 명상에 다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우스꽝스럽고 조잡한 호흡이라도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좌절도 해보면서 꾸준히 다니다 보면, 언젠간 일상에서도 적당히 자신의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을 알게 될 거라 믿는다. 







<69일차> 나의 반려 요가

 오늘도 요가를 다녀왔습니다. 오늘 새벽은 너무 힘들었어요. 나의 반려묘께서 밤 새 울었기 때문입니다. 왜 울었을까요. 도대체 왜…!


 덕분에 저는 새벽동안 서너 번을 깨어 달래 주고 쓰다듬어주고 다시 잠들어야 했고요. 오늘따라 왜 또 알람은 일찍 맞춰둔 건지 새벽 여섯 시에 눈을 뜨고는 더 잘까 일어날까를 망설이다 더 이상의 숙면은 어렵겠다 싶어 벌떡 일어나 버렸습니다.


 너무 피곤합니다. 몸은 알아요. 저는 제 몸을 알고요. 잠을 잘 못 잤을 때 아침부터 느껴오는 내 몸에 대한 이질감을요. 뼈와 살갗이 살짝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덩달아 붕 뜬 정신은 허공을 휘저어요. 그런 정신으로는 일상의 일들을 처리할 수 없으니 억지로 붙잡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짜증이 올라오고 맙니다.


 평소보다 스트레스의 기본 게이지가 높아져 있어요. 이럴 땐 요가를 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이젠 이런 걸로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 가는 겁니다. 밥 먹고 설거지하듯, 집에 들어오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 듯. 그냥 가는 거예요. 잠을 못 자도 화가 나도 귀찮아도 그냥 갑니다. 힘들어도 슬퍼도 같이 하는 거예요. 그래요. 요가는 어느덧 제게 반려운동이 되어버렸네요. 아앗. 이제 겨우 69일 차에 섣부른 판단인가요? 그렇다면 희망사항 정도로 해두죠.


 사실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에요와 예요를 헷갈려해요. 요즘엔 이런 건 기본 상식이라며 넷 상의 친구들은 때때로 주위의 맞춤법 틀린 친구들을 한심해한다고 하더라고요. 네. 제가 그런 한심한 사람입니다. 자랑 아닙니다. 그저 관심밖의 일이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 탓이겠죠(생각해 보니 잘 잊어먹는 일회성 메모리 때문인지도). 그럴 수 있어요. 저도 때때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혼동하여 쓰는 사람을 보고는 속으로 답답해한 적이 많으니까요. 자기 이름의 한자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랬고요. 그러나 그때뿐이에요. 이제는 그런 게 대수롭잖은 나이가 되었죠. 자기 이름 세 글자 한자로 정갈히 잘 쓰고 청산유수에 맞춤법도 잘 맞춰 쓰는 멋쟁이가 어느 날은 내 통수를 치는 사기꾼이었다면, 세상 맞춤법 따위가 여전히 중요하냐고요. 사소로운 것에 그다지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되지요.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혼동하는 사람이 내 생명의 은인이 된다면 대관절 뭐가 중허냐고요.


 네… 그냥 헛소리를 해보았습니다. 피곤한 김에. 헛소리도 하고 그러는 거죠. 뭐가 대수에요. 예요. 이런 자질구리 한 인간 세상사 스트레스와 소음에서 멀어지는 좋은 방법은 요가섬에 가서 반려 요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요가섬은 요가원에 둥둥 떠있는 나만의 매트를 말해요.  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지만 그저 나만의 오롯한 공간이 되는, 세상 위에 둥둥 떠있는 나만의 작은 섬이죠. 그곳에서 나의 작고 소중한 반려요가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잠깐 쉬다 오는 거죠.


 요가가 아니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자신만의 작은 섬이 있나요? 바쁜 일상 속 잠시 다른 차원으로 나를 데려갈 작은 섬이 있단 건 매우 좋은 일 같아요. 독서가 되었건 요리가 되었건 테라스에서의 멍 때림이 되었건 코인노래방이 되었건. 자신만의 섬 하나는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똥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많지는 않지만. 감사한 일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70일차> 머리서기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오늘 요가 기록은 요가원에서가 아닌 집에서 혼자 머리서기를 하며 느낀 것들을 적어야지. 대략 3주 전이었나. 하타요가 시간에 선생님께서 내게 처음으로 요가원에서 머리서기를 시도하도록 도와주셨다. 집에서 몇 번 해보긴 했지만 다리가 절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팔꿈치를 지지한 채로 궁둥이만 들어 올리는 연습만 깔짝 해보았던지라 ‘아유 난 아직 멀었어’라며 돌핀 자세만 취했지 도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접근으로 나도 모르게 도전해버리고 있더라.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어차피 못할 거.’라며 조심스레 머리서기를 시도해 보았다.


 먼저, 머리서기 준비 자세부터 차분히 해보자. 테이블 자세에서 양 팔꿈치를 그대로 어깨 아래로 내린 뒤 양손을 반대편 팔꿈치에 가져다 댄다. 이게 머리서기에 알맞은 팔꿈치의 폭이라고 하셨다. 그런 뒤 양손을 앞으로 꺼내어 깍지를 낀다. 깍지를 낀 손과 팔꿈치 사이 간격이 삼각형이 된다는 느낌으로 두고, 깍지 낀 양 손바닥 안으로 뒤통수를 밀어 넣어 정수리를 땅에 닿게 한다. 안정적으로 내 뒤통수와 정수리가 안착이 되면 팔 안쪽과 겨드랑이, 갈비뼈 옆쪽에 긴장을 주며 엉덩이를 들어 올려 총총총 발이 내 얼굴 앞으로 오도록 걸어온다. 적절히 허리와 엉덩이가 천장을 향해 올라가면 자연스레 발이 뜨지만 나는 아직 왕초보인지라 다리를 하나씩 차례로 가슴팍으로 접어 올리는 동작부터 시도했다.


 그런데 뭔가 잘 안된다. 한쪽다리를 무릎 접어 가슴으로 끌어오고 엉덩이를 천장 쪽으로 올리면 반대 발이 떠야 하는데 내 발은 요지부동이다. 이때 선생님께서 “접은 무릎을 더 바짝 상체 쪽으로 끌어와야 해요.”라고 하신다.


 ‘에…이렇.. 게….?’

 하는 순간 오오. 오오. 지면에 닿고 있던 반대쪽 발가락이 위로 떠오르는 게 보인다.


 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우와

 우와


 속으로 오오오와 우와를 연발했다. 이 상태에서 다리를 뻗으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한 3초 버티다가 이내 철퍼덕 내려와 앉았다. 버틸 수 있는 힘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어디다가 힘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중심점도 못 찾겠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오늘 드디어 다리가 떴다. 다리가 떴다고! 지금 이것 만으로도 흥분되어 심장이 요동친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물구나무 따위의 중력을 거스르는(?) 동작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럴 일도, 필요성도 없는 삶이었으니 지금 이 느낌이 너무 신선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니 덜컥 겁이 나긴 하더라. 어디에 중심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다리를 더 들어 올리려니 내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은 느낌이라 이상했다.


 그날 이후로 잔뜩 삘을 받은 나는 집에서 틈틈이 머리서기 연습을 해보고 있다. 그런데 잘 안된다. 다리를 접어 올리든, 펴서 90도로 올리든 덜컥 겁이 나서 한계에 가로막혀있다. 깔짝깔짝 중심점을 찾아 1mm씩이라도 더 들어 올려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갑갑한 마음에 벽에 대고라도 두 다리를 꾸역꾸역 뻗어 올려보지만 저 위로 뻗은 다리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느낌이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다리가… 뭐라 해야 하지… 풍선처럼 그냥 허공에 ‘둥실~’하고 떠있는 느낌이다. 이게 맞나요? 이 상태에서 하체가 컨트롤이 가능해요? 아니죠? 아닐 것 같아… 복부에도 어떻게 더 힘을 주란건지 모르겠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동작인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감이라도 익히고 싶어 다음날도 연습을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공중으로 떠오르기만 하면 통제불능이 되는 것 같은 내 두 다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버틴다. 그러다 이내 힘이 달려 다리를 바닥으로 풀썩 떨어뜨리고 아기자세를 취하며 한숨 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빨리 해야겠다는 조급함은 없지만 이 작은 벽을 넘어가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어제보다 오늘 1mm씩 더 들어 올리고 0.1초라도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안되어도 상관없다. 느낌상 영원히 못할 수도 있을 것 같고 1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일단은 계속해보기는 할 건데 이 100일의 요가 기록이 끝날 때즈음에 ‘짜란’하고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단지 중요 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잘 안되고 자꾸 꺾여도 그냥 해보는 거다. 안 그랬으면 이 기록도 벌써 없었던 일인 척 휴지통에 다 갖다 버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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