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일차>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요가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워보기 위해 요가원에 등록을 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제가 요가를 계속 배워왔다고요? 에?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초면입니닷! 기존의 다른 어떤 회원님과 헷갈려하신 것 같습니다만? 탈수기요? 갑자기 탈수기 말씀은 왜 하시는 거죠? 네? 제가 요가원에 와서 탈수기처럼 다리를 자주 털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 아. 기억이 났어요. 내 의지와 다르게 탈수기처럼 다리를 떨었던 장면이 갑자기 기억이 났어요. 하지만 그건 분명 전생의 기억일 거예요. 왜냐면, 그동안 제가 요가씨 말씀대로 계속 요가를 해왔다면 분명 요가가 익숙해야 하는데 오늘 요가는 초면이었거든요!!!!!
분명 초면입니다. 명확하게. 의심의 여지없이. 제가 하는 꼴을 보세요. 보셨죠? 그렇죠? 네. 맞습니다. 아무튼 초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92일차> 처음 뵙겠습니다 2
안녕하세요. 요가씨.
오늘이 요가 이틀째네요. 아니라고요? 이미 오래 다닌 회원 중에 한 명이라고요? 제가요? 아니요(정색).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오늘 빈야사라는 요가를 처음 접했어요. 요가씨, 원장님의 빈야사가 마라맛이라면서요? 네. 저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진짜 이런 말 써도 될까 모르겠는데… 정말 (개) 힘들었어요. 다리가 막 떨리더라고요. 탈수기처럼. 어라라? 그러고 보니 어제 요가씨가 예전에 다리가 탈수기처럼 떨렸다던 회원님이랑 저를 헷갈려하셨는데, 제가 그 사람과 꽤나 많이 닮긴 했나 봐요. 호호. 제 다리도 탈수기처럼 떨리더라니까요? 하하. 그 사람도 참 곤욕스러웠겠어요. 아니, 분명 제 다리인데 제 다리 같지 않고 낯설었다니까요? 하. 참. 이럴 수가 있나요!?!
<93일차> 삶에도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은 요가원에서의 수업 외에도 주말이나 수업을 못 가는 날엔 한 번씩 집에서 잘 안 되는 동작들을 연습해보곤 해요. 혼자 어두운 방에서 작은 조명을 켜고 숲향이 나는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흘려둔 채 고요히 매트에 앉아 자신만을 위한 수련을 하면, 요가원에서와는 또 다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매력을 한 번 맛보니 딱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없어도, 해서 잘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매트를 펴고 앉게 되어요. 그냥 좋아서 하는 게 하나 더 생긴 셈이죠.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 동작이다 보니 혼자서 낑낑대다 보면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온몸은 땀범벅이 된답니다. 길게는 40분, 짧게는 20분 정도 혼자 조금씩 조금씩 나아감을 느끼며, 때로는 잘 안되어 짜증 섞인 눈물도 살짝 내어보며 그렇게 해보고 있어요.
내 몸인데도 내 뜻대로 잘 안될 때, 해도 해도 잘 되지 않아 화가 날 땐 이상하게 요가를 넘어서서 나도 모르게 내 인생 자체를 한탄(?)하며 살짝 눈물 섞인 분노를 할 때가 있어요.
‘왜.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왜? 너 왜 이렇게 겁이 많아! 네가 자꾸 겁내니까 더 진전이 없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겁부터 낼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흑흑. (눈물을 닦으며) 다시 해보자… 모르겠고 그냥 계속해보자. 하다 보면 잘 넘어지고 잘 다치는 법도 알게 되겠지. 그러니 그냥 해보자.’
하지만 의욕만큼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연습을 해도, 힘을 적당히 키웠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 때가 정말 많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잘 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 요가 선생님이 해주신 말들이 기억이 난 날이었습니다. ‘가만, 여기서 팔꿈치 간격을 안쪽으로 더 좁혀 모으라 했던 것 같은데… 어? 어라? 되… 되네?’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느 날이었는지 모를 코칭 내용이 정말 자연스럽게 둥실~ 떠오르는 날이 있었어요. 그럴 때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면, 나도 모르게 전보다 좀 더 나아짐을 느끼거나 동작이 훨씬 수월해질 때가 있답니다! 역시. 선생님 말씀은 귀담아 들어야 해요. 그리고, 한편으론 요가원을 가지 않았다면 이 동작은 평생 요령을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요가가 인생과 비슷한 것이 많은 것 같단 말을 종종 했었는데, 인생에도 나와 비슷한 과정을 먼저 겪은 스승님을 만난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에 먼저 닿아 계신 그런 스승님을 만난다면, 저는 그분의 말을 참고 삼아 좀 더 요령 있게 살 수 있을까요? 사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하던데 조금 더 삽질을 덜 할 요령과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없다면… 작은 소망이지만 제가 그 길을 먼저 걸어가, 저보다 늦게 그 길을 걸을, 제법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되고 싶네요.
많이 겪고 많이 깨달아야겠어요.
어찌 되었건, 많은 길들을 먼저 걸어간 모든 사람들께 존경을 표하며, 나마스테.
<94일차> 쥐고 있는 마음을 발견하다
오늘 요가는 아주 특별했다. 빈야사 요가였고 여느 때처럼 원장님의 동작을 따라 몸을 따뜻하게 풀어주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동작이었을까.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동작 중 호흡을 계속하라는 반복된 코칭을 따라가는 중이었을 거다. 호흡을 하는데, 어느 흐름에서 덜커덕. 하고 호흡이 막혔다.
이내 다시 내뱉고는 또 호흡을 마셔본다. 부드럽지 않은 비포장길을 달리는 차의 진동처럼 호흡이 몇 번 끊길 듯 덜커덕거리며 이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내 마음 어딘가가 꽉 조여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는 내 마음 깊숙한 어딘가의 부분을 내가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별안간 머릿속에 무언가를 움켜쥔 내 손의 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것을 펼쳐보려고 손가락 하나하나 온 힘을 다해 떼어내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악에 받쳐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내가 보였다.
슬픔, 분노, 원망, 외로움.
그것들을 혼자 감당하지 못해 울고 있었다. 그런 내면아이가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먼 시간을 거슬러 가야 했는지는 몰랐다. 아주 먼 곳에 내가 있고 내버려 둔 슬픔이 있다.
지금 성인이 된 내 우울한 감정의 뿌리인지도 모른다. 이따금씩 이곳에도 써 내려간 나의 우울은 내가 꽉 쥐고 있던 내면의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걸 요가를 하며 발견할 줄이야. 무슨 말이 그렇게 하고 싶은 걸까. 오늘밤은 그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려 한다. 너를 사랑한다 말로만 했지 제대로 달래지도 않고 꽉 쥐고만 있어서 미안해. 이제 슬 너를 자유로이 놓아줄 준비를 해야겠다.
<95일차> 아무래도 여름의 요가는 무리일까요?
아. 어지럽다.
지친다.
오늘 처음으로 아쉬탕가를 하다가 뒤편의 휴게실에 들어가 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수리야나마스카라 마무리 단계에서는 급기야 어지러워 휘청거렸다. 아. 눕고 싶다. 단전에 힘이 안 들어간다. 몸이 텅 빈 느낌이다. 덥다. 마치 (배워본 적은 없지만) 핫요가를 하러 온 기분이다. 에어컨을 틀었는데 왜 숨이 턱턱 막히지? 이런 증상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늘따라 많은 분들의 헉헉거림이 느껴진다. 나뿐만 아니라 평소보다 다들 동작 옮김이 느리고 무겁게 느껴진다. 긴 장마에 높아진 습도 탓도 있는 것 같다. 마치 따뜻한 물속에서 요가를 하는 기분이다.
선생님도 중반부 이후부턴 코칭하는 목소리가 좀 더 가볍고 단순해지셨다.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때엔 평소보다 짧게 끝내셨다. 그럼에도 너무 힘들다. 살려주세요!
집에 가고 싶다……
시원한 거실 바닥에 눕고 싶다…
복숭아 먹고 싶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몸이 너무 지치니 아무런 잡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어제 만났던, 내 안의 내가 꽉 쥐고 있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자주 꺼내어 와서 함께 머무는 상상 정도는 했다. 혼자 그렇게 있지 말고 지금 나랑 같이 요가하자. 하며 움켜쥔 손을 펴 아이가 지금 현실의 내가 하는 동작들을 함께 하고 느끼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일치되는 기분! 그러면서 치유되는 기분. 어떤 위로도 말도 필요 없이 함께 하는 동작들은 우리를 기분 좋은 하나로 만들어줬다. 이따가 요가 끝나고 복숭아도 같이 먹자. 하는 스스로 어이없으면서도 귀여운 상상을 하며- 이렇게 또 요가를 했다!
그리고 내 요가일지가 5일 차밖에 남지 않았다. 100일의 목표를 찍으면 한 여름 동안은 잠시 쉴 생각이다. 선선해지면 다시 다녀야지! 물론, 계속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쉬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냐.
난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그때 가서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어쨌건. 5회 차 남았습니다.
히히 신난다!